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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는 안물어요" 개를 사람으로 착각하는 개 주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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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뉴스에 말라뮤트가 초등학생을 물었다는 사고 소식이 나온다. 평소에 이상 없던 강아지가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입장과 결과이다. 모든 책임은 견주에게 있다. 이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시대인데 어떻게 질서와 안전을 유지할 수 있을까.


7년 넘게 강아지를 키우며 교감하다 보니 강아지도 가족이 된다. 가족 중에 사람이 아닌 가족이다. 글도 모르고 친정도 없는 우리 강아지는 믿을 게 우리 가족뿐이다. 약하디약한 것이 나를 좋다고 길길이 날뛰며 반기니 애틋한 사랑의 느낌이 든다.


어쩌면 아이들이 커서 자기 생활을 찾아가면서 껴안고 부벼댈 대상을 잃은 우리 부부는 유통기한 임박한 모성애와 부성애를 탈탈 털어 강아지에게 쏟아붓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연스레 강아지 이야기가 일상이 되었다. 오죽하면 SNS를 통해 지인들이 ‘단추’라는 이름을 알게 되고 한 선배님은 교과서를 집필할 때 그 이름이 떠올라 예문의 강아지 이름을 단추라고 넣기까지 했다. 교과서에 나온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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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가족이라고 하면 반감 갖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키우던 개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던 ‘단백질 결핍’ 시절에도 죽기 전까지는 가족이었다. 사람이 먹고 남긴 음식으로 키우니 어쩌면 ‘식구(食口)’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가끔 TV를 통해 시골에서 키우는 누런 토종개들을 본다. 도시의 반려견과 달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찬밥 먹여 키우고 가끔 빨랫비누로 벅벅 문질러 씻기며 투박하게 키우지만 엄연히 사랑하는 가족이다. 개가 죽은 후 너무 그리워 시름시름 앓다 돌아가셨다는 할머니 이야기도 들었다.


'일 년에 한 달 해외 살기'를 테마로 활용하면서 유럽 현지의 일상을 눈여겨본다. 그들의 애견문화에도 관심이 많다. 처음에는 사람이 개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개가 사람 말을 알아듣고 절도 있게 움직이는 태도를 보며 ‘역시 역사가 있어 선진적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조금씩 의구심이 생긴다. 정말 유럽인이 우리보다 강아지를 사랑할까? 그쪽 개들은 더 똑똑해서 말을 잘 알아들을까? 혹독한 훈련의 결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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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개를 좋아하는 정도에서는 우리가 더한 것 같다. 동물에게까지 ‘인정’이 있다. 가끔 어머니 댁에 강아지를 데려가면 예뻐하시며 아무 음식이나 나눠주신다. 강아지한테 안 좋고 버릇 나빠진다고 해도 좀처럼 그 애절한 눈빛을 이기지 못하신다.


고대에는 자연이 인간에게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였다. 중세 서양의 기독교적 자연관에서는 신이 만든 창조물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었다. 인간은 수많은 창조물 가운데 최상위에 있고 동물계를 포함한 자연은 인간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자 수단이었다. 창세기 첫 장에 나와 있다. 더군다나 근대 들어 데카르트나 갈릴레오 같은 석학들로부터 확답까지 받았으니 유럽인들에게 자연보다 더 좋은 놀이터가 있었을까.


그렇게 보면 그들이 “앉아, 일어서, 기다려.”를 반복훈련 시킨 개는 단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 살아 움직이고 몇 가지 간단한 기능을 탑재할 수 있는 인형이다. 그에 비해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동물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가 있었다. 무의식 속에 불교적인 윤회의식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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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강아지에게 절제되지 않은 애정을 분출하는 사람도 많다. 어떤 때는 같은 애견인 입장에서도 ‘별짓 다 한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니 개 싫어하는 사람들이 질색하는 것은 당연하다. 동물은 동물로서의 특성을 ‘고려’해야지 사람으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


내가 스테이크 먹는다고 개한테도 스테이크 구워줄 건가? 스테이크 대신 산책을 시켜줘야 한다. 그걸 헷갈려서 사람도 못 먹는 비싼 음식 먹이고 신발을 신기고 심지어 명절에는 한복까지 입혀 SNS에 올린다. 그건 바비인형에나 해야 할 일이다. 강아지는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인식이 미약해서 발생하는 동물 학대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가끔 근엄하게 잘 생긴 개가 있다. 뭔가 철학적 사색을 하는 것처럼 굳게 다문 입, 먼 곳을 보는 진지한 시선… 나도 모르게 엉뚱하게 강아지에게 묻는다. “무슨 생각해?” 개는 그때야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든다. 아무 생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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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싱거운 소리를 하는가 하면 나는 가끔 개를 사람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동물을 의인화(擬人化)한 외부 작용에 너무 노출된 탓이다.


“우리 애는 안 물어요.”라는 개 주인들의 일상적인 헛소리(!)는 그렇다 치자. 방송에서는 강아지가 대단한 사고능력을 가진 것처럼 말풍선 자막과 더빙을 넣고 사람 눈높이로 상황을 편집한다. 이게 잘못된 반려동물 문화를 만드는 주범이다. 개는 개고 고양이는 고양이인데 자꾸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그걸 보고 자기 개만 머리 나쁜 줄 알고 학대하거나 아이들이 함부로 접근했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요즘은 반려동물 전문가도 콘텐츠와 정보도 많다. 애견인도 급증하고 유기견 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도 퍼지고 있다. 전부 긍정적인 변화인데 기본적으로 반려동물을 대하는 자세에서는 세련미와 책임감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개도 가족이 될 수는 있지만 사람은 사람이고 개는 개다. 헷갈리지 말자!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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