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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 타고 마천루 위에서 일출 감상, 이 도시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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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멜버른 시내 중심가에 떠 있는 열기구들. 전 세계 어느 대도시에서도 이처럼 열기구를 타고 마천루를 내려다보는 경험을 해보긴 어렵다. 김성룡 기자

드라마나 영화에서 부잣집 아들인데 잘생긴 얼굴에 공부는 수재, 여기에 운동부 주장까지 맡은 인물을 흔히 '사기캐(사기 캐릭터의 줄임말)'라 한다. 믿기지 않는 완벽함을 지녔다는 뜻인데, 호주 빅토리아 주의 주도 멜버른이 그런 도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관문 도시', '전 세계 스페셜티 커피를 선도하는 미식 도시', '호주 문화·예술의 수도', 'F1 그랑프리,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의 국제 스포츠 이벤트 도시' 등등… 도시를 표현하는 차고 넘치는 수식어만 봐도 멜버른은 영락없는 사기캐다.

인생에서 가장 빨리 흐른 16분

도시 생활이 지칠 때면 우리는 자연을 찾는다. 힐링을 위해서라지만 여정이 길거나 차가 막히면 힐링은커녕 스트레스가 배가 된다. 멜버른에선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야생 코알라와 캥거루가 사는 대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는데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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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가는 길목에서 만난 야생 코알라. Y자로 된 나뭇가지에 엉덩이를 걸치고 편안한 자세로 주로 잠을 잔다. 김성룡 기자

멜버른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차를 몰고 한 시간을 달리면 소도시 '토키'에 도착한다. 알랜스포드까지 약 243㎞ 이어지는 해안도로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출발지점이다. 아폴로 베이까지 처음 94㎞ 구간은 말 그대로 해안도로다. 왼편으로 광활한 남극해를 바라보며 깎아지른 절벽 위 도로를 달린다. 가슴이 뻥 뚫린다. 아폴로 베이부터는 광활한 숲속을 오르락내리락 달린다. 약 84㎞를 더 가면 다시 바다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백미인 '12사도상'에 닿는다. 12개의 석회암 기둥을 예수의 열두 제자에 빗댄 건데 해류 침식으로 지금은 7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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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오션 로드 12사도상. 보는 각도에 따라 제각각의 형상과 색감을 보여준다. 김성룡 기자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절경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헬기 투어를 추천한다. 가장 짧은 16분짜리 코스만으로도 12사도상과 런던 브릿지, 로크 아드 협곡 등을 감상하기에 충분했다. 비췻빛 바다와 하얀 포말, 오랜 시간 자연이 공들여 빚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풍경이 기막히다. 인생에서 가장 빨리 흘러간 16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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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사냥을 마친 리틀 펭귄들이 해질녘 뭍으로 나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뒤뚱 뒤뚱 함께 걷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사진 호주 빅토리아주 관광청

멜버른에서 남동쪽 1시간 40분 거리의 '필립 아일랜드'에서는 '리틀 펭귄'을 만날 수 있다. 지구에서 가장 작은 펭귄 종으로, 별칭은 요정 펭귄이다. 키는 30㎝, 몸무게는 약 1㎏. 낮에는 바다에서 사냥하고 일몰 후에 집이 있는 육지로 돌아온다. 적게는 5마리, 많게는 20여 마리가 넘어질 듯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정말 귀엽다. 해가 지며 시작된 펭귄 퍼레이드는 밤 깊은 시간까지 이어졌고, 고요하던 섬은 펭귄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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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핑 빌리 증기기관차를 타고 숲길을 달리다 보면 누구든 동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김성룡 기자

단데농 국립공원의 우거진 원시림을 구불구불 증기기관차로 달리는 퍼핑 빌리, 고즈넉한 산속에서 천연 미네랄 성분의 온천수에 몸을 맡기는 모닝턴 페닌슐라 온천도 일상에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호주 커피 왜 유명한가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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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에서 카페가 가장 붐비는 시간은 출근 시간대다. 듁스 커피 앞에 커피를 주문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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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은 세계적인 커피 도시다. 2000개 이상의 카페가 있을뿐더러 질 좋은 커피를 맛있게 먹는 문화를 선도하고 있어서다. 멜버른의 유명 카페 중에서 '듁스 커피' '패트리샤 브루어스' '브라더 바바 부단' 세 곳을 가봤다.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곳이라 규모가 클 줄 알았는데, 정말 소박했다. 세 곳 모두 커피를 주문하고 마시는 방식이 한국과 달랐다. 매장 안에 테이블과 의자가 거의 없었고 사람들이 서서 커피를 마셨다. 테이크 아웃 손님은 주문한 뒤 매장 외부에서 대기했다. 음료가 완성되면 직원이 매장 밖까지 커피를 들고나와 손님에게 건넸다. 좁은 매장을 덜 복잡하게 유지하면서 손님과 스킨십을 늘리는 좋은 방법으로 보였다. 진동벨은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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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테이크 아웃'이 멜버른에선 '테이크 어웨이'다. 테이크 어웨이로 주문하고 매장 밖에서 기다리면 바리스타가 완성된 음료를 들고 나와 전해주는 게 여기선 '국룰'이다. 브라더 바바 부단 직원이 매장 밖으로 나와 음료를 건네고 있다. 김성룡 기자

세 카페 모두 메뉴가 간결했다. 블랙, 화이트, 필터. 듁스 커피에선 '엘살바도르 산' 필터 커피를 주문했다. 가볍게 볶은 원두에서 깔끔한 산미와 석류 향이 느껴졌다. 패트리샤 브루어스에선 호주를 대표하는 '플랫 화이트'를 마셨다. 카페라테보다 우유 거품이 적어 커피의 맛이 진했다. 브라더 바바 부단에선 '피콜로 라테'를 주문했다. 피콜로는 라틴어로 '적다'는 뜻이다. 플랫 화이트보다 우유를 더 적게 넣어 커피 맛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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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 바바 부단에서 주문한 피콜로 라테. 플랫 화이트와 더불어 호주 커피를 대표하는 메뉴다. 일반 카페 라테보다 적은 양이지만 더 진한 커피의 풍미를 느끼고 싶다면 추천한다. 김성룡 기자

호주 커피의 강점은 무엇일까. 질 좋은 스페셜티 커피(스페셜티 커피 협회 평가 80점 이상의 원두), 커피 맛을 더 깊고 부드럽게 해주는 호주산 고품질 우유, 단골의 이름과 음료 취향을 기억하고 손님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바리스타. 이 세 가지가 결정적인 것 같다. 멜버른에 거주하는 커피 마니아 소피아 김(37)은 "멜버른 사람에게 커피는 일상 그 자체"라며 "하루의 시작을 여는 열쇠"라고 말했다. 참고로 멜버른 카페 대부분은 오전 7시에 열고 오후 4시면 문을 닫는다. 늦게 갔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야시장 둘러보고, 열기구 타고 일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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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은 바다를 접하고 있는 도시라 어딜 가나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멜버른 힙스터들에게 인기 많은 퓨전 일식당 슈퍼노멀의 굴 메뉴. 김성룡 기자

멜버른은 커피만 맛난 게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레스토랑이 많은데 무엇보다 퓨전 음식이 발달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의 입맛을 두루 만족시키려다 보니 미식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고 한다.


1878년 개장한 남반구 최대의 노천시장 '퀸 빅토리아 시장'에 가보길 권한다. 과일 및 채소, 육류와 수산물 등 식재료는 물론이고 캥거루 고기도 살 수 있다. 매일 오전 6시~오후 3시 시장이 열리는데, 남반구 여름철인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야시장이 선다. 매주 수요일 오후 5~10시, 공예품과 먹거리를 팔고 덤으로 공연도 볼 수 있다. 3월 1일 야시장을 가보니 인산인해였다. 즉석 음식을 만드는 가게에선 음식을 굽고 찌고 튀기는 냄새가 진동했다. 아이스크림 가게는 젊은 사람으로 장사진이었다. 한국의 80년대 야시장처럼 친근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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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빅토리아 시장을 찾은 젊은이들이 시장 바닦에 둘러앉아 야시장을 즐기고 있다. 김성룡 기자

멜버른에서는 아트 투어도 빼놓을 수 없다.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을 가봤다. 개장 시간 30분 전부터 '오픈 런' 하려는 시민이 줄을 서 있었다. 갤러리는 소장품을 주제에 맞게 선정해 전시한 상설 전시와 2010년 사망한 영국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특별전(4월 14일까지)이 열리고 있었다. 동아시아 유물전에서 한복을 전시하고 있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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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야라 강변의 담에 그려진 벽화. 멜버른 시내를 걷다보면 곳곳에서 예술성 있는 벽화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김성룡 기자

멜버른의 예술 감각은 골목에서도 느낄 수 있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소지섭이 임수정을 만나는 장면을 촬영한 그라피티 거리 '호시어 래인'을 찾았다. 한국인 사이에서 '미사 거리'로 불리는 인증샷 필수 코스다. 얼핏 보면 낙서 같지만, 지역 예술가의 엄연한 작품이다. 주기적으로 그림이 바뀌기도 한다. 미사 거리 말고도 시내에는 골목마다 작품성 높은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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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시내 중심가에 떠 있는 열기구들. 도심 상공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김성룡 기자

이제 멜버른 여행의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다. 열기구 체험이다. 한적한 시골이나 산천 위에서 열기구가 뜨는 게 아니라 70~100층짜리 고층 빌딩이 즐비한 대도시 위를 난다. 브로슈어에는 "세계에서 유일한 대도시 열기구 체험"이라고 쓰여 있었다. 도심 서쪽 뉴 포트 공원에서 출발한 열기구는 고도를 올린 뒤 남서풍을 타고 서서히 이동했다. 출발 당시에는 어둑했던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는가 싶더니 동쪽 하늘에서 해가 떠올랐다. 열기구가 뜰 때만 해도 하늘이 흐렸는데 구름 사이로 찬란한 햇빛이 쏟아졌다. 이곳이 골드러시의 도시라는 걸 상기시키는 듯이 태양이 멜버른 도심의 마천루를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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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국에서 멜버른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홍콩을 경유하는 게 합리적이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을 이용하면 인천~홍콩 3시간, 홍콩~멜버른 8시간 걸린다. 호주가 한국보다 2시간 빠르므로 인천공항에서 오후 3시 비행기를 타면 다음 날 오전 7시 멜버른 툴라마린 공항에 도착해 일정을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은 인천~홍콩 노선을 주 24회 운항하고 있다. 홍콩에선 호주 3개 도시(시드니, 멜버른, 퍼스) 직항 노선을 운항한다. 16분 동안 진행되는 12사도상 헬기투어는 165호주달러(약 14만원), 열기구 체험은 495호주달러(약 43만원), 퍼핑 빌리 증기기관차는 왕복 61호주달러(5만원). 기타 여행 정보는 빅토리아 주 관광청 한국어 홈페이지나 공식 블로그 참조.


멜버른(호주)=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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