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 따내려 60년전 쌍꺼풀 수술도···송재호의 반세기 연기 인생
지병으로 1년 넘게 투병생활 끝 작고
평양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부산 피란
“변사 해설해주는 영화 보며 감독 꿈꿔”
성우로 시작해 56년간 120여편서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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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끓는 청춘부터 인자한 아버지까지 다양한 역할로 반세기 넘게 사랑받아온 배우 송재호가 7일 별세했다. 83세.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은 “1년 넘게 지병으로 편찮으시다가 이날 작고하셨다”고 밝혔다. 생전 인터뷰에서 밝힌 “움직일 수만 있다면 계속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처럼 1964년 영화 ‘학사주점’을 시작으로 지난해 ‘자전차왕 엄복동’ ‘질투의 역사’ 등 120여편의 작품이 56년간의 필모그래피를 빼곡하게 채웠다.
1937년 북한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란했다.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부산에서 살면서 군고구마 장사, 신문팔이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차근차근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2009년 ‘6시 내고향’에 출연한 그는 부산을 ‘제2의 고향’으로 소개하며 “변사가 무성영화를 해설해주던 시절 학교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감독을 꿈꾸게 됐다”며 “가방에 도시락은 없어도 카메라는 꼭 가지고 다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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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도시락은 없어도 카메라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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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를 쓰겠다는 생각으로 동아대 국어국문과에 입학해 59년 KBS 부산방송총국 성우로 먼저 데뷔했다. 보다 넓은 세상에서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충무로에서 ‘하녀’의 김기영 감독을 만난 일화도 유명하다. “내 영화에는 쌍꺼풀 없으면 출연 못 한다”는 말로 퇴짜를 맞은 그는 곧바로 성형외과를 찾아 쌍꺼풀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후 박종호 감독을 만나 데뷔작 ‘학사주점’을 찍게 됐다. 68년 KBS 특채 탤런트로 선발돼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젊은 시절 그는 제임스 딘 같은 반항아 스타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가 히트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속편(1982)에서는 아들 송영춘씨가 배우로 데뷔하기도 했다. 부자가 나란히 시리즈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다. 영춘씨는 4남 1녀 중 장남으로 연기를 그만둔 이후 목사가 됐다.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1981)도 성공하면서 김호선 감독과 찰떡 호흡을 선보였다. 드라마 ‘새댁’과 ‘탈출’이 연이어 흥행하면서 82년엔 백상예술대상 TV 남자최우수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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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노인과 바다 같은 작품 원해”
‘부모님 전상서’(2004~2005)의 김해숙, 김희애, 송재호. [사진 KBS] |
‘국민 아버지’로 거듭나게 해준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2004~2005)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아버지 역할이 대사 한두 마디가 고작인 경우가 많아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졌으나 토씨 하나 틀리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 김수현 작가와 작업하면서 연기자로서 긴장감이 되살아났다고 밝혔다. 2000년 막내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극심한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는 등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젊은 시절 영화 제작의 꿈을 실현하고자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사를 차리면서 얻게 된 사채로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던 그는 이후 연기에 전념했다.
2011년 무비위크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감동한 감독이 딱 세 명 있다”며 문희의 데뷔작 ‘흑맥’(1965) 등을 함께 한 이만희 감독, ‘살인의 추억’(2003)을 같이 한 봉준호 감독, 황혼 로맨스를 그린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의 추창민 감독을 꼽았다. 그는 “세 사람은 아, 정말 영화에서 인간을 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마지막으로 앤서니 퀸 주연의 ‘노인과 바다’(1990) 같은 작품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죽기까지 싸워라”라는 대사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연기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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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좋아해 국제심판, 밀랍감시 활동도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에서 호흡을 맞춘 송재호와 김수미. [사진 NEW] |
야생생물관리협회 회장 등 이색 이력도 많다. 78년 박종규 전 청와대 경호실장과 인연으로 총을 잡은 뒤 클레이사격 마니아가 됐다. 79년 서울용호구락부 소속 사격연맹에 선수로 등록됐고 이후 전국체전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국제사격연맹 심판 자격증도 취득해 86년 아시안게임 국제심판, 88년 서울 올림픽 보조심판으로 활약했다. 그는 “사격을 좋아하지만 한 번도 동물 살상 목적으로 총을 들지 않았다”며 생태환경을 위협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밀렵감시단 단장을 맡기도 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0일이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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