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죽음 왜 책임 안지나”···'피범벅' 아들 보낸 아빠 절규
사망 후 '음성' 판정 받은 17세 고교생
아버지 "피범벅된 마지막 모습 잊지 못해"
사망 3개월 지났지만 책임지는 곳 없어
"코로나19에 일반 환자 치료 공백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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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5일 대구 남구 영남대학교병원. 정성재(54)씨 부부가 방호복을 입고 음압병실에 들어섰다. 아들(17)의 담당 의사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해서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는 순간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피를 토해낸 아들의 얼굴과 온몸은 피범벅이 된 상태였고, 전체적으로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어 있었다. 정씨 부부가 본 마지막 아들의 모습이다. 3일 뒤 아들은 다발성 장기부전 등으로 사망했다. 당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의심됐으나 사망한 뒤 최종 ‘음성’ 판정을 받은 고(故) 정유엽(17)군 이야기다.
정씨는 9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피투성이된 아들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처음에는 아들이 이미 떠났다고 생각했고, 숨만 쉬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내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억울한 죽음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힘쓰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경북 경산 지역 고등학교 3학년생인 정군은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던 지난 3월 고열로 지역의 한 병원을 찾았다. 정군은 급성 폐렴으로 41.5도(병원 주장 39도)가 넘는 발열 증세가 있었지만, 병원 측은 "코로나19가 의심된다"며 입원을 거절했다. 집에 돌아간 정군은 하루 만에 상태가 악화했다. 대구 영남대병원으로 옮겼으나 엿새 만에 숨졌다.
정군이 의료 공백으로 사망한 지 3달이 지났지만, 정군의 죽음에 책임을 지는 곳은 없다는 게 정씨의 주장이다. 정씨는 "아들이 찾았던 병원은 지금도 발열 등 코로나19 증세가 의심되면 입원을 거부당한다고 들었다"고 했다.
정군의 입원을 거부했던 병원 측은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병원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코로나 음성이라면 우리 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하지만, 양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정군에게 수액과 해열제를 맞혀 집으로 보냈다"고 해명했다.
정씨는 정부와 경산시에 진상 조사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10일 경산시장과의 면담이 예정돼 있다. 경산시의 제대로된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가족들이 다음 주부터 1인 시위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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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의 부모는 지난달 인권·노동·법률·의료 시민사회단체 등과 ‘정유엽사망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했다. 이날 면담에서 대책위는 ▶경산시장의 책임 있는 입장표명 ▶시장 명의로 정부차원의 진상규명 요구를 촉구하는 서한이나 공문 발송 ▶경산 지역 의료공백 실태 조사를 위한 자료 작성 및 제공 ▶의료공백 대책 마련을 위한 조사팀 구성 ▶대책위와 공동 토론회 개최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면담 이후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정씨는 “경산시와 정부에 마지막으로 호소한다. 올가을 코로나19 재유행이 예고됐는데 또 누군가가 의료공백 속 가족을 잃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감염병시 일반 환자의 의료 공백을 막는 이른바 ‘정유엽법’ 제정도 준비 중이다. 첫 단계로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조사를 해야 올바른 대책이 나오기 때문이다. 앞서 대책위는 지난달 16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 내 발생한 의료 공백 조사를 통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며 탄원서를 냈다. 청와대 측에선 이 탄원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정훈 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진상 조사가 이뤄지면 유엽이 자료를 토대로 국회의원 등과 함께 의논해 법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법 내용은 의료계·법조계 등 전문가의 의견에 따를 것이나, 감염병 발생 시 감염병 환자와 일반 환자들의 치료가 적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고 설명했다.
경산=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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