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다는듯 "왜요"···"고유정, 체포 시나리오 많이 연습"
사건추적
[사건추적]
체포시 담담한 태도 영상 곳곳에 담겨
“왜요, 그런적 없는데” 침착하게 말해
경찰, ‘영상배포’ 수사보안 어겼나 조사
고유정, 내달 공판서 검찰과 공방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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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고유정, 체포 때도 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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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적 없는데… 제가 당했는데…” 지난달 1일 고유정(36)이 경찰에 체포될 당시 한 말이다. 고유정은 당시 “살인죄로 긴급체포합니다”라는 경찰의 말에 “왜요”라고 물었다. 체포되는 과정에서는 내내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 영상을 본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고유정이) 그렇게 말하려고 꽤 연습을 한 것 같다”며 “이미 머릿속에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가 한 얘기”라고 했다. “경찰이 나타나면 ‘내가 외려 피해자다’ ‘우발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얘기해야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슴없이 한 언행”이라는 분석이다.
전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의 체포 당시 영상이 공개되면서 치밀한 계획범행 여부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에 붙잡히는 순간까지도 완전범죄를 꾀하려는 의중이 드러나서다. 해당 영상은 제주동부경찰서가 지난달 1일 오전 10시 32분쯤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촬영한 것이다.
영상 속에서 고유정은 집에서 바로 나온 듯 맨발에 검은색 슬리퍼를 신은 상태로 경찰과 맞닥뜨렸다. 검은색반팔 상의에 검은색 치마를 입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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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인정도 계획적…피해자 자처
당시 경찰은 “살인죄로 체포합니다. 긴급 체포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고유정에게 수갑을 채웠다. 이에 고유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경찰이 수갑을 채우는 과정에서도 “왜요?”, “그런 적 없는데…”, “제가 당했는데…” 등의 말을 했다.
이 교수는 이런 고유정의 언행에서 전남편에 대한 살인 혐의를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는 “(살해) 증거들을 다 없애기 전에 경찰이 너무 빨리 와서 살인을 부인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고유정이 쉽게 ‘(전남편을) 죽인 건 맞다’고 자백하고, 그 대신 자기는 ‘성폭행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고유정은 지난 5월 25일 제주도의 한 펜션에서 전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은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 체포된 후 재판에 넘겨진 후로도 “전남편의 성폭행 시도에 저항하다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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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송차 오르자 자백…“경찰 빨리왔다”
고유정은 이후 호송차에 타기 직전까지도 흥분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황당하다는 표정과 함께 비교적 담담하게 차량에 오른 고유정은 이후 행동이 돌변했다. 체포될 당시 범행을 부인했던 것과는 달리 호송차 안에서는 전남편을 살해한 사실을 시인했다. 고유정이 호송차에 오른 뒤 “경찰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내가 죽인 게 맞다”고 말한 내용은 이후 경찰 조사과정에서도 알려졌다.
고유정이 체포된 날은 전남편 살해와 관련된 증거의 인멸 시도를 완료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이어서 주목된다. 지난 5월 25일 제주의 한 펜션에서 남편을 살해한 고유정은 5월 29일 경기도 김포 아파트에 도착해 5월 31일 새벽까지 전남편의 시신을 2차로 훼손하고 유기했다.
당시 고유정은 현남편 A씨(37)에게 태연하게 허위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전남편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이날 오전 김포 자택에 도착한 후 현남편과 시간을 보낸 고유정은이튿날 오전 경찰에 체포됐다. 남편 A씨는 “당시 전남편에게 성폭행당할 뻔했다는 말에 마음이 아파 병원과 노래방까지 데려갔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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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피해자” 실제 생각할 수도
해당 영상을 본 전문가들은 만약 고유정이 성격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면 실제로 ‘본인이 피해를 당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이 교수는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고유정은 성격 장애다. 그 성격 장애가 범행 동기와 매우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남편과의 관계에서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그 억울함을 분풀이하기 위해 살인을 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고유정은 재판을 앞두고 제주교도소에서 비교적 평범한 재소 생활을 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고유정은 당초 교도소 입감 당시 독방을 요구했지만, 극단적 선택 등의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유정은 8월 12일 첫 공판에서 다시 모습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일 열린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이 참석할 의무가 없어 불출석한 상태로 재판이 진행됐다.
한편, 경찰청은 이번에 공개된 영상이 일부 언론사에 전달된 과정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다. 영상을 유출한 것으로 알려진 박기남 전 제주동부경찰서장이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을 위반했는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2019년 3월 11일 배포된 해당 규칙 4조에는 ‘사건 관계자의 명예, 사생활 등 인권을 보호하고 사건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사사건 등은 그 내용을 공표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공개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특정 언론사에만 해당 영상을 제공한 행위는 ‘언론매체에 균등한 보도의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규정 11조에 저촉되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제주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청 방침에 따라 해당 영상을 추가로 배포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주=최경호·최충일 기자, 김준희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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