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 자율차 마법···급성발작 10대 구했다
광저우 출근길 환자 논스톱 이송
AI 시스템이 신호 안 걸리게 조종
중국 2025, 반도체·5G 등 최강 목표
“한국 산업과 겹쳐 최대 피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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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시의 한 초등학생이 지난해 11월 차량 정체가 극심한 출근시간대에 급성 발작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학생을 실은 커넥티드(자율주행차) 시스템이 탑재된 구급차는 정체에 아랑곳없이 광저우 공항까지 한 번도 멈춰서지 않고 내달렸다. 알리바바가 구축한 스마트시티 시스템을 활용해 구급차의 진행에 따라 거리의 신호등을 파란불로 바꾼 결과로 항공기를 통해 병원까지의 도착 시간을 평소보다 2시간30분을 단축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영화 같은 이런 장면이 중국에서 현실로 등장한 건 자동차업체 상하이차의 커넥티드 차량, 그리고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정보기술(IT) 기업 알리바바의 스마트시티 기술인 ‘ET 시티브레인(ET城市大脑)’이 결합한 결과다. 특히 10년 후 자율주행차 세계 최강국을 노리는 중국 당국이 커넥티드 차량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현재의 교통 신호와 운행 중인 차량, CCTV 등의 데이터를 수집해 활용할 수 있는 길을 기업에 열어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장면엔 중국이 꿈꾸는 ‘중국 제조 2025’의 단면이 드러나 있다. 중국 제조 2025란 제조업 전반에 로봇과 인공지능 등 IT기술을 접목해 세계 최강 제조국으로 도약하고, 생활에 스마트 시스템을 결합해 사회 전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2015년 발표한 이 계획엔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5G(세대) 통신·반도체·우주항공·로봇·바이오 등 10개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중국은 한국·영국·프랑스 등과 세계 제조업 3위 그룹에 속해 있지만 2025년에는 일본·독일 등이 속한 2위 그룹으로 도약하고, 2045년이면 세계 최강인 미국을 뛰어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 제조 2025는 벌써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기차 업체인 BYD를 앞세운 중국 전기차 생산은 이미 세계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이끄는 중국 5G 장비는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굳혔다. 초고속열차나 우주항공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고, 차세대 디스플레이나 선박 및 해양플랜트 등에서도 세계시장 석권을 넘보고 있다.
“중국 정책 10년 넘게 일관성 있게 추진…한국, 정권마다 바뀌는 악순환 말아야”
문제는 중국 제조 2025가 우리가 차세대 산업으로 육성 중인 통신장비(5G)·자동차·반도체·바이오 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독일의 싱크탱크 메릭스는 중국 제조 2025의 가장 큰 피해자로 한국을 지목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중국 부장은 “한국 정부와 산업계가 과감한 산업 육성 정책을 서두르지 않으면 중국과 미국, 독일 등이 정면으로 붙고 있는 글로벌 제조업 패권 경쟁에서 한국이 낙오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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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제조업의 왕좌를 노리는 중국 제조 2025는 미·중 간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등장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중국 제조 2025 달성을 위해) 미국 업체 기술을 훔치고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 첨단 기술을 개발한다”며 중국에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현재까지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미·중 무역분쟁의 직접적 원인이 바로 중국 제조 2025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중국 제조 2025를 경계해야 할 직접적인 당사자는 바로 한국이다. 당장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의 50% 이상이 중국에 쏠려 있다. 만약 중국이 이 분야에서 성장할 경우 한국 수출은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에 더해 우리 정부는 지난해 초 4차산업혁명위원회 주도로 미래 먹거리로 ‘8대 선도산업’을 선정했다. 초연결 지능화, 스마트 공장, 스마트 팜, 핀테크, 에너지 신산업, 스마트시티, 드론, 자율주행차 등이다. 중국 제조 2025가 추진 중인 핵심 10대 산업과 대부분 겹친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산업 육성 정책은 정권마다 녹색성장(이명박 정부), 창조경제(박근혜 정부), 혁신성장(문재인 정부) 등으로 문패를 바꿔 달며 지속성이 없다는 점이다. 10년 넘게 한 가지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중국과 다르다. 김종기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과 우리의 산업정책에서 가장 큰 차이점이 리더십의 지속성 여부”라며 “정권마다 정책이 바뀌어서는 성과를 내기 힘든 만큼 과감한 육성 정책과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특별취재팀=베이징·선전·충칭·항저우(중국)=장정훈·박태희·강기헌·문희철·김영민 기자 cc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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