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안고 숨진 여성의 사연···울음 참으며 부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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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1500여건의 부검을 담당하며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마주한 유성호(47)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신간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펴냈다. 유 교수의 대학교 교양 강의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법의학자로 일하며 겪었던 다양한 경험담과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논제를 소개한다. 책에서 유 교수는 "죽음을 가까이할 때 역설적으로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며 "죽음을 먼저 준비할 것"을 권한다. 그에게 법의학자로서의 경험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책 표지 |
Q : 부검을 수없이 해왔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A :
그간 내가 했던 모든 부검을 다양한 인상으로 기억한다. 그중에서 가장 가슴 깊이 남아 있는 것은 2015년 의정부 아파트 화재로 사망한 여성을 부검한 기억이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여성은 아이를 품에 꼭 안은 채로 소방대에 구조됐다. 아이는 멀쩡했지만, 여자는 전신 화상을 입었고 병원에서 치료 도중 사망했다.Q : 부검 당시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을 울렸나.
A :
그 여자는 어린 시절 부모 없이 보육원에서 자라 입양됐지만 파양됐다. 어른이 되어 한 남자를 만나 임신했지만 남자는 무책임하게 곁을 떠났고, 혼자 아이를 기르던 중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배상을 위해 부검을 하게 됐는데 '고인이 죽기 전까지 얼마나 아이를 걱정했을까' 생각에 속으로 울음을 참으며 부검했다. 끔찍한 사건보다도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이 더 마음에 남는다.Q : 부검할 때 공포는 없는가.
A :
많은 분이 묻는 말이다. 나는 한 번도 무섭다거나 부검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던 적이 없다.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사체를 직접 보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없다. 다만 부패한 시신의 냄새가 매우 지독하다고 느낄 때는 있다. 시신을 직접 보는 것보다는 공포영화를 보거나 으슥한 길을 걷는 것이 더 무섭다.Q : 법의학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A :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건이 부검으로 진실이 드러날 때다. 수사 기관이나 언론에서 진실을 알고 싶어하면 내가 부검이나 자료 조사를 통해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Q : 보람을 느꼈던 구체적인 사례가 궁금하다.
A :
한 여자가 남자 친구와 함께 있는 상태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여성의 신체 여러 군데에서 폭력의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고의성이 없었고 단순 폭행이었는데 여자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부검 결과, 목 부위의 근육을 세밀하게 절개하면서 목을 조른 흔적이 발견됐고 질식사 소견이 나왔다. 결국 남자에게 살인죄가 적용됐고, 고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Q : 법의학자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는가.
A :
없다. 다만 같이 의대를 졸업한 친구들 가운데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 적다 보니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낄 때는 있다. 나는 환자를 직접 보는 동료들의 애환 서린 대화에 직접 참여하기 어렵다.Q : 한국 법의학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A :
법의학자를 교육할 수 있는 인력과 예산이 외국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일본만 하더라도 후생성이 기초과학을 부흥하자는 계획을 세워 법의학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일본 법의학자들이 자신들이 매우 힘들다고 푸념할 때 나는 그냥 조용히 듣고만 있는데 솔직히 매우 부럽다.유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법의학자는 40여 명뿐이다. 다른 의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봉급이 적은 데다 매주 시신을 봐야 하는 부담도 크다. 일본의 경우 70여 개 의대에 모두 법의학자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전국 40개 의대 가운데 11곳에만 법의학자가 있다. 서울대에서도 유 교수 이후 법의학자가 나오지 않았다.
Q : 법의학의 미래를 전망한다면.
A :
22년 전 법의학을 전공하겠다고 마음먹고 당시 법의학교실 주임 교수였던 이윤성 교수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이 교수님은 '지금이 최악이라 더 악화하지는 않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나도 후배들에게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법의학자가 되면 경제적으로 풍요해지거나 환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수 없다. 다만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소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다.<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Q : 수많은 주검을 목격했을 텐데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할까.
A :
백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가지의 삶이 있고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죽음이 가장 행복한지는 확정할 수 없다. 다만 삶의 자연스러운 마지막 과정이 죽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때까지 치열하게 살아서 큰 여한 없이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한 죽음이 아닐까.Q : 기술이 발달해 영생이 가능해지면 죽음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거 같다.
A :
언젠가는 영생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존재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게 전환된 존재는 생명체가 아니다. 만약 나에게 그런 선택지가 온다면 호모 사피엔스로의 소멸을 선택할 것 같다.Q : 굳이 '소멸'을 택하는 이유는.
A :
나는 치열한 삶을 지속하다가 자연스럽고 멋지게 퇴장하고 싶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다가 죽음을 맞고 싶다. 지금도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Q :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
누구나 죽음을 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는 죽음을 전혀 인식하지 않고 천년만년 살듯 오만하게 보내다가 막상 죽음의 징후가 보일 때는 공포에 사로잡혀 인간의 위엄과 존엄을 잃고 허둥지둥한다.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죽음을 미리 숙고하고 어떻게 마무리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현재를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다. 제 책이 한 번쯤 죽음의 의미를 숙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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