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니코틴 살해 뒤 성형까지 했다···'그놈'의 엽기적 행각
[아는형님]
'오사카 신혼여행 살인사건' 범인 검거 류제욱 경위
‘형님’은 사건 현장에서 분투하는 형사들을 부르는 기자들의 은어입니다. 성별에 상관없이 ‘형사님’을 형님으로 줄여 부른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사건 좀 아는, 수사도 할 줄 아는, 그러면서 인간미 넘치고 사회 문제도 공감할 줄 아는 ‘형님’들. 그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중앙일보 연재 기획을 시작합니다.
“형사님.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경찰서에서 심야조사, 밤샘조사 받는 거였어요. 밤새도록 조사 좀 해주세요.”
2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그놈의 빙긋 웃던 표정과 조근조근한 말투가 기억난다. 2018년 1월 20일, 두 번째 경찰 조사를 받으러 온 그놈은 첫 번째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저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억울해하지도, 슬퍼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경찰 조사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1992년부터 경찰 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망 사건을 접했지만, 이렇게 태연한 유족은 처음이었다. 흔히 우리가 호상(好喪)이라고 부르는 죽음에도 유족들은 슬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놈은 하다못해 자전거를 잃어버린 사람보다도 더 담담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싸이코패스 검사 결과 이놈은 40점 만점에 26점을 맞았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보다도 1점이 높다.
‘이놈’은 세간에 ‘오사카 니코틴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범행을 저지른 놈이다. 당시 22살이었던 우경철(가명)은 2017년 4월 25일 일본 오사카로 신혼여행을 가 당시 20살밖에 안된 아내 김지민(가명)에게 니코틴 원액을 주입하는 방법으로 살해했다. 우경철은 일본 경찰에 "아내가 평소 우울증이 심했는데 자살한 것 같다"고 속였고, 화장(火葬)까지 일본에서 다 마친 뒤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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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지나치게 태연했던 남편
단순 자살로 종결될 뻔했던 사건이 나에게 온 것은 지민이가 사망하고 10일 정도가 지난 후였다. 보험회사에서 “아내 사망보험금을 타러 온 사람이 좀 이상하다”며 조사를 의뢰했다. 보험회사에서는 아내가 사망한 후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보험금을 챙기러 온 남편이 의아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일단 조사 차 우경철을 만나 보기로 했다. 2017년 7월 20일, 사건이 발생한 지 약 3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리고 우경철을 처음 만난 그 날 형사로서의 ‘촉’이 곤두섰다. 우경철은 너무나 태연했고, 지나치게 막힘이 없었다.
우리끼리 하는 말로 ‘냄새가 났다’. 지민이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탐문이 시작됐다. 일단은 우경철 말대로 지민이가 자살할 만한 정황이 있었는지 찾아봤다.
우경철 말대로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이 있었는지도 조사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지민이는 오히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취업 면접을 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스스로 임신한 것으로 생각해 우씨 성을 가진 아이 이름을 검색해보기까지 했다.
경찰이 조사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변 사람들로부터 제보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경철이 친구들과의 단체채팅 방에 ‘두 달 뒤에는 버릴거다’ ‘목적이 있으니까 얘랑 만나는거다’ 라는 식으로 올려놓은 글들을 발견하게 됐다.
'오사카 니코틴 살인사건'이 발생한 일본 오사카의 한 호텔 내부 모습. 짐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세종경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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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에 빼곡히 적힌 살인 계획
직접 증거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이대로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사건 발생 7개월 만인 2017년 11월 24일 정식으로 살인 사건으로 수사를 전환하고, 5일 뒤인 29일 우경철 집을 압수수색했다.
우경철 같은 성향의 범죄자는 분명히 어딘가에 범죄 계획을 기록해 뒀을 거라고 확신했기에, 압수수색 전에도 동료들에게 "일기장이나 메모장을 꼭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내 확신은 적중했다. 우경철은 고등학교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 왔다.
우경철의 일기에는 2015년, 그러니까 지민이와 결혼하기 2년 전부터 지민이 앞으로 보험을 들어 돈을 타낼 계획이 자세히도 적혀 있었다. 니코틴을 통한 살해 방법은 물론 ‘칼로 찔러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기’와 같은 플랜B도 있었다. 심지어 지민이가 사망한 이후에는 “보험을 잘못 들어서 1억5000만원밖에 못 받는다. 5억짜리로 신청할 수 있었는데. 3억이 아깝지만 그래도 그 돈이 어디냐”고 기록해 두기도 했다.
'오사카 니코틴 살인사건' 당시 사용된 니코틴 원액이 호텔방에 다른 영수증들과 함께 놓여져 있다. [세종경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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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 등장? 알고보니 살인미수 피해자
그런데 일기장을 분석하다 보니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우경철의 동창 황수연(가명)이었다.
우경철은 황수연을 통해 니코틴 원액을 구했다고 써 놨다. 공범의 등장이라고 생각했다.
출입국기록을 살펴보니 황수연과 우경철은 함께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었다. 범죄의 예행연습이라고 보기 충분했다.
2018년 1월 31일 황수연을 불렀다. 황수연은 우경철에게 니코틴 원액을 구해 준 사실도, 일본을 간 사실도 인정했다.
그런데 황수연으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됐다. 2016년 12월 21일 우경철과 함께 일본 오사카에 갔던 황수연은 그날 밤 우경철이 준 숙취해소제를 먹었다.
그런데 역한 맛 때문에 한 입 먹고 다 뱉어낸 뒤 그 다음날 계속 끙끙 앓았다는 것이다. 니코틴 중독 증세와 일치했다. 또 우경철이 황수연 앞으로 여행자보험을 들고, 보험금 수령인으로 본인을 설정해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민이 살해 방법과 똑같았다. 2018년 3월 7일 뒤늦게 일본에서 온 지민이의 부검의견서에도 ‘니코틴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사카 니코틴 살인사건'이 발생한 일본 오사카 호텔 내부 화장실의 모습. 니코틴 주사 당시 피해자 김모(당시 20살)씨가 흘린 혈흔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혈흔은 모자이크 처리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세종경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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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후에도 또 다른 살인 대상 물색
지난해 3월 마지막으로 우경철을 조사할 때까지 그는 범죄 사실을 부인했다. 그것도 매우 기상천외한 내용으로 부인했다.
지민이에 대해서는 자살이라고 하다가 “지민이가 자살하고 싶어해서 니코틴 주사기를 꽂아주기만 했다. 피스톤을 누른 것은 지민이다”라고 했다. 황수연에 대해서는 “니코틴 원액을 탄 것은 맞다. 하지만 장난을 친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전형적인 싸이코패스였다. 모든 증거가 우경철의 살인과 살인미수를 가리키고 있었다. 결국 우경철은 10월 대법원에서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가 모두 인정돼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경찰의 수사가 없었더라면 단순 자살로 종결될 뻔한 사건이었다. 그렇게 끝났다면 제 2의, 제 3의 지민이가 나올 수도 있었다.
우경철의 일기장 첫 장에는 ‘40살까지 10억 모으기’라고 적혀 있었다. 우경철은 지민이를 죽인 후에도 10대 후반의 어린 소녀들에게 접근해 지민이와 같은 방식으로 속인 뒤 보험금을 타 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성형까지 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호감형으로 만든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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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형돼 나올까봐 걱정…"끝까지 주시한다"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지만, 마음 한 쪽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 있다. 우경철이 혹시라도 감형을 받아 20년, 25년을 살다 나와도 여전히 40대 중반이다. 여전히 참 젊다.
그래서 내 불안감이 아니길 바란다. 우경철이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평생 속죄하길 바란다.
하지만 혹시라도 우경철이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내가 퇴직을 한 이후라도 끝까지 우경철을 주시할 거라고 말이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경찰들이 우경철 당신을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말이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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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류제욱 경위 및 사건 관계자들의 심층 인터뷰 및 사건기록 등을 바탕으로 류 경위의 시점에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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