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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임신을 했다, 그러나 마냥 기쁘지 않다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







[※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일본 홋카이도 북부 비에이 지역에 "비에이 언덕"이라는 관광명소가 있습니다. 국내외 CF와 영화에서 등장할 정도로 아름다운 비에이 언덕은 '파노라마 로드'와 '패치워크 로드'로 나뉘는데요. 여기서 패치워크는 다양한 색과 무늬, 소재의 천 조각을 이어 붙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 길이 마치 패치워크처럼 보여 사람들이 패치워크 길이라 부르고 있죠.


이런 '패치워크'에 요즘 '가족'이라는 말이 붙어서 쓰이고 있습니다. 이혼과 재혼으로 인해 생겨난 가족을 의미하죠. 오늘 영화는 패치워크 가족이 겪는 성장통을 그린 영화 '친애하는 우리 아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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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중년 남자 타나카(아사노 타다노부 분)는 재혼 가정의 가장입니다. 아내 나나에(다나카 레나 분), 그녀의 두 딸 카오루(미나미 사라 분), 에리코(아라이 미우 분)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일에 파묻혀 사는 다른 아빠들과는 달리 타나카는 퇴근 후 술집보다는 딸들을 위한 케이크 가게를 찾는 가정적인 아버지입니다.


단란하기만 했던 이 가족에게 기쁘지만 기뻐할 수 없는 일이 생기는데요. 나나에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죠. 이때부터 이 가족에게 보이지 않던 균열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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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재혼 가정의 가장인 타나카의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아내는 임신했고, 평소 일보단 가정을 우선해 주요 관리직에서도 물러나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카오루는 엄마의 임신 소식을 듣고 난 후 차갑게 변해버렸죠.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딸 사오리(카마타 라이쥬 분)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불안한 상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영화는 타나카의 이야기만 보여주진 않습니다. 일과 육아에서 갈등하다 타나카와 마찰을 빚어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되는 전 부인 '유카(테라지마 시노부 분)', 전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두 아이를 지켜낸 뒤 가정적인 타나카와 재혼한 '나나에', 엄마와 새 아빠 사이에 동생이 태어나면 혹시나 버림받을까 두려워 반항심을 드러내는 딸 '카오루'까지…. 이들을 들여다보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는 상황과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인이 감독인 영화이고 주제가 가족을 다루고 있다 보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저절로 비교됩니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제목 그대로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춰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 영화는 가족이 한 번 해체되었던 두 사람이 '새로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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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야기와는 별개로 제 눈길을 끌었던 한 장면이 있습니다. 타나카가 아이 때문에 유카와 만나게 되는 장면인데요. 유카는 재혼한 남편이 암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남편의 병을 미리 알아채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낍니다. 이때 타나카는 그녀의 남편이 어쩌다 병에 걸렸는지에 대해서만 묻고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게 됩니다. 그녀의 '기분'을 말이죠.


유카는 타나카에게 '여전히 이유는 물으면서도 기분을 묻지 않는다'고 말하는데요. 여기서 남녀 사이의 대화에서 각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가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남자는 주로 이유(why)가 중요하고 여자는 이유(why)보다는 기분(How)에 중점을 두죠. 이점은 부부 또는 연인 사이의 대화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타나카가 한 번이라도 유카의 기분을 물어주었다면 그들의 가정이 (어쩌면) 유지되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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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좋았던 점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갈등이 해소되고 사랑으로 극복했다는 결말이 '아닌' 점입니다. 이 가족에겐 어쨌든 새 가족이 태어나고 다른 두 딸이, 아니 사오루까지 세 딸이 커 가면서 겪어야만 하는 갈등이 있을 겁니다. 그 갈등을 지혜롭게 극복해 낸다면 평범한 가족으로 남게 될 수도, 아니면 극단적으로 말해 결국 화합하지 못하고 또 다른 해체를 맞이할지도 모르죠.


이와이 슌지 감독이 이 영화를 보고 "이 가족의 몇 년 후를 상상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지 않을까"라고 말한 것처럼 저도 이 가족이 어떤 변화를 겪어내고 진정한 가족을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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