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원 수입 조명 안부럽다, 조명시장 놀래킨 ‘을지로의 힘’
'메이드 인 을지로' 조명 브랜드, 아고(AGO)
비싼 수입 조명과 짝퉁 사이 대안으로 출발
세계 유명 디자이너와 을지로 기술력 협업
8일까지 ‘DDP 디자인페어’서 제품 선보여
인테리어의 완성은 조명이라고 했던가. 공간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조명이 인테리어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하지만 막상 멋진 조명 하나 구매하려고 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일단 인테리어 화보에서 볼 법한 수입 조명은 비싸다. 요즘 인기 있는 루이스 폴센, 세르주 무이의 조명은 최소 기백만원. 조금 저렴한 조명으로 눈을 돌리면 온통 복제품이다. 조명 거리로 유명한 을지로도 마찬가지다. 디자인이 괜찮다 싶으면 어김없이 수입 조명 디자인을 살짝 변형한 제품이 대부분. 비싼 수입 조명과 저렴한 복제품으로 양극화된 한국 조명 시장의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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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디자인을 선보이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국산 조명은 없을까. ‘아고(AGO)’는 국내 조명 제조‧유통의 심장이라 불리는 을지로에서 탄생한 국산 조명 브랜드다. 지난달 7일 아고 전시가 열린 서울 강남구 역삼동 '덴스크'에서 이우복 대표와 유화성 디자이너를 만났다.
아고의 시작은 지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구청과 서울디자인재단 등이 디자이너와 상인을 연결하는 ‘바이(BY) 을지로’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유통과 제조가 가능한 을지로의 산업 장인들과 독창적 디자인이 가능한 디자이너를 연결해 국산 디자인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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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디자이너들에게 (복제품이 많은) 을지로는 불편한 장소죠.” 아고의 디자인 디렉터이자 ‘바이마스(Bymars)’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유화성 디자이너의 말이다. 2017년 당시 새로운 조명을 개발해보자는 목표로 디자이너와 상인 10팀이 모였지만 수월하지만은 않았던 이유다. 하지만 을지로에서 30여년간 조명 업계에 몸담았던, 당시 ‘모던라이팅’의 이우복 대표를 만나고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우복 대표는 복제품 일색인 을지로의 현실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오리지널 디자인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디자이너와 어떻게 협업해야 할지, 오리지널 디자인을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지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높았던 벽은 대화를 통해 허물어졌다. ‘바이 을지로’ 프로젝트가 끝날 때쯤 유화성 디자이너는 “이렇게 하나로 끝내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을지로에서 제조하는 오리지널 디자인 조명 브랜드를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아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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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기간만 2년. 해외 시장에서 '한국산'이라고 떳떳하게 내놓고 경쟁할 만한 조명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약 10여년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했던 유화성 디자이너의 경험이 빛을 발했다. 해외 유명 브랜드가 어떻게 제품을 개발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디자이너와 제조사가 협업하는지 쭉 봐왔던 유 디자이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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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성 디자이너는 스웨덴 콘스트팍에서 산업 디자인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2010년 디자인 스튜디오 바이마스를 설립했다. 제품 디자이너로서 가구와 조명 등 일상의 물건을 통해 다양한 전시, 협업 활동을 해왔다. 2010년 스웨덴 영 디자이너, 2012년 엘르 데고 랩 탤런트 디자이너로 선정됐다. 기능과 조형의 균형을 이루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유 디자이너의 관점은 아고의 브랜딩에도 반영됐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우선이었어요.” 아고는 간결하고 절제된 디자인, 건축 조명과 장식 조명의 경계를 아우르는 조화로운 조명을 추구한다. 장식 조명은 말 그대로 공간을 장식하는 조명이다. 건축 조명은 공간 구성의 필수 요소로 기능적 조명을 담당한다. 현재 조명 시장은 이 둘을 분리한다. 유 디자이너는 “일하는 공간과 거주하는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게 요즘 생활 방식”이라며 “아고를 통해 장식 조명과 건축 조명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건축가와 디자이너에게 좋은 선택지를 제시해주고 싶다”고 했다. 장식 조명이라고 하기엔 기능적이고, 건축 조명이라고 보기엔 장식적인 지점을 찾아내 조형성과 기능성 사이의 균형을 이루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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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방향을 정립한 후에는 같이 협력할 디자이너들을 찾았다. 유 디자이너가 전체 디렉팅을 맡고, 각 컬렉션별로 고유 디자인 감수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감도 높은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는 해외 브랜드의 작업 방식이기도 하다. 유화성 디자이너의 바이마스를 포함해 국내외 실력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6곳과 소통하며 새로운 조명 제품을 만들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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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실력 있는 디자이너가 있다 하더라도 제조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제품은 나올 수 없다. 디자인 정체성을 확립하고 좋은 디자이너를 영입했지만 지난 2년의 과정이 녹록지 않았던 이유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인공위성도 만든다는 청계천, 을지로의 제조 기술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도 없진 않았다. 디자인이 없어서 못 했지, 제조 기술만큼은 뒤지지 않는다는 을지로의 자부심을 믿었지만 막상 제조를 시작해보니 아쉬움이 많았다. 을지로 기술 장인들의 세대교체가 늦은 탓에 장비도 노후 됐고 기술은 정체됐다.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으려다 보니 세계적 기술과의 차이도 벌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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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복 대표는 “모르면 몰랐지 알았으면 시작 못 했을 것”이라고 했다. 아주 작은 제품을 만들면서도 개발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되풀이됐다.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복제품 제조와는 완전히 다른 작업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완만한 구 형태, 라인 하나까지 형태를 잡는 데도 애를 먹었다. 유 디자이너는 “완벽함의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어디까지 제품의 질을 끌어올릴 것인지 결정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세계적인 조명회사도 신제품 하나를 개발하는 데 1~2년이 걸리는데, 아고는 브랜드 설립 후 약 2년 만에 6팀의 디자이너와 함께 8개의 컬렉션을 내놨다. 이 대표는 “짧은 시간 동안 어마어마한 일을 했다”며 “아고를 통해 한국 조명 제조업을 살리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해보자는 야망이 없었다면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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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디자인 페어 ‘메종&오브제’에 출품하기도 했다. 국내보다는 세계 유명 브랜드와 경쟁하고 싶다는 포부에서다. 유 디자이너는 “굳이 한국 브랜드임을 내세우지 않고 세계적인 조명 브랜드와 경쟁해보겠다”며 “그만큼 (디자인이) 잘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비췄다. 물론 국내 시장에서도 승산은 있다. 오리지널 디자인 조명이면서도 가격대는 개당 10만~70만원대 정도다. 비슷한 디자인 품질의 수입 조명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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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아고의 성공적인 출발에 힘입어 을지로 소상공인과 디자이너들의 협업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12월 4일부터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소상공인과 함께하는 DDP디자인 페어’가 열린다. 총 43팀의 소상공인과 디자이너가 지난 5개월간 개발한 디자인 제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아고는 우수사례로 선정돼 8개 전체 컬렉션을 전시한다. 현재 따로 쇼룸이 없는 아고의 전체 제품들을 실제로 볼 기회다. 전시는 8일까지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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