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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건축가의 일침 "서울 도산대로에 좋은 건축 없다"

영국 테이트 모던,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설계

세계적인 건축가 듀오 헤르조그 앤 드 뫼롱

삼탄&송은문화재단 도산대로 신사옥 설계

"차분하게 파워풀하게…공간의 퀄리티로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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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직설적이고 단호했다. 그들이 "100년을 내다보고 지은 건물"을 운운했을 때 이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일하는지 명확해지는 듯했다. 퀄리티(Quality), 퀄리티, 또 퀄리티…. 건축에 대한 그들의 얘기는 퀄리티로 시작해 퀄리티로 끝났다. 듣는 이를 당황하게 할 만큼 단호한 어투로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사명감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최근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듀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 얘기다. 삼탄&송은문화재단이 서울 청담동에 건립 예정인 신사옥 설계를 한 이들은 24일 기공식에 참석한 뒤 서울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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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조그와 드 뫼롱은 두 건축가, 즉 자크 헤르조그(68)와 피에르 드 뫼롱(68)의 성으로, 둘이 1978년 창립한 건축설계사무소 이름이기도 하다. 1950년 바젤에서 태어나 한동네에서 자라 일곱살 때부터 친구인 이들은 60년을 함께한 죽마고우다.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을 나란히 졸업하고 지난 40년간 함께 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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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름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영국 런던의 자부심이 된 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2000) 프로젝트다. 기존의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한 테이트 모던은 건축물 자체의 매력을 극대화해 낙후된 사우스뱅크 지역을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공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이들은 2001년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으며,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프라다 빌딩(2003), 중국 베이징 올림픽 주 경기장(2008), 독일 엘프 필하모니 함부르크(2017) 등 각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건물을 설계했다. 현재 이스라엘 국립도서관(2020년 완공예정) 등이 진행 중이며, 유럽 여러 곳에서 도시 디자인에도 참여하고 있다.


2021년 6월에 완공될 삼탄&송은문화재단의 신사옥은 이들이 설계한 국내 최초의 건물이 될 예정이다. 송은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송은아트스페이스, 송은아트큐브, 송은 수장고를 비롯 삼탄 본사가 이곳에 입주한다.


해마다 세계에서 약 200건 이상의 설계 의뢰를 받고, 세계 유수의 뮤지엄과 미술관을 설계한 이들이 이 프로젝트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공식 기자 간담회에 이어 소수의 매체가 참여한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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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왜 이 프로젝트인가.


A : “규모는 작지만, 서울 도심 한가운데 하나의 문화 허브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환상적인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강남의 도산대로는 규모도 매우 크고, 굉장히 상업적인 곳이다. 여기에 비상업적인 예술 공간을 조성한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Q : 설계 전에 도산대로 주변을 분석했다고.


A : “설계의 방향을 찾기 위해선 당연히 필요한 작업이다. 이 주변의 다양한 요소를 검토하고 분석했는데, 이 지역의 아이덴티티나 일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빌딩의 사이즈, 높이, 건축 자재 등이 각양각색이더라. 제가 오만해서 드리는 말씀은 아니고, 다양하지만 좋은 건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영감을 얻기도 어려웠다.”




Q : '일관성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A : “역사의 흔적 등 우리가 참고해야 할 것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옛 도심에 지어지는 건물이었다면 아마도 지역 특성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삼탄&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은 "도산대로의 다른 건물과 크게 차별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건축을 가리켜 "제약의 비즈니스"(Business of Restriction)라고 정의한 헤르조그는 "조건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공간의 퀄리티와 그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 그게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조형적 가치를 고민한 끝에 삼각형 형태의 건축물을 구상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건축은 "시간의 비즈니스"(Business of Time)라는 말도 덧붙였다. 첫째는 시간의 제약을 받으며 하는 일이고, 둘째, 시간으로 평가받는다는 의미였다.




Q : 차별화의 방법은.


A : "조형은 미니멀하게, 마감 재료는 단일하게, 작업은 정교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대로를 마주한 면엔 빌딩의 창문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되도록 차분한 입면을 만들고 싶었다. 대신 건물의 개방성은 다른 식으로 풀었다. 건물 후면에 테라스를 층층이 배치했고, 입구에 작은 정원을 마련해 로비 공간이 정원과 이어지게 했다."




Q : 창문을 최소화하면 폐쇄적인 느낌을 주지 않을까.


A : "그렇지 않다. 차분해도 충분히 파워풀 한 형태가 될 수 있다. 입면이 더 번쩍번쩍하거나 더 투명하면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올까? 창문이 많은 게 꼭 개방적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우리의 대답이다."




Q : 많은 미술관과 뮤지엄을 설계했다. 이곳은 어떤 점에서 다를까.


A : "미술관, 박물관은 예술작품만을 보기 위해 오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고, 여유로운 시간을 누리는 곳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인 공공장소다. 이곳이 독특한(unique) 매력으로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올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곳이 되기를 바라며 설계했다. 이렇게 다양성을 갖춘 공간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건물의 콘크리트 외벽은 다양한 소나무 결의 형태를 살려 거푸집을 만들었다"며 "정교한 작업으로 마치 부드러운 옷감처럼 촉각적인 감성을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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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혹시나 서울 강남이라는 지역에서 최대치의 용적률에 대한 압박 때문에 정원 등 공공 공간 조성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느냐고. 그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답했다.

"작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정원이다. 설계를 다시 한다고 해도 바꿀 것은 하나도 없다. 최선을 다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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