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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 엑스레이 사진에 난리난 병원…청년 현실 담은 코미디 '메기'

26일 개봉 '메기'로 장편 데뷔 이옥섭 감독

몰카·취업…청년고민 담은 유쾌발칙 코미디

성관계 엑스레이 사진에 발칵 뒤집힌 병원,

뻥뻥 뚫리는 싱크홀 "우리 세대 처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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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성관계하는 엑스레이 사진이 발견되면서, 병원이 발칵 뒤집힌다. 간호사 여윤영(이주영)은 자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직서를 쓰려 하지만, 다음날 병원에 가보니 자신과 부원장(문소리) 외엔 아무도 출근을 안 한다.


26일 개봉한 영화 ‘메기’는 예측불허의 전개와 톡톡 튀는 색감, 감각적인 화면이 눈길을 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인권에는 관심 없죠. 찍힌 게 누군가에만 관심을 가져요.”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허를 찌르는 이 내레이션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메기(목소리 천우희), 이 영화의 제목이자 병원 어항 속에 사는 물고기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이옥섭(32) 감독의 장편 데뷔작. 기성 문법에 익숙한 관객에겐 ‘방금 뭘 본 거지’ 싶을 만큼 설정 하나하나 기상천외하다. 그 안에 믿음과 불신, 취업난, 주거문제 등 청년세대 고민을 촘촘하게 버무렸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주연 이주영의 올해의 배우상부터 CGV아트하우스상·시민평론가상·KBS독립영화상 4관왕을 차지하며 입소문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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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호러 상관없이 '청년' 다뤄달라"


이 감독은 단편시절부터 개성 강한 연출로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그의 단편 속 사람들은 이미 헤어진 연인과 제작지원금 때문에 셀프 연애 다큐를 찍고(‘연애다큐’), ‘남친’의 거짓말을 반려견에게 추궁하며(‘세마리’), 선인장과 사람처럼 이별한다(‘걸스온탑’). 그와 대다수 단편을 공동 연출한 구교환 감독이 이번 영화에선 주인공 윤영의 남자친구 성원 역 주연과 프로듀서를 겸했다.


이 감독을 17일 서울 동작구 아트나인 극장에서 만났다. “구슬 옥(玉)에, 불꽃 섭(燮). 불타는 옥구슬이라고,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어요.” 강렬한 영화만큼 강렬한 이름. “저도 ‘불신’이 베이스”라면서도 “주위 사람에 애정도, 호기심도 많다”는 그에게 극 중 윤영의 모습이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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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로 시작한 영화다. 그는 “‘청년을 다뤄달라. 호러든, 코미디든 상관없으니 젊은 사람들이 재밌게 공감하면 된다’는 제안에 마음이 끌렸다”고 했다.


Q : ‘메기’란 제목이 독특한데.


A : “처음엔 여자 간호사가 어둠 속에서 어항 안 물고기를 하염없이 들여다보는 장면이 가슴에 떠올랐다. 낮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예전에, 아는 배우가 자신이 운영하는 오토바이 가게 어항에 한강에서 우연히 잡은 뱀장어를 키웠다. 금붕어나 거북이가 살 법한 어항에 뱀장어가 있으니 그 공간 자체가 새롭게 다가오더라. 메기는 더러운 물에서도 살 수 있고 지진도 감지하잖나. 신비로운 생명체라 생각했다. 그 정도면 이 여자가 무슨 일을 겪었든지 위로해줄 수 있을 듯했다.”


Q : 배우 천우희가 메기 목소리를 연기했다.


A : “단편 ‘걸스온탑’을 함께할 때 목소리가 신뢰감 있고 따뜻하더라. 동갑인데 언니 같았다. 내가 느낀 위로를 관객에게도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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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힘든 세상, 연애도 쉽지 않다


영화의 큰 줄기를 이루는 건 윤영과 성원의 연애사다. 그러나 누군가를 믿기 힘든 세상에서 이들의 사랑은 쉽지 않다. 그는 “영화는 (만드는) 그때의 나를 닮는다”며 “끊임없이 상대를 의심하는 근원이 뭘까, 생각하니 불안감이 떠올랐다”고 했다.


“서울에서 아무 일 없이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항상 곤두세워야 하잖아요. 영화 속 윤영처럼 사는 집을 자주 이사해야 하니까 부동산시세를 꿰게 돼요. 신촌 화장실 ‘몰카’처럼 나도 30년 살아오며 어디선가 찍혔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죠. 그런 파편들이 영화에 반영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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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제를 발랄한 이미지로 다루며 독립영화가 무겁다는 선입견도 뒤집었다. 문제의 사진이 찍히는 엑스레이실은 미국항공우주국(NASA, 영화엔 철자를 하나 틀린 NASE로 나온다) 로켓 발사실처럼 표현했다.


“초등학교 때 같이 살았던 고모들이 나쁜 기억으로 남았을지 모를 심각한 순간마다 나를 웃게 했다. 그때부터 유머의 힘을 느꼈다”는 그다. 영화를 보고 누군가 ‘몰카’의 끔찍한 트라우마를 돌이키게 되지 않도록 돌려 표현할 방법을 찾다 보니 엑스레이 뼈 사진에 다다랐단다.


Q : 재개발반대 시위대는 푸른 천막 위에 바캉스를 즐기는 듯 그렸는데.


A : “2017년에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땐 현실이 더 영화 같았잖나. 광화문 시위 현장에서 누구는 기타 치며 노래하고, 아주머니들이 음식도 나눠주는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평화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게 좋았다.”



편의점 앞 거대 싱크홀…우리 처지 같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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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색감, 리듬감 있게 변화하는 화면도 눈이 즐겁다. “현재 우리의 얘기고, ‘지금’이 이렇게 생생하니 화면이 생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3억원이란 초저예산임을 생각하면 놀라운 만듦새다. 매의 눈으로 로케이션을 찾아낸 결과다. 인천 운염도를 제외한 모든 장소를 서울에서 촬영했다.


불신의 공포와 함께 도시 곳곳에 뻥뻥 뚫리는 싱크홀은 3년 전 일본 어느 편의점 문 앞에 커다랗게 싱크홀이 생긴 뉴스 사진에서 착안했다.


“그때 사람들 댓글이 저기 ‘알바생’ 어떻게 나오냐, 그랬어요. 정말 여느 때처럼 편의점에 출근해서 일하다가 집에 가려는데 문 여니까 그냥 낭떠러지가 생긴 거잖아요. 그게 우리 세대 처지처럼 느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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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다움’에 대한 재기발랄한 반격도 나온다. 윤영은 엑스레이 사진의 피해자로 의심받는 자신에게 오히려 처분을 기다리라는 부원장을 향해 발끈한다. 누가 봐도 “흔히 생각하는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나있는” 또 다른 인물도 나온다. “특이한 코트를 입고 머리에 비둘기를 얹고, 오늘도 장 봐서 음식을 잘해 먹을 것 같은 사람이 그런 황량한 곳에 누군가를 불러내서 어떤 사실을 말한다면? 사람들은 잘 안 믿으려고 하겠죠, 본인은 진짜여도.”


‘세상은 결국 오해를 견디며 사는 것 아닐까. 진실을 마주한 다음 나의 태도를 어떻게 취하는 것이 좋을까.’ 지난해 부산영화제에 그가 밝힌 연출의도다.



래퍼 던밀스 유튜브 보고 캐스팅


독립영화계 걸출한 신인·중견 배우들의 조합도 절묘하다. 그는 “이주영 배우는 궁금하면 부딪쳐보고 리드할 수 있는 강한 에너지가 윤영과 꼭 맞아 첫 만남만에 캐스팅했다. 문소리 선배님은 내가 스무살 때 연극 ‘슬픈연극’ ‘거기’ 등을 맨 앞줄에서 볼 정도로 광팬이다. 시나리오 쓸 때부터 해주시기를 소망했다”고 설명했다. 싱크홀 복구현장 청년 일꾼 역엔 래퍼 ‘던밀스’가 나섰다. 힙합 유튜브 ‘황치와 넉치’를 진행하는 것을 본 구 감독이 “연기 잘할 것 같다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을 밀어붙이며 캐스팅했단다. 구 감독 자신도 말할 것 없는 주목받는 배우다. 독립영화 ‘꿈의 제인’의 인상적인 트랜스젠더 연기 뒤 연상호 감독의 새 좀비물 ‘반도’에도 캐스팅됐다.



4수 끝에 영화과 가며 감독 꿈꿔


“후반 작업까지 거의 1년이 걸렸어요. 단편과 달리 오래 껴안고 있다 보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어요. 처음엔 미친 듯이 자신감 있다가도 또 사람들이 재밌어할까,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 같은 마음이죠.”


첫 장편을 마친 소감을 이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어릴 적부터 영화를 즐겨 보며 홍보․마케터를 하려나, 싶었다는 그는 4수 끝에 서울예대 영화과에 가며 이야기를 만드는 데 재미를 붙였다.


“영화는 진짜 경험한 것도 꾸민 이야기라며 숨을 수 있잖아요. 나를 속 시원히 드러내면서도 누구한테 상담을 받듯 마음이 편해져요. 학교 다닐 땐 영화가 너무 개인적이다, 그 큰돈으로 네 얘기를 하려고 하느냐는 지적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막연히 재밌게 봐주길 바라며 만들었는데 대중도, 저도 재미없으면 이도 저도 안 되잖아요.” 그는 “지금 할 수 있는 건 매일 내 이야기를 조금씩 써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면서요. 제가 재밌다고 느낀 것을 관객들도 재밌게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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