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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 농부시대…“월 200씩 받으니 빚 안 져도 되네요”

‘농업인 월급제’ 신청 2년 새 2.6배 ↑

수매대금 월 30~200만원 선지급

수확기인 10월에 이자 없이 상환


농가 실질소득 높이는 데엔 한계

약정 어길 경우 대비책도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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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 이완용(47)씨는 월급쟁이 농부다. 포도 농사(1만6500㎡)를 시작하는 1월부터 출하를 마치는 10월까지 매월 200만원씩 통장에 꽂힌다. 이 월급은 지역 농협을 통해 1년 치 수매 대금의 일부를 나눠서 받는 돈이다. 설과 추석이 낀 달엔 200만원을 더 받는다.

그는 포도 외에도 벼(3만3000㎡)와 고추·마늘까지 재배하는 대농(大農)이다. 하지만 대다수 농업인처럼 추수 이후에나 목돈을 만질 수 있다. 이마저도 농협 대출금과 재료비를 갚으면 이듬해 5~7월쯤 자금이 곤궁해진다. 이씨는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인건비를 위해 연초 2000만원 정도를 대출받기 일쑤였다”며 “2016년부터 월급을 받으니 빚을 지지 않고 가계·영농을 계획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가을철 뭉칫돈보다 월급을 택하는 농민이 늘고 있다. 도시 월급쟁이처럼 매월 고정적으로 돈을 받는 ‘농업인 월급제’ 덕분이다. 2013년 경기도 화성시를 시작으로 전남과 전북·충남·충북·경남·경북 지역의 기초자치단체에서 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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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국회의원(비례)이 농협중앙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농업인 월급제를 시행한 지역은 27개 시·군, 신청자는 4600여 농가에 달했다. 총 월급 지급액은 366억2400여만 원이다. 농업인 월급제가 본격 확산한 2016년(10개 시·군, 1766개 농가)과 비교할 때 신청자 수가 약 2.6배 증가했다. 올해는 전남·강원 등 10개 시·군이 추가로 참여했다.

농업인 월급제는 농협 등에 책정된 계약 수매대금을 농가가 연중 분배해 미리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자치단체가 농협 등과 연계해 30만~200만원 가량의 월급을 1월부터 10월까지 농가에 지급한다. 농민들은 받은 월급 총액에 이자를 보태지 않고 수확기인 10월께 갚으면 된다. 수매계약 맺은 만큼 판 뒤 월급의 총 지급액을 갚는 형식이다. 벼농사에 한정됐던 작물은 지역 사정에 맞춰 배와 감자·무 등으로 확대됐다.


전남 나주시 다시면에서 벼와 양파 농사를 짓는 이만호(43)씨는 지난해 농업인 월급제를 신청해 매월 60만원을 받았다. 이씨는 “양파 수확 전인 5~6월에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데 월급을 받아 충당한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시 내수읍에 사는 민철식(64)씨는 “예전에 농가당 1000만원씩 가능했던 영농자금 대출 규모가 400만원 밑으로 떨어져 농약·비료 대금과 기계 대여비를 갚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5월 모내기 때와 9월 수확기 때 발생하는 인건비와 생활비를 200만원씩 받는 월급으로 해결한다”고 했다.


하지만 농업인 월급제가 실제 소득을 높이는 방안은 아니다. 그래서 등장한 게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제)이다. 농민수당은 영농규모나 수확량 등에 상관없이 농가에 소득보전 개념으로 일정액을 주는 제도다. 전남 해남, 충남 부여 등 일부 지역에서 도입했으며 농가마다 연간 50~60만원을 지원한다. 의성마늘명품화사업단장을 지낸 김현권 의원은 “농업인 월급제는 결국 갚아야 할 돈을 선지급 받는 형태일 뿐 농가 실질소득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일부 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농민기본소득제를 확대하거나,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평가해 소득을 보전하는 형식의 ‘공익형농업직불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병규 농협중앙회 미래경영연구소 연구원은 “대개 경작지 면적에 따라 월급이 정해지기 때문에 소규모 농가는 영농에 재투자하거나 생활비를 보태는 데 역부족이라는 의견도 있다”며 “극소수지만 수매를 약정한 농가가 출하하지 않을 경우 농협이 본 손해를 보전하는 장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종권 기자, [전국종합]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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