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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물길·하늘길… 청풍호반 봄 알리는 세 가지 길

충북 제천 봄맞이 여행

호숫가 봉우리 이은 자드락길

옥순봉 밑에까지 카야킹 체험

케이블카선 장쾌한 호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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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은 물의 도시다. 충주 계명산 아래 충주댐에서 시작해 단양 도담삼봉에 이르는 면적 6600㎡의 인공 호수 청풍호가 제천의 허리춤을 관통한다. 공식 지명은 ‘충주호’이나 제천에서는 ‘청풍호’로 통한다. 1985년 충주다목점댐 건설로 제천시 청풍면 29개 리 중에서 27개 리가 수몰됐다. 제천에서 청풍호라는 이름이 각별한 까닭이다. 호수 면적의 약 60%가 제천에 속한다.

봄날 제천의 주인공은 청풍호다. 벚꽃이 82번 지방도로를 따라 청풍호를 감싸고, 제천의 이름난 걷기여행길 ‘자드락길’도 굳이 전망대까지 올라 물빛 올라온 청풍호를 내려다본다. 노를 저어 호수를 가로지르고, 호수를 겹겹이 두른 산을 오르내리고, 지난달 개통한 비봉산(531m) 케이블카도 올라타 청풍호에 내려앉은 봄을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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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호에는 벚꽃만 있는 게 아니다. 여행자 대부분이 82번 지방도로를 돌며 청풍호반 드라이브를 즐기지만, 병풍처럼 호수를 두른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청풍호의 진짜 주인공이다.

청풍대교를 내려다보는 망월산(336m). 그 북쪽 자락에 있는 청풍문화재단지는 가장 손쉽게 오를 수 있는 청풍호반의 언덕이다. 1978년 충주다목점댐 건설이 시작되면서 마을이 수몰되자, 제천시는 이 언덕에 고가와 문화재를 옮겨 단지를 조성했다. 고려 시대 누각 ‘한벽루’를 지나, 망월산성(237m)에 오르자 언덕 아래 청풍대교까지 시야가 트였다. 지난 5일 청풍호의 벚꽃은 일렀으나 살구꽃·매화·복사꽃은 지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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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풍경은 옥순봉(286m) 정상에 있었다. 36번 국도변 계란재 고개를 들머리로, 약 2㎞ 산길을 오르니 짙푸른 청풍호가 낭떠러지 아래로 펼쳐졌다. 정상 아래 바위 언덕이 청풍호의 ‘얼짱 각도’를 잡을 수 있는 장소였다. 노송들 사이로 너른 청풍호와 쭉 뻗은 옥순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제천에는 청풍호반 구석구석을 누비는 걷기여행길 ‘자드락길’이 있다. 7개 코스로 모두 58㎞에 달한다. 이순여(54) 해설사를 따라 6코스 괴곡성벽길을 걸었다. 그 길 위에 청풍호를 내려다보는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가 있다고 했다. “걷기여행길치곤 험한 편이어서 불평하는 사람도 많지만, 가장 자드락길다운 길”이라고 했다.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을 뜻하는 우리말이 자드락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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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곡성벽길은 두무산(478m) 동쪽 비탈을 오른다. 약 10㎞ 길이의 길인데, 수산면 괴곡리 옥순대교를 시작으로 청풍호 전망대까지 4㎞만 왕복해도 충분하다. 좁은 임도를 40분께 오르니 풀냄새 가득한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제비꽃·솜나물·회양목꽃 같은 봄꽃도 길섶에서 장단을 맞췄다. 구불구불한 산길 끄트머리에 청풍호 전망대가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니 청풍호가 360도로 열렸다. 청풍호를 감싼 두무산 밑자락은 과연 성벽이라도 불러도 좋을 법했다. 날이 탁했지만, 월악산(1094m)과 금수산(1016m)이 내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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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순봉은 봉우리인 동시에 절벽이다. 밑에서 올려다볼 때 남다른 맛이 있다. 옥순봉이라는 유순한 이름을 지은 건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다. 희고 푸른 절벽이 하늘 향해 쭉쭉 뻗은 것이, 비 온 뒤 대나무 순이 올라온 듯하여 ‘옥순봉(玉筍峰)’이라 붙였다 전한다. 그 기세 넘치는 육체가 김홍도의 1796년 그림 ‘옥순봉도’에도 남아 있다.

옥순봉을 구경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옥순봉을 마주 보는 가은산(575m) 초입 전망대나 옥순대교 위가 가장 편한 전망 포인트다. 청풍호 유람선을 타는 방법도 있다. 청풍면 청풍나루, 단양 단성면 장회나루에서 출발한 유람선이 줄기차게 옥순봉을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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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호의 넘실대는 남한강 물은 옥순봉 모퉁이를 돌아 괴곡리에서 숨을 고른다. 겹겹이 골짜기가 많아 바람이 거센 청풍호지만, 괴곡리 만은 예외다. 두무산·가은산·옥순봉이 바람막이 역할을 해준다. 이 잔잔한 호숫가에 지난 2015년 카약 체험시설이 생겼다.

카야킹은 옥순봉과 청풍호반을 가장 가까이서, 그리고 역동적으로 즐기는 방법이다. 옥순대교 남단에서 출발해 옥순봉 절벽까지 약 700m 물길을 누빈다. 카야킹은 쉽다. 노 젓는 방법과 안전 사항만 익히면 누구나 도전해볼 수 있다. 패들 길이가 2m에 달해도, 무게가 1㎏ 안팎이라 초등학생도 제어가 어렵지 않다. 안전장비는 구명조끼가 전부다. 그러나 가이드가 모터보트를 타고 동행하는 터라 안심하고 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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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처럼 생긴 바위가 보이죠. 그 일대가 옥순봉입니다.”

함께 카야킹에 나선 박재철(60) 수산 영농조합 대표가 목소리를 높였다. 깊은 물길을 지나는 유람선과 달리 카약은 옥순봉 밑에까지 갈 수 있었다. 옥순봉의 우람한 절벽이 손에 닿을 듯이 가까워졌다. 외국인 체험객도 보였다. 태국에서 온 눈(44)·노이(33)가 연신 엄지를 세웠다. 시속 8㎞로 달릴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지만, 누구도 욕심내지 않았다. 빨리 달릴 이유는 없었다. 옥순봉에 닿아 노를 멈췄다. 느릿느릿. 봄의 시간도 정지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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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이 휘도는 청풍호 한복판에 비봉산(531m)이 섬처럼 우뚝 솟아 있다. 날개를 편 봉황의 자태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비봉산은 2016년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막혔다. 케이블카 공사 때문이다. 그 공사가 마침내 끝났다. 청풍면 물태리와 비봉산 정상을 오가는 ‘청풍호반 케이블카’가 3월 29일 개통했다. 청풍호반 케이블카 건설에는 모두 410억원이 투입됐다. 편도 2.3㎞ 길이로 사천바다케이블카(2.43㎞)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길다. 정상까지 8분이 걸린다.


비봉산은 험하다. 경사가 가파르기도 하고, 바람도 거세다. 예부터 전망 좋은 산으로 알려졌으나, 정상 전망을 누린 사람이 많지 않았던 이유다. 2012년 모노레일이 생겼고, 올해 케이블카가 들어섰다. 정상까지 이어진 산길은 케이블카 개통 이후에도 열리지 않았다.


이제 비봉산은 전국에서 가장 쉬운 산이 됐다. 대개의 산악 케이블카는 정상부 탐방로를 피해 설치한다. 그러나 청풍호반 케이블카는 정상에 있던 활공장 자리를 활용해 곧장 정상에 닿는다. 슬리퍼를 끌고도 정상을 밟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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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놓인 전망 타워의 이름이 ‘비봉산역’이다. 이름만 정거장이 아니다. 모노레일로 올랐다가, 케이블카로 환승해 내려올 수도 있다. 비봉산 남서쪽 비탈에 놓인 모노레일은 산길을 약 20분간 치고 오른다. 몹시 느리고 수시로 덜컹거린다. 최고 경사가 50도에 달해 케이블카보다 되레 더 아찔한 순간도 있다.

케이블카에서는 내려다보는 전망이 시원하다. “바다를 지나는 해상케이블카는 계절감을 느끼기 어렵지만, 청풍호반 케이블카는 산악을 오르는 덕에 계절감도 뚜렷하다”고 청풍호반 케이블카 김성원 과장이 자랑했다. 봄에는 신록, 가을에는 단풍을 지나며 청풍호를 내려다볼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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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산 정상으로 가는 길. 걸음마를 막 뗀 아이, 지팡이를 쥔 어르신과 함께 케이블카를 탔다. 창밖으로 악어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양의 일명 ‘악어섬’이 보였다. 전망대 끄트머리에 섰다. 서쪽 호반의 복잡한 굴곡은 가히 내륙의 다도해였다.

▶여행정보=제천도 꽃소식이 늦은 편이다. 제천 청풍호 벚꽃축제는 오14일 끝나지만, 20일께도 벚꽃을 감상할 수 있을 전망이다. 청풍호반 케이블카는 어른 기준 왕복 1만5000원을 받는다. 밑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크리스털 케이블카’는 어른 2만원이다. 모노레일은 왕복 8000원이다. 무료 셔틀버스가 케이블카 정류장과 모노레일 정류장을 오간다. 청풍호 카약 체험 어른 1만3000원, 어린이 1만원. 케이블카 티켓을 가져오면 카약 체험비를 20% 깎아준다.


제천=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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