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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시대도 새롭다 … 드라마로 뜬 격동의 대한제국

‘미스터 션샤인’ 이유 있는 흥행

중반 접어들며 시청률 상승곡선

사극 선호 4050 세대 끌어들여


김태리·김민정 동지적 설정 눈길

양반·상민 신분사회 붕괴도 다뤄

액션과 유머의 적절한 배합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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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작가의 24부작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연출 이응복)이 중반을 넘어서며 시청률 상승세에 탄력이 붙었다. 지난 19일 14회 방송은 시청률 15.6%(닐슨코리아 조사, 전국 유료 가구 기준)로 자체 최고 기록을 세웠다. 직전의 13.3%에서 2%포인트 이상 뛰어 오른 것으로, 첫방송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이는 초반의 논란과 다소 느렸던 전개를 넘어선 결과란 점에서도 주목된다. 극 중 로맨스 관계인 주연배우 김태리·이병헌의 스무 살 나이 차는 방송 전부터 도마에 올랐고, 방송 초에는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단 비판이 일었다. 이 때문에 극 중 유연석이 이끄는 일본인 무인 집단의 이름은 실존했던 우익 단체 ‘흑룡회’에서 가상 단체 ‘무신회’로 바뀌었다.


게다가 대한제국 시기가 주된 배경인 이 드라마는 주연급 인물만도 5명. 양반집 ‘애기씨’ 고애신(김태리 분), 노비 출신으로 미국 군인이 되어 돌아온 유진 초이(이병헌 분), 일본인 무인 집단을 이끄는 구동매(유연석 분), 고애신의 정혼자 김희성(변요한 분), 호텔 글로리 사장 쿠도 히나(김민정 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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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간단치 않은 이력과 서로의 관계, 또 친일파 이완익(김의성 분)의 노골적인 음모나 고종황제(이승준 분)의 은밀한 움직임 등까지 찬찬히 펼치는 동안 시청률 상승은 더뎠다. 반면 최근 방송은 인물 구도와 그동안의 감정선을 바탕으로 굵직한 사건이 더해져 전개에 가속이 붙었다. 고종황제의 밀서와 선교사의 죽음에 여러 인물이 고루 연루되고, 연인 고애신과 유진 초이는 이제 서로 총을 겨눠야 하는 상황이다.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역사적 상황과 얽히고 설키는 시대극이란 점은 이 드라마의 특징이다. 2030 젊은층보다는 주로 4050 중장년층에서, 또 김은숙 작가의 로맨스물에 익숙한 여성만 아니라 남성 시청자 사이에서도 이 드라마가 주목을 받는 이유로 꼽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KBS 대하사극에서 보듯, 전통적으로 시대극이나 사극에 남성들이 관심있는 게 사실”이라며 “멜로 구도와 함께 남성·여성 시청층을 동시에 이끌어내고 있다”고 평했다. 19일 방송의 성별·연령별 시청률을 살펴보면 여성 40대(19.2%)에 이어 남성 40대(13.6%)가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여성 50대(12.5%)-여성 30대(11.1%)-남성 50대(10.8%) 순이다. 반면 20대 시청률은 여성(5.1%)과 남성(3.5%) 모두 이를 크게 밑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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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한 유머와 함께 액션 장면이 잦은 드라마, 특히 여성의 액션이란 점도 남녀 모두에게 호감을 사는 요소로 보인다. 드라마 초반부터 총을 들고 활약한 고애신에 이어 최근에는 쿠도 히나 역시 칼을 휘두르고 나왔다. 특히 적극적이고도 기품있는 고애신 캐릭터, 이를 맞춤하게 소화한 김태리의 연기는 큰 이견없이 칭찬을 받는다. 시대가 달라지며 로맨스도 달라졌다. 고애신과 유진 초이는 서로를 ‘귀하’라고 부르며 ‘했소’체로 소통한다. 이런 진중한 분위기는 젊은 층보다는 중년 이상에게 호소력을 발휘한다는 평가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에 더해 “기존 연애물에 여성의 적인 여성, 악마화된 여성이 나오는 것과 달리 고애신과 연적처럼 보였던 쿠도 히나가 동지적 관계로, 자매애로 그려진다”며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창조해내려는 노력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물론 남성 주인공 세 사람 모두 고애신에게 연심을 품는 등 기존 로맨스물의 관습을 온전히 탈피한 것은 아니다. 이 교수는 “기존의 캐릭터나 서사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으면서 전복적인 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대중성을 얻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극이나 시대극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개화기에 도전한 점은 여러모로 호평을 받고 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평민인 포수(최무성 분)가 양반 고애신의 스승이 되어 총포술을 가르치는 장면, (천민 노비의 자식인) 유진 초이가 직접 고종을 알현하는 장면” 등을 예로 들며 “신분의 격동기라는 점을 여러 가지로 활용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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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의 화려한 볼거리는 좋은 의미에서 ‘영화 같다’는 평을 받기도 하는데 강 교수는 “영화와 정말 달라서 성공한 경우”라고 했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갈등을 다뤄야 하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라서 말장난이나 밀고 당기는 감정의 시소, 매회 가벼운 감정과 무거운 감정을 같이 가져가는 게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개화기라는 배경은 국내 시장만으로 회수가 쉽지 않은 430억원의 큰 제작비를 들인 드라마란 점과도 맞물린다. 정덕현 평론가는 “개화기만큼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들어온 시기도 드물다”며 “한국 드라마가 글로벌 콘텐트를 지향한다면 다양한 문화의 접목은 더욱 중요한 지점”이라고 짚었다.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에 판매돼 미국·일본·유럽·남미 등에도 공개되고 있다.


사극은 PPL이 안 된단 통념과 달리 신문물이 들어온 시기라는 점을 활용, 요즘 제과점이나 커피점 브랜드를 극 중에 녹여낸 것도 화제다. 가배(커피)를 즐기는 장면은 물론 일명 ‘불란서 제빵소’는 카스테라 등 개별 제품까지 구체적으로 대사에 언급된다. “풍속 위주로 역사를 경량화시킨다”(강유정 교수)는 비판도 나온다. 공희정 대중문화평론가는 “쉽게 말해 시대극 PPL의 신기원”이라며 “드라마 제작비가 한 단계 상승하는 것만 아니라 다양한 마케팅으로 사전에 이를 뒷받침한다는 점에서도 이 드라마는 주목할 사례”라고 했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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