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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머니’ 이하늬 “아직도 제가 엄친딸? 저 개뿔도 몰라요”

'외환은행 매각' 둘러싼 정지영 감독 신작서

유창한 영어 구사 수퍼 엘리트 변호사 변신

"역할이란 연기자에게 선물처럼 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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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친딸이요? 아직도 제게 그런 이미지가 남아 있나요?(웃음) 저 사실 아무것도 없어서 엄청 노력해야 해요. 이번엔 경제 용어도, 영어 대사도 원래 쓰던 단어들이 아니어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로 나오지만, 김나리가 그런 거지, 전 개뿔도 몰라요.(웃음)”


11월 13일 개봉하는 영화 ‘블랙머니’(감독 정지영)를 계기로 마련된 이하늬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무장해제’로 시작됐다. 서울대 국악과 재학 중 미스코리아 진(2006)에 외삼촌이 문희상 국회의장인, 내로라하는 집안 딸. 지난 31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 앉기 전까진 이 중저음의 여배우가 이렇게 ‘쿨’한지 몰랐다. 스스로를 “목소리 크고 덩치 크다”고 표현하며 웃을 땐 오래 알던 후배처럼 느껴졌다. 무얼 물어도 거리낌 없는 대답. 올 초 1600만 관객을 빨아들인 영화 ‘극한직업’과 드라마 ‘열혈사제’로 인한 자신감인 듯했다.


신작 ‘블랙머니’는 ‘하얀전쟁’ ‘부러진 화살’의 정지영(73) 감독이 '남영동 1985'(2012)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영화다. 현 시대를 “기득권자들의 금융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다”고 진단하는 정 감독이 외환위기 이후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극화했다. 이하늬는 거대 금융비리를 파헤치는 좌충우돌 열혈 평검사 양민혁(조진웅)과 대립과 협력 관계로 교차하는 국내 최대 로펌 소속 변호사 김나리를 맡았다. ‘극한직업’ 장 형사와 ‘열혈사제’ 박경선 검사로서 선보였던 코믹기를 쏙 뺀, 진지하고 냉철한 ‘수퍼 엘리트’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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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혁이 ‘저런 검사가 있다면’ 싶은 수퍼히어로 느낌이라면 김나리는 그와 완전 대비되는 이성적이고 심박수가 차분한 캐릭터죠. 이번엔 몸 쓰는 것 대신 그저 ‘존재함으로써 하는 연기’를 해보려 했어요. ‘극한직업’ ‘열혈사제’ 두 코미디물이 끝나자마자 공교롭게 완성도 있고 흥미로운 작품이 와서 행운이었죠.”


‘블랙머니’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정 감독과 같은 소속사 배우 조진웅에 대한 신뢰 때문. 특히 정 감독에 대해선 ‘부러진 화살’을 대표로 꼽으며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실화를 묵직한 에너지로 풀어가는 게 대단하다 싶었어요. 이번 시나리오도 받았을 때부터 완성도가 꽉 찬 느낌이었고, 허구 인물임에도 실화가 주는 무게감에 캐릭터의 폭이 굉장했고요.”



문희상 국회의장 조카로 유명한 '엄친딸'


영화 속 김나리는 전직 총리 이광주(이경영) 등 고위 관료와 친분이 두터운 학자 집안 딸로 나온다. 연예계 소문난 ‘엄친딸’ 이하늬와 겹치는 배경이다. 알려진 대로 아버지는 국가정보원 2차장을 지냈고 어머니 문재숙씨는 주요 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다(이화여대 교수 정년퇴임). 문희상 의장이 조카 이하늬를 예뻐해 공식석상에서 여러번 언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배경이 캐릭터 이해에 도움이 됐는지 묻자 “전혀 상관없다. 캐릭터 단서들은 시나리오에 명확히 있어서 거기에 집중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이어갔다.


“저도 영화 덕분에 알게 됐지만 론스타-외환은행 문제가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내년에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결과가 나오는데 이게 국가 패소율이 99%가 넘는데요. 그럼 한국이 5조원 정도를 물어줘야 되는데, 다 세금이잖아요.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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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끌고 가는 건 양진혁이지만 핵심 열쇠는 김나리 손에 쥐어진다. “전 법률 대리인이지 범죄 대리인이 아니다”면서 냉철한 이성을 발휘하던 김나리가 ‘문제적 선택’을 하게 되는 데 대해선 이렇게 설명했다.


“개인적이라기보다 대의명분에 더 큰 비중을 둔 게 아닐까요. 이를테면 ‘내가 구악을 깨끗이 청산하리라’ 같은? 그러나 그게 ‘신악’이 돼버릴지는 관점에 따라 다를 듯해요. 한국의 국익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김나리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영화관을 나서면서 고민거리가 됐으면 해요.”



1600만이 본 '극한직업' "기적같은 영화"


금융스릴러라는 다소 무거운 장르를 택할 수 있던 원동력엔 연초 ‘극한직업’의 대성공이 큰 힘을 미쳤다. “고마움 이상의, 기적에 가까운 영화”라며 “그렇게까지 잘 될 거라곤 아무도 예상 못했다”고 행복하게 돌아봤다.


“그때가 연기적인 부분에서 갈증 많고 배우로서 방황하고 있을 땐데, 만나고 보니 저 포함 다섯 명 모두가 절박한 타이밍인 거예요. 촬영하는 매일 밤 끝없는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꿈을 꿀 정도로, 여배우로서 모든 걸 다 잃고 조롱거리가 된다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는데…. 서로 잘 되라는 마음으로 밀어주고 도운 게 통했나 봐요.”


말보다 발이 먼저 나가는 장 형사 역할이 내심 불안했단 얘기다. 하지만 “남녀를 떠나서 잠복근무하는 다섯 형사 중 한명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싶어 추리닝 입고 헐렁하게 행동”한 이하늬의 선택은 1600만 관객의 호응을 불렀다. 이어진 ‘열혈사제’까지 좋은 반응을 얻으며 ‘걸크러쉬’ 배우로 떠올랐다. 덕분에 지난 7월 데뷔 이래 처음으로 팬미팅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이렇게나 사랑받고 있구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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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파트너’(2009)로 연기 데뷔한 지 만 10년. 영화는 ‘히트’(2011)로 입문해 ‘연가시’ ‘나는 왕이로소이다’(이상 2012) 등을 거쳐 ‘타짜 2-신의 손’(2014)에서 도박계의 팜므파탈 우 사장 역으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겟잇뷰티’(2015~2017) 등 방송 활동도 병행하면서 변신을 노리던 중 2017년 스스로 “작두 타듯이 연기한 때”가 왔다.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과 영화 ‘침묵’ ‘오 부라더’를 6개월새 같이 찍었다.


“미치지 않고선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촬영장 가는 곳마다 바꿔가며 세 캐릭터를 했죠. ‘번아웃’ 되다시피 밀어붙였는데, 희한한 게 시간이 많다고 에너지가 생기는 것도 아녜요. 특히 ‘침묵’의 경우엔 연기 전환점이 됐다고 할까, ‘이렇게까지 자유롭게 해도 되는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신명난 경험 속에 어떤 식으로든 내가 진화하고 있구나….”



글로벌 시장도 노크…"신명나게 진화 중"


'블랙머니' 극중 매끄러운 영어 구사에서 드러나듯 이하늬의 눈은 세계로 향하는 중이다. 지난해엔 미국 최대 에이전시인 윌리엄 모리스 엔데버(WME)와 매니지먼트사 아티스트 인터내셔널그룹(AIG)과 계약했다. 이에 따른 차기작은 김지운 감독이 프랑스에서 연출하는 드라마 ‘클라우스 47’. 프랑스 정계를 뒤흔든 대만 무기 로비스트 실화가 바탕이고 이하늬도 극 중 로비스트 역할이다. 제작 일정이 늦어지면서 생긴 오랜만의 휴식 기간 동안 전공을 살려 가야금 듀오 ‘야금야금’ 앨범을 낼 생각. 15만명이 구독하는 유튜브채널 ‘하늬모하늬’에도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다.


“플랫폼이 다각적으로 열리고 있으니까 글로벌하게 가능성을 열어놓는 거죠. 많이 바뀌긴 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여배우에겐 한숨이 나올 정도의 역할 뿐이었거든요. 후배들을 위해서도 앞서 노력할 생각이지만 조급하게는 생각 안해요. 역할이란 게 연기하고 있으면 선물처럼 온다는 걸 너무 잘 알거든요.”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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