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식감과 깊은 육향의 향연…궁극의 풍미 자랑
돼지고기 전문점 ‘혼고기’
제주도에서 공수한 신선한 흑돼지
부위별 세분화해 정성스럽게 구워
“최고의 식사” 유명 셰프들 엄지 척
‘혼고기’의 구교혁 대표가 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객은 직접 고기를 칼로 잘라보거나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다. 이처럼 독특한 혼고기 만의 프로그램은 돼지 고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각자만의 취향을 갖는데 도움을 준다. |
한 달 중 문을 여는 날은 단 10일, 좌석은 4개 뿐이다. 이미 3년 치 예약이 모두 끝난 돼지고기 전문점 ‘혼고기’ 얘기다. 미식가부터 전문가까지, 맛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은 공간, 가야만 하는 공간으로 불리는 이곳의 평균 식사 시간은 최소 5~6시간이다.
마치 오페라나 발레처럼 식사 중간 휴식 시간인 ‘인터미션’까지 갖는 혼고기의 장대한 시작은 제주도에서 직접 공수된 신선한 흑돼지가 손님들 눈앞에서 발골되는 것으로 출발한다. 뼈를 제거한 후에는 즉석에서 정형을 통해 각 부위가 정교하고 섬세하게 손질된다. 이렇게 약 20가지 정도로 세분된 고기는 근육의 형태와 지방의 구조까지 고려하며 정성스럽게 구워진다. 식사 내내 구교혁(30) 혼고기 대표는 직접 고기를 구우며 자신의 온몸을 이용해 돼지 부위별 특징을 소개하는 ‘명강의’를 펼친다. 덕분에 이곳을 찾는 이들은 돼지고기에 대한 탐구와 함께 자연스레 자신만의 취향을 찾게 된다.
혼고기는 지난 2021년 10월 문을 열었다. 구교혁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육가공 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가까이에서 늘 고기와 함께 했다. 24살에 정식으로 회사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다. 단순히 납품하는 것을 넘어 업장들과 소통하고 상호 작용하며 상생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생생한 배움을 얻은 그는 새로운 목표를 꿈꿨다. 정육인으로서의 경험을 업장과 공유하며 각 업장의 환경과 상황에 맞는 완벽한 고기를 납품하겠다는 것. 그렇게 구 대표는 독립하여 유통과 고기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자신만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지독할 정도로 디테일과 품질에 집착해온 덕분에, 솔밤, 온지음, 에빗, 주은 등 미쉐린 가이드에 오른 유명 레스토랑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의 수많은 업장에 고기를 납품하고 있다. 특히 각 업장의 음식 코스와 특징 등을 고려해 그에 맞는 부위와 조리법까지 추천하는 그의 내공은 이미 업계에 정평이 나 있다.
덕분에 혼고기는 시작부터 업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구교혁 대표는 그 관심을 충족시켰다.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힌 페루 센트럴(Central)의 셰프들은 혼고기에서의 시간을 ‘전 세계에서 먹어본 최고의 식사’였다며 자신들의 SNS에 혼고기를 극찬했다. 또한 미쉐린 가이드에 오른 뉴욕의 유명 바비큐 레스토랑 꽃(COTE)과 세계 6위에 오른 뉴욕 한식 파인다이닝 아토믹스(Atomix) 셰프들 역시 혼고기를 찾아 엄지를 치켜들었다.
단 한 입만으로 감동을 전해주는 마스터피스를 추구하는 혼고기의 안심(위)과 목살(아래). |
비결은 구 대표 자신이다. 그는 품종이나 부위에 따라서 단백질, 지방, 수분의 밀도, 육즙의 성질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는 모든 한 점 한 점에 혼을 담아 구워낸다. 특히 손님에게 선보이는 부위가 달라질 때마다, 손을 닦고 잘게 손질해 놓은 해당 부위를 만지는 독특한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부위마다 풍미와 육즙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부위를 잡기 전 손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전 부위의 흔적을 지우는 과정이다. 구 대표는 “고기를 굽다 보면 매우 많은 기름과 육즙이 손에 함께 묻는데, 다른 부위를 맛보는 데 영향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방식을 도입했다. 마스터피스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웃어 보였다.
또한 지방은 익히고 육즙은 살려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그는 열이 투과하는 정도와 방법까지 고려해 고기를 구워낸다. 때로는 힘을 빼고 깨질 듯이 고기를 다루지만, 터프하고 재빠르게 구워낼 때도 있다. 아랫등심의 경우 섬유질 특유의 씹는 식감을 살리고, 동맥이 지나가는 토시살은 피의 향이 지나치지 않도록 굽는다. 수분이 잘 빠지는 안심을 조리할 때는 수분을 보존하고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금을 섞은 육즙을 부어 삼투압 현상을 활용하기도 한다.
고기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자르기 직전까지 고기를 만지고 레스팅의 정도를 느끼며 상황에 맞게 판단해 고기를 완벽하게 굽는 그의 실력은 경이로울 정도다. 특히 레어, 미디움레어, 미디움, 미디움웰던, 웰던까지 미세하게 다른 다섯 가지 굽기를 한 점 안에 모두 담아낸 오겹살은 구 대표의 집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기름은 온전히 모두 구워내고 껍데기는 완전히 시어링이 되지 않도록 조절하며 지방은 최대한 파괴했다는 오겹살은 한 점 자체로 놀라운 감동을 선사한다.
세계 유명 셰프들이 극찬한 안심 역시 일품이다. 먹는 순간 부드러운 식감과 더불어 씹는 순간 풍부한 수분과 터져 나오는 깊이 있는 육향의 향연은 지금까지 맛보았던 돼지고기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새로운 경험을 안긴다.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올라가는 녹후추는 그 어떤 레스토랑에서 선보이는 음식보다도 풍부한 맛과 완벽한 밸런스로 원물이 가진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외에도 미묘하게 다른 식감과 육향을 느낄 수 있도록 다섯 가지로 세분화 된 목살이나, 살코기와 지방, 껍데기까지 고기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의 장점을 명확하게 살려낸 첫 줄 삼겹 아랫살 등 역시 돼지고기가 지닌 궁극의 풍미를 자랑한다.
제주도 흑돼지에 이어, 한국 고유의 ‘재래돼지’를 활용한 코스를 선보인 그는 요즘 재래돼지와 듀록을 교배해 만든 새 품종을 테이스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높은 가격대와 희소성으로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재래돼지를 한층 더 접근성 좋도록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요리를 넘어 재료에 대한 연구까지, 대체 불가능한 공간을 만들고 있는 구 대표에게 혼고기의 다음 목표를 물었다.
“맛을 보는 순간 감탄사가 딱 나오면서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맛있는 고기들이 있어요. 이런 맛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어떤 고기를 어떻게 구워야 맛있는지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먹을 수 있을 테고 자연스레 식문화 또한 한층 다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성현 푸드 칼럼니스트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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