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가만 300억, 210년 만에 중국 찾아간 추사
베이징 중국미술관 추사전 개막
글씨·그림 등 117점 중국 첫 공개
추사는 19세기 최고의 한류 스타
현대 추상미술의 조형미 보는 듯
연초 서울 치바이스전 답방 형식
“외교는 막혀도 문화는 흘러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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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전시장 입구에 큼지막하게 걸린 추사의 걸작 ‘계산무진’(谿山無盡)이 관객을 맞이한다. 글자 넉 자를 옆으로, 그리고 위아래로 배치했다. 마치 깊고 험한 계곡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파격적 구성이다. 역대 한국의 서예가 중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추사의 진면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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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글로벌 작가=전시의 제목은 ‘추사 김정희와 청조(淸朝) 문인의 대화’다. 실제로 예술은 사람, 지역, 국가의 악수라는 점에서 추사만큼 맞춤한 작가도 드물다. 추사를 넘을 만한 19세기 동아시아 글로벌 작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추사 평전을 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도 개막 현장을 찾았다. 그는 “전시 규모·수준에서 지금까지 국내에서도 없던 귀한 자리”라며 “19세기 동아시아 지평에서 추사의 위상을 새롭게 살펴보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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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는 특히 당대 중국의 최고 서예가인 옹방강(翁方綱·1733~1818), 빼어난 경학자인 완원(阮元·1764~1849) 등과 필담을 나누며 세상과 예술을 보는 눈을 넓혀갔다. 성리학이란 좁은 틀에 갇힌 당시 조선의 많은 사대부와 달리 금석학·고증학·서양과학 등 당대의 뜨끈뜨끈한 조류를 흡수했다. 조선에 돌아간 후에도 청나라 학자들과 글씨와 경전, 그림을 부단히 주고 받으며 그만의 고유한 예술과 학문을 정립했다. 당시 두 나라 학문 교류를 천착한 일본학자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1879~1948)가 “청조학(淸朝學) 연구의 1인자는 추사 김정희”라고 단언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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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추사의 총체적 이해를 시도한다.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가 “모든 분야에서 A플러스 받을 분”으로 부를 만큼 시서화(詩書畵)·문사철(文史哲)·유불선(儒佛仙) 모두에 통했던 추사의 발전 과정을 꼼꼼하게 돌아본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천시추사박물관·제주추사관 등 주요 기관은 물론 개인 소장가 등 총 30여 곳에서 출품한 명품 87건 117점이 중국에 처음 소개됐다. 전시 보험가만 300억원에 이를 만큼 하나하나 명작들이다. 현판·대련(對聯)·서첩(書帖)·병품 등 작품 종류도 다양하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이동국 수석 큐레이터는 “걸작 중의 걸작 ‘세한도(歲寒圖)’는 나오지 않았지만 추사의 스승 옹방강이 제자에게 보낸 길이 3m의 편지, 불교의 깨달음을 옮긴 추사의 선시(禪詩) 문집은 국내에서도 공개된 적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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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는 역시 추사였다. 주변의 미심쩍은 시선에 대해 “괴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 없다”고 응수했다. 기존의 각종 서법을 모두 익힌 후에나 가능한 자신감이다. 예술의 경계대상 1호인 매너리즘을 넘어서려는 몸부림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한국서예의 거목 권창륜은 “추사는 뛰어난 시인과 같다. 자신만의 언어와 비유를 구사하면서도 당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성취를 이뤘다”며 “중국 서단 측에서 한국 관련 자료가 부족하다는 불평을 자주 해왔는데 이번 전시는 그런 갈증을 씻어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국 큐레이터는 “기존의 조형미를 끝없이 파괴해온 추사의 작업은 20세기 서구 추상미술과도 연결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공간을 기획한 설치미술가 최정화도 “추사는 한국의 많은 현대 작가들에 영감을 준 스승이다. 그의 건축학적 공간감은 21세기 디지털 예술과도 통한다”고 평했다.
이번 전시는 연초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치바이스와의 대화전’에 대한 답방 형식이다. 지난번 서울 전시에는 20세기 중국의 피카소로 꼽히는 치바이스(齊白石· 1860~1957) 등 중국 근·현대 거장들의 명작 117점이 한국 나들이를 했다. 우웨이산 중국미술관장은 “문화는 물처럼 흘러야 한다. 한국과 예술 협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도 “19세기 세계인이었던 추사가 21세기 동아시아 평화를 생각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번 추사전은 8월 23일까지 계속된다. 올 연말께 서울에서도 같은 내용의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베이징=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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