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소녀상 철거” 그 뒤엔 일본의 스텔스 로비 있었다
산케이 “일본, 정의연 회계부정 활용”
일본, 독일 정부·지자체와 물밑 접촉
인권 아닌 한·일 충돌 문제로 설득
“정의연 사태, 역사 외교까지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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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수도 베를린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놓고 시 당국이 철거를 명령하면서 해외 소녀상 건립 문제가 다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은 2차대전의 전범국이었던 과거로 인해 여성 인권과 전쟁범죄 처벌 등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암묵적 인식이 국제사회에 깔려 있었던 만큼 이번 소녀상 철거 요구엔 일본의 필사적인 외교가 먹혔다는 관측이다. 베를린의 미테구청은 지난 7일 소녀상 설치를 주도했던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에 “14일까지 자진 철거하지 않을 경우 강제 집행을 하고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철거 요구 공문을 보낸 상태다. 이 소녀상은 지난달 25일 베를린 미테구의 비르켄 거리와 브레머 거리가 교차하는 지점에 세워져 지난달 28일 제막식이 열렸다. 독일에서 소녀상이 공공장소에 처음으로 세워진 사례였다.
해외에서의 소녀상 설치는 일본 강점기 종군위안부들의 피해를 알리면서 여성을 향한 전쟁범죄를 막자는 취지로 미국의 LA 인근 글렌데일, 버지니아주 애넌데일 등에 잇따라 설치됐다. 하지만 2018년 12월 28일 필리핀 라구나주 산페드로시에 설치했던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 이틀 만인 그달 30일 철거된 데 이어 이번엔 베를린 시 당국이 철거를 요구하면서 소녀상 설치가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필리핀 산페드로시의 경우 주필리핀 일본대사관이 “매우 유감으로 일본 정부의 입장과도 배치된다”고 외교적 압력을 가하자 시 당국이 철거 결정을 내렸다. 미국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에 자리 잡은 소녀상은 일본의 압박으로 공공장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한인 건물주가 제공한 부지에 설치됐다.
이번에도 베를린 소녀상을 놓고 일본 정부는 전방위 외교로 나섰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이 이달 1일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소녀상 철거를 요청했고, 이어 주독 일본대사관도 베를린 당국에 철거 요청을 전달했다. 일본 정부는 소녀상 문제를 위안부 피해자라는 인권 문제가 아닌 한·일 간 외교적 충돌로 바꾸려 시도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은 베를린 시 당국 등을 향해 물밑 외교전을 벌이면서 소녀상의 제작비 등을 지원해 온 정의기억연대의 회계부정 의혹에 대해서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케이신문은 “불투명한 회계 처리 의혹이 부상해 국내외에서 엄격한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회계부정 사건을 “적의 실책”으로 표현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정의연의 회계부정 사태가 한·일 역사 외교까지 영향을 미치며 역공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강제징용 문제에 더해 소녀상 건립·철거 문제까지 전선을 확대할 필요가 있는지 한국뿐 아니라 일본 정부도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도쿄=윤설영 특파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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