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2, 내 경험 녹아있다" 영화 자막엔 없는 이 남자 사연
천현길 중랑경찰서 형사2과장은 "최일선 현장에서 현장 실무에 강한 현장 경찰로 기억되고 싶은 게 바람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서민의 삶 속에서 경찰의 본분을 다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
영화 '범죄도시2'의 자문역을 한 중랑경찰서 천현길 형사2과장을 인생 사진의 주인공으로 추천합니다.
그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 경찰 영사의 역할을 비롯해 각종 보고서 서식과 현지 공안의 복장 등에 이르기까지 디테일한 조언을 제작진에 아끼지 않았습니다. 영화 '범죄도시2'는 코로나 시대임에도 관객 수 1,269만명이라는 신기원을 기록했으니 천 과장도 뿌듯할 터입니다.
천 과장의 최근 인터뷰를 살펴봤더니 "경찰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열정이 식어들 수도 있는데, 법을 조금 어기면서라도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마석도의 정의감은 배울 만할 것 같다”며 “앞으로 전문성을 갖고 열정을 다해 현장실무에 능통한 형사통으로 남고 싶다"고 심정을 밝혔더라고요.
사실 천 과장의 일화는 무수히 많습니다.
우선 다들 아시는 2006년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을 해결하여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의 나라에 우리나라 과학 수사의 우월성을 널리 알렸죠.
더욱이 베트남 경찰 영사로 4년간 근무할 당시 '파타야 살인 사건' 주범을 베트남 공안과 공조 수사로 검거한 일화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렇듯 베트남에서 그의 경험이 영화 '범죄도시2'에 녹아들어 있는 겁니다.
그는 현재 대민 치안의 최전선에서 범죄와의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형사과장입니다. 어찌 보면 범죄에 노출된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요, 진정한 친구이며 동반자가 아닐까 합니다.
저 또한 천 과장으로부터 대변자, 혹은 친구이며 동반자임을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열정을 다해 현장실무에 능통한 형사통으로 남고 싶다”는 천현길 과장을 ‘인생 사진’의 주인공으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중앙일보 애독자 올림
천 과장의 사무실 벽엔 대형 관내 지도가 걸려있습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으며 골목길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두 꿰고 있어야 하기에 벽에 걸어두고 오가며 숙지한다고 합니다. |
“낭패네요. 천 과장이 한사코 거절하네요. 어떻게 하면 좋죠?”
사연 선정 소식을 전한 후, 천 과장을 추천한 독자로부터 전해져 온 소식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낭패였습니다. 이미 사연 선정을 했는데 거절이라니 난감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정해달라고 사정하는 사람보다 거절하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갑니다.
그래서 다시 독자에게 청을 넣었습니다.
“21일이 ‘경찰의 날’이더군요. 어떻게 보면 천 과장의 이야기가 현장에서 고생하는 동료들에게 힘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다시 한번 부탁드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간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를 진행해오면서 사진 찍어드리겠노라 다시 부탁한 게 처음입니다. 그만큼 그의 입으로 ‘범죄도시2’의 자문 뒷얘기와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의 내막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천 과장이 고민 끝에 ‘인생 사진’에 등장하기로 결정을 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중랑경찰서로 가서 그를 만났습니다. 근자에 화제가 되었으니 영화에 관한 이야기부터 물었습니다.
Q : “왜 영화사에서 천 과장에게 조언을 요청한 겁니까?”
A : “영화 관계자가 2019년 12월에 베트남에 가서 영화 자문을 할 사람을 수소문했나 봅니다. 저는 8월에 이미 귀국해서 복귀한 상태였어요. 그때 베트남에서 저를 딱 그 역할이라고 추천했나 봅니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저를 찾아왔더라고요.”
Q : “구체적으로 어떤 조언을 해줬습니까?”
A : “얘기하다 보니 영화와 현실이 안 맞는 거예요. 거기 있는 경찰 영사가 사실 경찰은 아니거든요. 영사는 한마디로 재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역할을 하는 사람인데 영화에선 경찰처럼 수갑 채우고 이런 게 있더라고요. 수갑 채우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죠. 그리고 일반 공안과 우리 출입국 공안의 복장 색깔 차이, 우리 공항 입국 시 패스 등 디테일한 부분은 제가 다 조언을 해준 거죠. 이를테면 이런 부분은 좀 미흡하다, 이런 부분은 없애라 등등 한 거죠.”
천 과장은 베트남에서 경찰 영사로 재직할 당시 교민들과 단체 카톡을 하며 소통을 했습니다. 여기서 실제로 어려운 일을 겪는 이들을 찾아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베트남 사람의 유학 비자를 돕는 일에도 마다치 않았습니다. 이 당시 도움을 받았던 이들이 보낸 문자 메시지와 메일을 확인해보니 수두룩했습니다. |
Q : “아! 그랬군요. 그렇다면 형사인데 어떻게 경찰 영사로 베트남에 간 겁니까?”
A : “원래 경찰 영사 파견은 대부분 정보나 외사 파트 사람들이 많이 나갑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쭉 형사 파트 일을 했었는데 외국에서도 우리나라 사람을 돕는 일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원했고 네 번의 인터뷰를 겪은 후에야 통과해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어렵게 나간 겁니다. 하하.”
Q : “베트남에서 수사할 수는 있나요? '파타야 살인 사건' 주범을 베트남 공안과 공조 수사로 검거한 일화도 있던데요.”
A : “사실 베트남에선 우리나라 수사권이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평상시 그쪽 공안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일이 터지면 그쪽 수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거든요. 또 알아야 공안들과 협의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파타야 살인 사건은 저희가 먼저 은신처를 입수해서 공안들에 알려주고, 속히 공안이 체포하게 한 후 저희가 인계받아 한국으로 데리고 와서 해결한 경우입니다.”
천 과장의 손목에 있는 시계엔 특이하게도 베트남 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사연인즉슨 천 과장이 베트남 경찰 영사를 마치고 귀국할 때, 형제처럼 지내던 베트남 공안이 선물로 준 시계였습니다 |
Q : “그나저나 천만을 넘긴 영화에 자문역을 했으니 영화 제작진 소개 자막에 ‘천현길’이라는 이름이 나오겠네요.”
A : “하하. 그게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2019년에 만난 그 팀들은 이를테면 납품 회사 개념인가 보더라고요. 시나리오 파트랑 제작 파트가 서로 다른 데다가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인수·인계가 안 되었는지 빠졌더라고요.”
Q : “아! 서운하셨겠네요.”
A : “하하. 이렇게들 알고 찾아오시니 그걸로 다 보상받고도 남은 셈이죠.”
서운할 법한데도 그는 오히려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분명 영화와 현실의 괴리는 있지만, 그 영화를 통해 그 또한 대리만족을 얻었다며 넉넉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 당시 천 과장은 수사팀장이었습니다. 천 과장은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사건을 일단락 지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처음 '인생 사진' 선정 소식에 한사코 사진 촬영을 거절한 이유가 홀로 조명을 받는 일이 무엇보다 부담스러웠기에 그랬다고 했습니다. |
Q :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서래 마을 사건도 해결하셨다던데요.”
A : “저 혼자 한 게 아니고요. 당시 저는 팀장이었고요. 위에 과장도 있었고 팀원들도 있었죠. 다 함께 해결한 겁니다.”
Q : “당시 한국의 DNA 분석 능력을 제대로 몰라봤다며 프랑스 언론에서 한국 수사팀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보도도 있었잖습니까. 그때 어떻게 DNA 분석을 하게 된 겁니까?”
A : “처음에 그 집에 살던 남편이 신고한 겁니다. 집 냉동고에 영아 사체 두 구가 있다는 신고였습니다. 아들, 부인과 함께 프랑스로 여름 휴가를 갔다가 남자만 혼자 와서 발견한 거죠. 온갖 이야기가 다 있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결과일 것이다, 남편에게 원한을 가진 자의 소행일 것이다, 등등이요. 당시 부인의 아이가 절대 아니라고 주장하는 상태였습니다. 아내가 2년 전에 급성 패혈증이 와서 자궁 적출을 한 상태라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니 처음엔 용의 선상에서 배제되었죠. 당시 제 아내가 간호장교 출신이었어요. 이 주장을 듣더니 “저 사람은 지금 앞뒤가 바뀐 얘기를 하고 있어요. 자궁에 문제가 생겨서 패혈증으로 가는 거지 패혈증이 생겨서 자궁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죠. 아마도 혼자 아이를 낳고 뒷 처리를 제대로 못 해 급성 패혈증이 생긴 걸 겁니다”라고 하더라고요. 듣고 보니 그랬습니다. 자궁 적출했기에 애를 못 낳는다고 생각했는데 바꿔서 말하면 3년 전에 애를 낳고 난 후 자궁을 적출한 것이었습니다. 남편 입안 상피 세포와 머리카락으로 DNA 분석을 했는데 영아와 일치했습니다. 남편의 아이였던 거죠. 아빠는 확인했는데 엄마가 확인이 안 되잖아요. 아내는 프랑스에서 안 들어오면서 계속 언론 플레이하면서 애를 안 낳았으며 우리 애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상태였어요. 프랑스 언론은 아내의 주장만 계속 보도하는 상황이었고요. 그래서 집에서 아내가 사용하던 칫솔과 귀이개, 빗의 머리카락 등으로 DNA 분석을 했는데 일치했습니다. 그렇게까지 맞췄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기 것 아니라는 거예요. 프랑스에 아내의 조직을 요청해도 안 줄 게 뻔한 상황이었고요. 이때 제 아내가 또 조언했습니다. 적출 수술을 하면 그 조직을 떼서 파라핀 블록에 싸서 병원에 보관해 놓는다는 거예요. 옳다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압수 수색해서 조직과 칫솔, 귀이개, 머리카락 등의 DNA를 맞춰봤죠. 그 결과 딱 맞았습니다. 완전히 과학 수사의 진수를 보여준 결과였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니 프랑스에서도 아이의 조직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더라고요. 우리를 좀 우습게 봤다가 조직이 다 일치하니까 여자를 긴급체포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되었죠.”
대략 아는 얘기였지만 직접 상세하게 들으니 솔깃했습니다.
흥미진진하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형사는 형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사코 만나기를 거절했던 사람이 수사와 범인 체포 이야기가 나오니 이야기에 쉼이 없었습니다.
천 과장의 어릴 적 꿈은 형사가 아니었습니다. 꿈은 의사였습니다.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경찰대학을 그만둘 결심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법의학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법의학을 바탕으로 한 형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
그래서 어릴 적부터 형사가 꿈이었는지 물었습니다.
A : “원래 어릴 때 꿈은 의사였는데 경찰대학을 갔어요. 그런데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그만둘 결심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의학을 알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법의학을 적용할 수 있는 형사를 하면 되겠다고 하고 생각을 고쳐먹게 된 거죠. 그래서 형사의 꿈을 새로 키웠죠. 그게 서래마을 사건을 수사하면서 딱 발현이 된 겁니다. 더구나 제가 제2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했거든요. 좀 외람된 얘기지만 이건 저를 위한 사건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사연을 보낸 독자는 천 과장을 두고 누군가의 '대변자, 혹은 친구이며 동반자'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는 ″영원한 현장 경찰로 기억되고 싶다″는 천 과장의 바람과 같은 의미일 겁니다. 천 과장은 자신의 현장 경험을 국민과 나누며 소통하기 위해 카카오 브런치에 '천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그는 원하는 길과 원치 않았던 길을 합하여 자신의 길로 만들어 온 영락없는 형사였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밝힌 앞으로의 희망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A : “최일선 현장에서 현장 경찰 실무에 강한 현장 경찰로 기억되고 싶은 게 바람이라면 바람입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