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현의 여기 어디?] "라면 먹고 갈래요?" 여기가 바로 라면 드립 성지
20년 전 한국영화 속 그곳, 지금도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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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현·전지현 주연의 ‘엽기적인 그녀’가 24일 20년 만에 재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20년 뒤 다시 걸린 ‘화양연화’는 누적 관람객 10만 명을 넘어섰다. 요즘 극장가는 재개봉이 열풍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신작이 현저히 줄면서 생긴 현상이지만, 추억의 되새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20년 전 한국영화 속 추억의 장소들은 안녕히 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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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의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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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쯤에서, 여행지가 더 궁금해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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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는 20년 전인 2001년 초가을 개봉했다. 기억하시는지.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는 영화 줄곧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러 다녔더랬다. 그 덕에 은은하고 청아한 소리와 풍광이 영화에 빼곡하다. 2001년 당시 몇몇 발 빠른 여행사가 관련 패키지 상품을 팔기도 했는데, 대략 이런 식의 여정이었다. 무박 2일로 늦은 저녁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강원도 삼척으로 떠나 이튿날 온종일 영화 속 해변~사찰~대숲을 둘러보고 돌아오기.
이 여행법은 지금도 제법 유용하다. 바닷소리를 녹음한 삼척 맹방해변, 겨울 밤 처마 끝 풍경(風磬) 소리를 담았던 신흥사 모두 옛 모습 그대로여서다. 두 주인공이 머문 고택은 신흥사 주지 스님의 거처인 ‘설선당’인데, 실제 300년 이상 된 절집이다. 요즘도 영화 속 연인처럼 설선당 마루에 걸터앉아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이 종종 있단다. 허진호 감독 역시 4년 전 이곳에 들어 ‘다시 오니 좋습니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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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에서 마흡천을 따라 1㎞쯤 내려오면 동막6리에 이른다. 상우와 은수가 바람 소리를 녹음했던 대숲, 머슴밥을 얻어먹었던 시골집도 변함없다. 달라진 게 있긴 하다. 영화에 출연해 구수한 사투리로 손님을 맞던 강화순 할머니는 지난여름 작고하고, 이제는 전하철(88) 할아버지 홀로 집과 대숲을 지킨다. 귀가 어두워 “뭐라고?”를 반복했던 할아버지로부터 “할머이가 여 바람 소리를 참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규모는 옹색하지만, ‘쏴아’ 하는 대숲 소리만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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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에서 북쪽으로 2시간쯤 차로 달리면 동해안 끄트머리 고성에 닿는다. 영화 ‘파이란’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영화는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끝까지 서로를 애타게 그렸던 두 주인공의 모습을 여기 고성 땅에서 담았다. 삼류 건달 강재(최민식)가 파이란(장백지)이 남긴 편지를 읽으며 목 놓아 울던 장소는 대진항 방파제다. 이곳에서 항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파이란이 강재를 그리며 찾았던 화진포 해변은 근래 서핑 포인트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강원도 양양을 점령한 서핑 문화가 국토 최북단 고성 해변까지 번진 것이다. ‘화진포 서프 스토리’ 송창훈 대표는 “인적 드문 장점이 크다”고 했다. 마침 초보 서퍼들이 바다를 독차지한 듯 유유히 파도를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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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달라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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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이 아예 없어지거나, 옛 분위기가 사라진 장소도 여럿이다. 20년 세월이 흘렀으니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봄날은 간다’ 하면 상우가 너른 들판 한복판에서 봄 바람 소리를 담던 마지막 장면을 잊기 힘들다. 명장면의 무대가 된 전남 강진 저두리의 청보리밭은 이제 거대한 양어장과 배 밭이 들어서 옛 모습을 영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2001년 개봉한 다른 영화도 사정이 비슷하다. 영화 ‘친구’의 네 친구가 거닐던 부산 영도다리는 2010년 완전 철거 뒤 2013년 6차선 다리로 부활했다. “니가 가라 하와이”라는 명대사 남긴 국제호텔도 사라졌다. 2018년 철거된 뒤 26층짜리 오피스텔 공사가 한창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속 삼류 밴드의 애환이 서린 충북 충주의 와이키키 관광호텔(수안보 온천)은 2002년 부도 이후 뒤 20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다.
반면 ‘엽기적인 그녀’에 등장한 일명 ‘엽기소나무’는 지자체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견우(차태현)와 그녀(전지현)가 타임캡슐을 묻었던 강원도 정선 새비재 언덕은 촬영 당시엔 허허벌판이었지만, 10년 뒤인 2011년 타임캡슐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엽기소나무길 518-23’ 찍고 가면 소나무 앞에 선다.
글‧사진=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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