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현문우답] 종교마다 악마가 있다
종교마다 악마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그 악마를 밖에서 찾기도 하고, 또 내 안에서 찾기도 한다. 보리수 아래서 수행하던 싯다르타에게도, 광야에서 금식하던 예수에게도 어김없이 악마가 나타났다. 실제 악마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으냐를 떠나서 악마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과연 각 종교의 경전마다 등장하는 악마는 본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Q : 종교마다 악마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악마가 정말 있는 건가요?
A : “종교에는 악마가 등장합니다. 가령 부처님이 숲 속에서 홀로 수행할 때 악마가 나타났었죠. 또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며 묵상할 때도 악마가 나타났어요.”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던 예수에게도 악마가 나타나 유혹을 했다. [중앙포토] |
Q : 그게 정말 뿔 달린 악마가 나타난 거예요? 그런 악마가 정말 있다면, 왜 우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을까요?
A : “어디 하나씩 따져 볼까요?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수행하실 때 아름다운 여인 셋이 나타났어요. 경전에는 그들의 정체가 마왕의 딸이라고 돼 있어요.”
Q : 마왕의 딸이면 일종의 마녀인 거네요. 악마라고 할 수도 있고.
A : “맞아요. 그런데 이 악녀들이 수행 중인 싯다르타에게 나타난 이유가 있어요. 그게 뭐겠어요?”
Q : 음, 알겠어요. 우선 붓다가 수행을 잘한다고 응원하러 오진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까 뒤집어 말하면 수행을 방해하러 왔겠죠.
A : “맞아요. 수행을 방해하러 왔습니다. 그것도 내 안의 욕망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보리수 아래서 수행하던 싯다르타에게도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한 악마가 나타났다. [중앙포토] |
Q : 잠깐, 여기서 질문 하나! 악녀가 왜 굳이 남의 수행을 방해해야 하나요? 부처님은 부처님의 일을 하고, 악녀는 악녀의 일을 하면 되지 않나요?
A : “이건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나는 내 일을 하고, 너는 네 일을 하고. 그럼 되는 거죠. 그런데 왜 악녀가 붓다의 수행을 방해해야 할까? 여기에 종교의 아주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혹시 영화 ‘매트릭스’ 봤어요?”
Q : 네에, 그럼요. 제 세대 영화는 아니지만 워낙 유명한 영화잖아요. 주인공 네오가 가상의 세계에서 요원들과 싸우잖아요.
A : “맞아요. 네오는 처음에 매트릭스가 진짜 세계라고 믿습니다. 그러다가 그게 가상의 세계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게 네오의 깨달음이에요. 그런데 거기서도 요원들이 네오를 끝없이 추격하잖아요. 네오를 끝없이 방해하잖아요. 왜 그럴까요?”
영화 '매트릭스'는 허구의 세계 매트릭스를 통해 실제와 가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중앙포토] |
Q : 그건 네오가 매트릭스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인물이라고 보기 때문이잖아요. 네오를 그냥 뒀다가는 우리가 망하겠구나.
A : “맞아요. 네오가 매트릭스가 가짜라는 걸 깨달으면 큰일 나는 거예요. 왜냐하면 가상의 세계니까, 자신들이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먼지가 되고, 물거품이 돼 버리는 거죠. 원래대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럼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던 요원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그들도 먼지가 돼버리는 거예요.”
Q : 아하, 그래서 요원들이 기를 쓰고 네오를 막았던 거군요. 자기들의 존재가 사라져버리니까. 가만…, 그럼 악녀도 마찬가지라는 건가요?
A : “맞아요.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악녀들이 물거품이 돼 버리는 거예요. 먼지가 돼 버리는 거죠. 자신들의 본래 정체로 돌아가는 겁니다.”
Q : 이건, 이해가 좀 안 가는데요. 아니, 싯다르타가 깨닫는다고 왜 악녀가 먼지가 되는 거죠? 싯다르타는 부처가 되고, 악녀는 그냥 악녀로 남는 거잖아요.
A : “악마의 정체가 뭐겠어요? 내 안의 욕망이에요. 그게 악마예요. 사람들은 악마가 바깥에 있다고 믿잖아요. 머리에 뿔이 달리고, 꼬리에 삼지창이 달린 악마가 따로 있다고 보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보리수 아래서 싯다르타가 싸웠던 악마는 그런 게 아니에요. 싯다르타 안에 내재해 있던 욕망이에요. 그게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뿐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매트릭스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뒤를 쫓던 요원들이 자신들의 실체인 전기신호로 바뀌었다.[중앙포토] |
Q : 아~하, 그래서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으로 악녀가 나타난 건가요?
A : “그렇습니다. 싯다르타는 그 욕망을 없애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없애고, 없애고, 또 없애도 안 없어지는 거예요. 자꾸 자신을 괴롭히는 겁니다. 그래서 ‘악마’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런데 싯다르타가 그 악마의 정체를 깨달아버린 겁니다.”
Q : 악마의 정체, 그게 뭔가요?
A : “지나간 내 삶을 돌아보세요. 거기에는 아픈 기억, 슬픈 감정, 고통스러웠던 대목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걸 손에 쥘 수 있어요? 두 손으로 잡을 수 있어요? 없죠. 왜 없을까요? 그게 비어있기 때문이에요. 굳이 표현하자면 물거품이라고 해도 되고, 물에 비친 그림자라고 해도 되고, 사라지는 먼지라고 해도 되는 거죠. 그 정체를 깨닫는 순간, 내 어깨를 짓누르던 희로애락의 돌덩이가 녹아버리는 겁니다.”
Q : 그래서 싯다르타가 깨달을 때, 악녀가 사라지고 마는 거군요. 이렇게 설명을 하니까 뭔가 희망이 생겨요. 아무리 큰 상처라도 녹아버릴 수 있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왠지 힘이 나요.
A : “그렇죠. 내 가슴에 박힌 돌덩어리, 혹은 바윗덩어리가 사실은 그림자일 뿐이구나. 물거품일 뿐이구나. 그걸 무거운 바위라고 생각하는 건 내 착각일 뿐이었구나. 부처님은 그걸 깨달았고, 또 우리에게 그걸 일러주는 거죠.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말입니다. 너를 짓누르는 상처의 돌덩어리가 사실은 매트릭스의 전기 신호일 뿐이야.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매트릭스에 비유하니까 이해가 쉬우네요. 결국 우리를 괴롭히는 악마의 정체를 이해하면 돌덩이 같은 응어리도 풀린다는 말이군요. 왠지 힘이 나는 걸요.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정희윤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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