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현문우답] 온라인법당 ‘미고사’ 세운 마가 스님 “우리 마음도 백신 필요”
백성호의 현문우답
“지금은 ‘코로나 블루’ 시대다. 바이러스에도 백신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마음에도 백신이 필요하다.”
종교계는 일종의 산업혁명기에 접어들었다. 불교ㆍ개신교ㆍ가톨릭 할 것 없이 하나같이 ‘위기의 종교’가 됐다. 갈수록 신자 수는 줄어들고, 그나마 있던 신자들은 빠른 속도로 고령화하고 있다. 성직자와 출가자의 숫자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더구나 젊은 세대는 종교에 별로 관심이 없다.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장소에 가야하는 일을 ‘속박’으로 여긴다. 코로나19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소위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종교계는 더 빠른 속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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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찻집에서 마가(60) 스님을 만났다. 그는 사면초가인 종교계에, 특히 불교계에 활로를 트고 있다.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 상에 법당을 세웠다. 일명 ‘스마트법당 미고사’다. 유투브에서 동명의 채널도 오픈했다. 마가 스님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Q : 온라인 법당의 이름이 왜 ‘미고사’인가.
A : “온라인 상에 가상의 섬을 만들었다. 섬의 이름은 ‘그래도’이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래도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할 때 뭔가 희망이 솟지 않나. 만약 ‘12척밖에 없어요’라고 하면 어떤가. 힘이 빠지고 희망이 사라진다. 그래서 이 섬의 이름은 ‘그래도’다. 삶을 대하는 우리의 기본 태도다. 이 섬에 두 개의 절을 만들었다.”
Q : 어떤 절인가.
A : “하나는 ‘맙소사’이고, 다른 하나는 ‘미고사’이다. ‘맙소사’는 절벽 위에 있는 절이다. ‘맙소사’에 다니는 신자들은 늘 손가락을 들고서 지적질을 한다.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 ‘미고사’에 다니는 신자들은 다르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세 가지 염불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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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법당 미고사’의 시작은 코로나 사태였다. 마가 스님은 “코로나 시국에 산문을 닫고서 가만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새 종교계가 코로나 감염과 확산의 주요 통로가 되고 있더라. 아이쿠 싶었다. 종교가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코로나 때문에 힘드니, 뭔가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걸 하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Q : 온라인 법당 미고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나.
A : “매주 수요일 저녁 8시에 ‘라이브 법회’를 연다. 불교 신자들만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유투브와 화상회의 시스템 줌을 통해서 일대일 면담도 하고, 마음백신 처방도 한다.”
Q : 온라인 법회는 어떤 장점이 있나.
A :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자기 편한 장소에서 법회에 참석할 수가 있다. 또 법문이 저장되기 때문에 다른 시간대에 볼 수가 있다. 다들 바쁘게 살지 않나. 코로나 시국에는 힘겹기까지 하다. 온라인 법당을 통해 사람들이 ‘멈춤’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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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어떤 ‘멈춤’인가.
A : “우리가 아무리 좋은 차를 타고 다녀도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으면 어찌 되겠나. 사고가 나고 만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브레이크가 필요하고, 그게 멈춤이다. 달릴 때는 모른다. 사람들은 멈추었을 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의 말, 나의 생각, 나의 행동을 보게 된다. 그때 비로소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던진 말 한 마디가 행복을 낳는 씨가 되는지, 아니면 행복을 파괴하는 씨가 되는지 보게 된다. 바쁘게만 살 때는 팥 심을 생각은 안 하고, 콩 심은 데 팥 나기만 바라고 산다.”
불교 사찰을 찾는 신자들의 연령대는 60대 여성이 가장 많다. 미고사를 찾는 이도 그럴 줄 알았다. 유투브 온라인법당 미고사의 기획을 맡고 있는 최진규(39)씨는 마가 스님의 재가 제자다. 기획에다 음악 작곡까지 하는 최씨는 “막상 온라인법당을 열었는데 깜짝 놀랐다. 우리는 당연히 60대 여성이 가장 많을 줄 알았다. 아니더라. 주된 방문객이 30ㆍ40대 여성이더라”고 말했다. 온라인 상에 종교의 새로운 수요와 영토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Q : 언택트 시대에 사찰의 보시금, 교회의 헌금이 줄어들까봐 걱정하는 종교인도 많다.
A : “꼭 그렇지도 않더라. 저는 오프라인상에 현성정사라는 절도 있다. 그런데 온라인법당을 운영해보니 보시금이 더 많이 들어왔다. 절에 오는 사람의 보시금은 대개 1만 원이다. 온라인법당에서는 10만 원씩 후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가 있었지만 온라인법당 때문에 오히려 수입이 더 많았다. 덕분에 유투브 촬영과 제작을 위한 장비까지 구입할 수 있었다. 오프라인 사찰 안에다 작지만 디지털 전용 스튜디오까지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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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온라인 법문 등 디지털 콘텐트는 나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나.
A : “마침 제 상좌(제자) 중에 적임자가 있었다. 출가 전에 벤처기업 게임 회사에서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했던 등명 스님이다.”
곁에 있던 등명(36) 스님은 출가 9년차다. 그는 “절에 오시는 신자들이 노령화하고 있다. 갈수록 숫자도 줄고 있다. 반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들을 위해 유투브나 스마트 미디어에 마음을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온라인법당에서 줌 프로그램으로 얼굴을 보면서 해보니까 친밀감과 따뜻함도 느껴지더라. 갈수록 비대면 법회가 중요해지겠구나 싶다”며 온라인 법회의 매력과 잠재적 성장성을 설명했다.
마가 스님은 2년 전에 고시촌인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살았다. “노량진 고시생들이 100대1의 경쟁률 때문에 힘겨워 하다가 자살하는 사례도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 길로 노량진으로 달려가 조그만 방을 하나 얻었다. 그리고 ‘마음충전소’를 열었다.” 당시 마가 스님은 노량진 고시생을 만나고, 상담하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마음충전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Q : 당시 가장 안타까운 건 무엇이었나.
A : “고시는 자신이 없는데 고향에는 못 내려가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부모님 기대 때문에 집에는 못 가고, 고시촌에서 고시 방랑자가 돼 살아가는 청춘들이었다. 그게 가장 안타까웠다. 그들이 마음충전소에 와서 마음의 힘을 얻고, 다른 직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뿌듯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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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노량진 청춘들을 상담했던 경험이 온라인법당에도 담기나.
A : “그때는 몰랐다. 돌아보니 당시에 했던 상담이나 마음 프로그램 등이 마음백신에 대한 일종의 임상 시험이었더라. 온갖 사례와 대상자 등 시행착오를 통해 검증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 백신은 임상이 필요하지만, 온라인법당 미고사의 마음백신은 더 이상 임상이 필요치 않다. 이미 현장에서 충분한 임상을 거쳤다.”
마가 스님은 불교방송에서 ‘그래도 괜찮아’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오프라인 사찰의 법회에는 고작해야 300명을 만날 수 있다. 라디오방송은 청취자 60만 명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유투브 온라인법당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게다가 마음의 힘을 얻는 프로그램은 글로벌 콘텐트다. 그래서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자막도 달아서 제작한다.”
Q : 코로나 자가격리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었다고 들었다.
A : “미국에서 오신 분이 있었다. 14일간 자가격리를 하고 저에게 왔다. ‘2주일 동안 답답해서 죽을 것 같더라’고 하더라. 아하, 자가격리를 할 때 몸의 먹거리는 주지만, 마음의 먹거리는 없구나 싶었다. 그래서 코로나 자가격리자를 위한 마음방역 2주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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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그걸 하면 무엇이 달라지나.
A : “바깥을 향해 원망하고 미워하고 탓만 하는 삶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삶으로 바뀌게 된다. 나도 지구 공동체의 일원이구나. 나부터 철저하게 자연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 공동체가 무너지겠구나. 그걸 알게 된다. 코로나는 우리 앞에 놓인 돌이다. 그게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원망만 하고 탓만 하면 걸림돌이 된다. 반면 ‘그래도 우리에게는 12척의 배가 있다’고 하면 디딤돌이 된다. 그 모든 걸 내 마음이 결정한다.”
글·사진=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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