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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밍했던 도다리 쑥국이 '인생 요리'로 바뀐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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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 되면 해 먹는 생선 음식이 있다. 도다리쑥국과 대구탕이다. 도다리쑥국은 봄이 되면 먹는 제철 음식이고 대구탕은 워낙 좋아하는 음식이라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한꺼번에 생선을 사다가 하루 이틀 간격으로 해 먹는다.


도다리쑥국은 희한하게도 봄철에 먹는 맛있는 별미음식이지만 2010년 가을에 처음 먹었을 때는 그냥 평범하면서도 밍밍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해 9월 전남 해남에 위치한 파인비치 CC에 사업상 방문했다가 꼭 먹어봐야 한다고 강추를 받아 시식해보았는데 맛이 별로였다. 도다리쑥국이 허명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하고 의아해했다.


그리고 8년이 흘러 아내에게 끼니를 해주는 밥돌이가 된 지난해 봄 우연히 도다리쑥국을 해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먹어보고 나서는 그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봄이 되면 꼭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맛을 봐야 한다 쪽으로 입장이 선회한 것이다.


아내가 해쑥을 조금 얻어오는 바람에 이를 이용해 무슨 음식을 만들까 머리를 굴리다가 갑자기 도다리쑥국이란 단어가 쑥 떠올랐다. 내친김에 레시피를 알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한 뒤 구리시에 있는 농수산물 시장에 들러 도다리를 샀다. 시장상인에 쑥국을 끓인다고 하니 모시조개를 넣으면 맛이 배가된다고 부추겼고 도다리와 모시조개를 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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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국을 끓여보니 만드는 방법도 너무 쉬웠고 맛도 최상이었다. 도다리쑥국은 구수한 된장 맛을 깔고 그 위에 쑥의 봄 내음을 살랑살랑 전해주었다. 생선 살은 고소하고 담백했다. 푹 우려낸 모시조개는 쑥국이 입안에서 감치고 휘돌도록 촉촉한 조연의 역할을 했다. 축구로 말하면 골은 아니지만 어시스트다.


그렇게 맛있는 도다리쑥국이 9년 전에는 그냥 음식에 불과했을까. 그때는 3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창업한 회사가 망해가고 있어 이를 반전시켜 보기 위해 죽기 살기로 혼신의 힘을 다하느라 입에 진미가 들어와도 껄끄러웠던 것 같다. 그때 창업한 일이 골프대회운영이나 프로골프선수 매니지먼트 등의 스포츠마케팅이었는데 동업자가 돈을 빼돌리는 바람에 사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가장 힘들던 시기였다.


그해 9월 내내 자다가 새벽이면 잠이 깨어 한강 고수부지를 1시간 이상 걸어야 다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러던 차에 파인비치 CC에서 열리는 남자프로골프대회 운영을 맡아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벌어 손해를 줄이려고 동분서주하다 보니 맛있던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사후지혜이지만 아등바등 살아도 먹는 것 하나만이라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은 봄이 되어 도다리쑥국을 맛보지 않으면 세월에 몸을 얹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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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탕과는 연이 깊은데 첫 서른의 사회생활이 연대기적으로 다 녹아 있다. 중앙일보 기자 시절 사옥 옆에 대구 매운탕 집이 있었는데 야근하기 전에 저녁으로 대구 매운탕을 시켜놓고 소주를 반주로 곁들였던 것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추억이다. 그러다가 삼각지에 있는 ‘원’ 대구탕이란 맛집의 대구탕이 정말로 몇 수위의 매운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도 종종 찾는 단골집이 되었다.


보광그룹을 다닐 때 골프장 사장이 하고 싶어 건국대의 잔디경영대학원에 다녔는데 학우들끼리 수학여행 차 일본에 갔다가 귀국하는 길에 부산 자갈치시장에 들려 점심으로 대구탕을 먹었는데 의의로 맛이 너무 훌륭했다. 맑은 지리였는데 맛의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시원하고 감치는 맛이 일품이어서 어떻게 끓이냐고 사장한테 물었더니 그가 아무것도 넣지 않고 생대구만으로 끓인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 뒤로는 부산 해운대 데이트 코스인 달맞이 길에 전국구 급의 대구탕 맛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끔 이곳을 찾아 대구지리를 즐기기도 한다.


이런저런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도다리쑥국과 대구탕을 하기 위해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찾아 재료를 준비했다. 생대구는 제법 커 4인분을 위해서는 1마리, 도다리는 손바닥보다 조금 커 2인분을 위해 2마리가 필요했다. 모시조개가 없어 대신 바지락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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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다리쑥국이든 대구탕이든 육수를 내는 게 중요하다. 무 1백g을 썰고 다시마를 넣어 30분 정도 끓인다. 물론 다시마는 육수를 한소끔 끓이고 나서 꺼낸다. 도다리쑥국은 준비한 육수에 도다리와 해쑥, 마늘 2T, 대파, 청주 1T, 된장 1T, 바지락 생물 등을 넣어 끓이면 된다.


생대구탕은 육수에 콩나물을 깔고 마늘 3~4T, 대파, 청주 2T를 넣고 소금 간을 한 뒤 끓기 시작하면 미나리를 넣으면 된다. 쑥, 콩나물, 미나리 등은 각자 취향에 따라 양을 조절하면 된다. 쑥국이나 생대구탕은 생각보다 조리법이 간단하고 쉬우며 그 맛을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하다. 수산물시장에서 직접 시장을 봐 신선한 해물로 탕을 끓이면 누구나 맛집보다 맛있는 음식을 가족에게 선사할 수 있고 이때만큼은 세프라는 자신감을 뿜뿜 발산할 수 있다.


지난주 나는 생대구를 사다가 반은 남겨놓고 나머지로 대구탕을 끓였는데 집에 놀러 온 손녀가 이를 너무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대구탕이 어린이들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하늘이 선물한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날 아내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바람에 나머지 반도 새로 탕으로 끓여 돌아가는 딸에게 싸주었다.





민국홍 KPGA 경기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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