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배곯는 청춘···영하4도 새벽, 무료급식소 100명 줄섰다
청년들의 밥
'요즘 시대'에도 굶고다니는 청년들
무료 아침식사에도 20대들 몰려
“청년 대상 조건부 복지 변화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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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은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 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편의점에서 쓸 수 있는 기프티콘을 휴대폰 요금으로 청구해서 일단 끼니를 때워요.” 대학생 A씨(23) “아침에만 제공되는 1000원 학식으로 배를 채우고 점심을 거르거나 간단하게 먹어요.” 대학생 박모(21)씨. “2900원하는 바나나 한 송이, 3900원짜리 방울토마토 한 통으로 일주일 버텼어요.” 대학생 형모(22)씨. 밀실팀이 청년들에게 ‘돈이 없을 때 끼니를 어떻게 해결하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입니다. 청년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털어놨는데요. 1960년대가 아닌 2019년 현재 이야기입니다.
어르신들이 보기에 요즘 청년들은 배고픔을 모르는 세대죠. 언론에 비친 밀레니얼 세대의 모습은 밝은 모습이 대부분이니까요. 지난 25일 탑골공원에서 만난 김성식(74)씨는 “우리 세대는 보릿고개를 지나면서 배를 안 곯아 본 사람이 없지만 요즘에 누가 밥을 못 먹고 다니냐”며 “요즘 애들은 씀씀이가 크니까 돈이 부족한 거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옆에 있던 90대 노인도 “풀로 죽 쒀 먹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 우리나라만큼 잘사는 나라도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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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김밥 존버”“유통기한 임박한 바나나로 버텨”
하지만 청년들이 느낀 현실은 달랐습니다. 끼니해결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는데요. 대학생 강수민(23)씨는 “돈이 없을 때는 ‘삼각김밥 존버(오래 버틴다는 뜻)’를 외치면서, 삼각김밥을 고를 때마저도 800원짜리랑 1200원짜리 중 고민 후 조금 더 싼 걸 택한다”며 “사정이 더 어려운 친구들은 ‘소액대출로 이번 달에도 20만원 당겼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고 했습니다. 또 강씨는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청년수당 줘봤자 치킨이나 먹지 않겠냐’고 말하는 걸 듣고 상처를 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외 익명을 요구한 청년들은 “달걀 두알로 하루를 버틴 적도 있다” “1000원으로 두끼를 해결해봤다”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바나나 다섯개를 1000원에 사서 버텼다” “도시락업체에서 파는 900원짜리 밥 한 공기로 해결했다”고도 이야기했습니다.
대학생 형모씨는 “돈을 아끼려고 끼니를 대충 해결하지만, 소득분위 1분위는 아니라 생활비장학금은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고요. 대학교 4학년인 박모씨는 “방세 내고 책을 사야 해서 돈을 아끼다 보니 돈을 절약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밥을 안 먹는 것이었다”며 “결국 ‘밥’은 20대들이 처한 복합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했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는 건 게으르거나 나태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는 이들도 있었는데요. 대학생 김모(21)씨는 “주7일 내내 아르바이트 2개를 하면서 월 50만~60만원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며 “패스트푸드점에서 제일 싼 아이스크림 하나로 끼니를 해결한 적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청년들의 주거·취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많이 논의되고 있지만 굶고 있는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나 전문적인 연구는 부족합니다. 지난 2017년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취업준비생 114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취준생 83.1%가 하루 한 끼 이상 굶는다고 답했는데요. 세끼를 모두 먹지 않는 이유로 '식비 부담이 크다'(42.3%)는 점을 꼽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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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식사 위해 아침부터 모인 청년들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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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청년을 위해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서울 노량진 강남교회와 안암동 성복중앙교회입니다. 최저기온이 영하 4도였던 지난 19일. 밀실팀은 새벽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두 교회를 직접 방문했는데요. 강남교회 지하 1층 식당입구에는 “이곳은 청년들을 위한 새벽밥입니다. 배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청년들은 검은 패딩으로 몸을 감싸고 한두명씩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봉사자들은 몇몇 청년들의 얼굴이 익숙한 듯 “오늘은 일찍 왔네”라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죠. 이날 강남교회에는 100명 이상, 성복중앙교회에는 80명 넘는 청년들이 왔습니다.
무료 식사를 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청년들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요. 특별한 사연이 있진 않았습니다. 겉모습도 평범했습니다. 강남교회에서 만난 박찬미(21)씨는 부산에서 올라와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요. 박씨는 “아침밥을 먹으려면 최소 3000원이 드는데 적은 금액 같아도 수험생 입장에선 부담이 된다”며 “무료 식사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성복중앙교회에 온 김동영(22)씨 역시 “평소 아침과 저녁만 먹는데도 한 달 식비가 20만~30만원 정도 든다”며 “돈을 아끼려고 밥 먹는 횟수를 줄였는데 이곳 덕분에 약 10만원은 절약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습니다. 돈을 조금이나마 덜 쓰고자 이곳을 찾은 겁니다.
교회에서 음식을 제공하는 건 전도목적이 아닙니다. 밥 먹기 전 기도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길성운 성복중앙교회 담임목사는 “부모의 마음으로 과일·야채 제공, 주 2회 고기반찬 제공, 전도하지 않기를 원칙으로 삼았다”며 “이곳에 오는 사람들 95%가 청년인데 지역교회로서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김상순(42) 강남교회 목사도 “권사님들이 새벽 4시에 일어나 매일 최소 200인분 식사를 준비한다”며 “도시락통을 가져와 밥을 싸가는 청년들이 있을 정도로 아직도 배고픈 이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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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회에서 제공하는 무료 식사만으로는 이들의 배고픔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겠죠. 이들에게 필요한 건 뭘까요. 청년들은 ‘1000원 학식’ ‘생활비 장학금’ 등을 꼽기도 했고요. 대학교 4학년 김모(24)씨는 “이상적인 말이겠지만, 마음 편히 밥 먹기 위해선 물가를 낮추고 월세를 낮추는 정책이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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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년들, 사지 멀쩡한데 지원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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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청년 지원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만 19~29세 청년들에겐 ‘사지가 멀쩡한데 일을 왜 안 하냐’며 직업훈련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지원을 하는 등 조건부적 복지가 이뤄져 왔다”고 꼬집었는데요.
백 교수는 “경기도 청년 기본소득 정책 시행 후 청년들이 국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정치에도 더 관심을 가지면서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정치인이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면서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해주는 걸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우리 사회를 다시 되돌아볼 때”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승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식사권 문제의 원인은 소득 부족뿐 아니라 불안정한 노동시장, 스펙 경쟁으로 인한 시간 부족 등이 얽혀있다”며 “빈부격차가 큰 만큼 청년 빈곤에 대해선 연대의식이 형성돼 있지 않은데, 식사권에 구멍이 뚫린 이들의 수면권 및 문화활동은 보장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 교수는 “사회복지 지출 중 청년에 대한 지출이 제일 낮지만 이들은 곧 우리사회의 중심이 될 계층”이라며 “인생에 한 번 쯤은 걱정 없이 다양한 활동을 보장하는 보편적 배당에 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한 학생은 인터뷰가 끝날 때쯤 이런 말올 남겼습니다. “밥 못 먹는 게 뭐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의식주 중 기본이잖아요. 기본적인 행복을 추구하기 어려워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김지아·편광현 기자·신윤아 인턴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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