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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중앙일보

[민경원의 심스틸러]말보다 발 먼저 나가는 현실 남매···'기생충' 이어 케미 터졌다

‘사랑의 불시착’서 또 만난 장혜진-박명훈

이번엔 백화점 사장, 인민군 원스타로 떵떵

말보다 발 먼저 나가는 현실남매 연기 화제

봉준호 캐스팅으로 재발견, 러브콜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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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배우가 여럿 등장한다. ‘봉테일’이라 불릴 만큼 치밀한 계산을 토대로 극을 쌓아 올리는 봉준호 감독의 연출도 대단하지만, 부잣집과 가난한 집 할 것 없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배우들이 마치 이 신만을 기다려온 것만큼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뽐낸다. 봉 감독의 페르소나라 불리는 송강호는 물론 부인 역을 맡은 장혜진은 물론 지하실에 살고 있던 박명훈과 이정은 부부의 존재가 드러날 때마다 관객들은 ‘대체 저런 배우를 어디서 찾았냐’며 혀를 내둘렀다. “한눈에 가족이란 게 납득될 만큼 닮아야 한다”는 감독의 지론에 따라 이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한솥밥을 먹어온 사람들처럼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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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아카데미 시상식에 등장한 ‘기생충’의 배우 군단을 보고 사람들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영화 속에서 본 가족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전혀 다른 모습을 한 배우들이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해머던지기 은메달리스트 충숙을 표현하기 위해 15㎏을 증량한 장혜진은 다시 예전 몸매로 돌아와 고운 자태를 뽐냈고, 지하실에서 빛도 못 보고 지내는 근세 역을 위해 촬영 한 달 먼저 지하 세트 생활을 시작했던 박명훈은 감량한 8㎏이 다시 붙으면서 한층 좋아진 혈색을 자랑했다. 이름이 주는 힘은 무서워서 “태릉선수촌 라커룸에 붙었을 법한” 충숙과 “근로자라면 누구나 내야 했던 갑종근로소득세에서 따온” 근세에서 벗어나자마자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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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흔다섯 동갑내기인 두 배우는 tvN 주말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남매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평양 최대 규모 백화점 사장 고명은 역과 조선인민군 원스타 고명석 역이다. ‘기생충’에서는 부잣집에 빌붙어 기신기신 살아갔지만, ‘사랑의 불시착’에서는 재력과 권력을 겸비한 집안으로 격상한 셈이다. 배곯을 걱정 없이 잘 먹고 다녀서 그런지 “화려하자요. (고랑을) 혁명적으로 한번 파보라요”라고 말하는 장혜진의 기세는 위풍당당하기 그지없다. 박명훈은 누나와 조카(서지혜)에게 “아가리 닥치고 있으라” “삼촌은 가만히 좀 있으라” 등 구박받기 일쑤지만 눈빛만은 혁혁하게 빛난다. 말보다 발이 먼저 나가는 현실 남매 케미도 볼만하지만,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큰 눈을 굴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진짜 한 가족처럼 보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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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장혜진은 본거지인 백화점을 휘젓고 다닐 때나 군인 사택 마을 사람들과 둘러앉아 있을 때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글로벌 추세에 맞춰 살을 ‘자의로 깐’ 것도 모자라 ‘빠다 바른’ 듯한 영어 발음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그 상대가 군인이든 인민반장이듯 할 것 없이 살살 원하는 정보를 캐내는 데도 능하다. 무엇이든 넘치거나 과하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마련인데 어디서든 있을 법한 자연스러움과 적절한 유머 감각을 발휘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박명훈과 함께 있을 때면 그 매력이 배가돼 두 사람이 등장하는 장면만 모아 편집한 영상이 떠돌 정도다. 현빈과 손예진, 김정현과 서지혜 등 주연 배우들의 로맨스 못지않게 조연 배우들의 활약이 주목받는 것도 이 드라마의 특징이다.


이는 두 사람의 필모그래피와도 무관하지 않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 출신인 장혜진은 영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1998)으로 데뷔했으나 다음 작품 ‘밀양’(2007)까지 공백기가 긴 편이다. 동기인 이선균ㆍ장동건ㆍ오만석 등은 꾸준히 활동을 계속했지만,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 그는 9년간 충무로를 떠나 있었던 것. 이창동 감독이 “이전보다 감성이 충만해졌다”고 끌어내지 않았으면 그대로 묻혀 있을 뻔했다.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백화점 판매직원 등 여러 직업을 거친 덕분에 생활감이 물씬 풍기는 연기를 할 수 있게 됐고, 영화 ‘우리들’(2016)을 본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에 캐스팅했다. ‘살인의 추억’(2003) 때는 봉 감독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그 전화가 계기가 돼 백화점을 그만두고, 16년 뒤 ‘기생충’으로 역사를 함께 만들었으니 남다른 인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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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박명훈은 연극영화과 입시에 떨어지고 오산대 행정학과에 진학했지만 군 제대 후 대학로로 간 케이스다. 1999년 연극 무대에 서기 시작한 그는 2005년 ‘라이어’로 이정은과 6개월간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드라마는 2013년 ‘왕가네 식구들’로, 영화는 2015년 ‘산다’로 처음 시작했지만 10여년간 대학로 무대를 누비며 탄탄하게 기본기를 다진 셈이다. 멀티맨으로 1인 10역까지 소화해봤다니, 이미 다양한 얼굴이 내재돼 있던 것이다. 봉 감독이 영화 ‘재꽃’(2017)의 술 취한 연기에 반해 캐스팅한 그는 ‘기생충’에 스포일러가 될까 봐 촬영 후 1년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끊고 새로운 작품 출연도 고사한 일화도 유명하다.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도 홀로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아쉽기보다는 나만 아는 비밀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 오히려 짜릿했다”는 그다. 이 정도면 연기가 곧 삶이요, 삶이 곧 연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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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히 이들을 향한 러브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영화 ‘니나 내나’로 첫 타이틀롤을 맡은 장혜진은 올해 ‘애비규환’ 개봉을 준비 중이다. 에프엑스 출신 크리스탈의 엄마 역할이다. 박명훈은 최우식과 함께 ‘경관의 피’를 촬영 중이다. 귀국 직후 촬영장으로 복귀한 그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휴가’도 준비 중이다. 시기의 차이일 뿐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언제든 알아보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몸소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탄탄하게 준비된 배우들이 하나둘 더 발견되다 보면 곧 더 놀라운 작품이 탄생하지 않을까. 앞으로 더 활짝 피어나자요. 기대하고 있겠습네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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