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에선 하는 '붉은 수돗물' 근본 처방 한국은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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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정수장에서 수돗물을 내보낼 때 수도관의 부식을 막는 별도의 처리 과정을 거치지만, 국내 정수장에서는 이런 절차를 생략하는 바람에 수도관 부식과 녹물이 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수도사업자인 지방자치단체에서 노후 수도관의 교체·세척에 소홀한 상황에서 수돗물 부식성 조절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우달식 한국계면공학연구소장은 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상수원은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탄산칼슘의 농도가 낮은 '연수(軟水)'여서 부식성이 높다"며 "국내 수돗물 기준도 pH(산성도) 하한값이 5.8로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6.5에 비해 낮아 산성이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국내 수돗물의 부식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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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소장은 1999년부터 수돗물 녹물 문제를 연구해왔으며, 2001년부터 환경부와 서울시 위탁을 받아 다섯 차례 이상 관련 연구용역을 수행했다.
그는 "정수장에서 정수 처리 후 소석회(수산화칼슘)와 이산화탄소를 첨가하면 수돗물 부식성을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도관 내에 얇고 단단한 탄산칼슘 피막이 형성돼 녹이 떨어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에서는 대부분 정수장에서 부식성을 조절한 다음 수돗물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은 국가 수질관리 목표에서 부식성 지수(LI, Langelier Saturation index)가 –1에서 0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 수돗물은 부식성 지수가 보통 -1을 밑돌며, -3 아래로 떨어져 강한 부식성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부식성 지수는 탄산칼슘의 포화 정도를 나타내는데, 지수가 음(-)의 값을 나타내면 탄산칼슘이 불포화, 양(+)의 값을 나타내면 탄산칼슘이 과포화를 의미한다.
과포화 상태에서는 탄산칼슘이 배관 내부에 침적돼 부식 억제 층이 생성되고, 배관의 부식 발생을 지연시켜 준다.
불포화 상태에서는 금속 배관의 부식이 빠르게 일어나게 된다.
부식이 심하게 진행된 낡은 수도관 내부. [중앙포토] |
미국은 먹는물 수질기준의 부식성 항목에 '비부식성(non-corrosive)일 것'이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우 소장은 "큰 비용 들여 노후관을 교체해도 부식성 낮추지 않으면 곧바로 녹이 슬고 녹물 나올 수밖에 없다"며 "녹이 발생하면 잔류염소 농도가 떨어지고, 세균 성장도 우려되기 때문에 부식성 조절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남궁은 한국환경한림원 회장은 "국내에서도 수도관 교체나 청소가 어려운 지역에서는 정수장에서 부식성 조절을 시범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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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서울시 노후 상수도관 교체 현황 (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24일 서울시에 따르면 당초 2022년까지 노후 상수도관 138㎞를 순차적으로 교체할 예정이었으나 긴급 추경예산을 편성해 올해 안에 모두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0eun@yna.co.kr (끝) |
한국수자원공사에서는 10여 년 전 5개 정수장에 부식성 조절 과정을 시범 도입했다. 당시에는 소석회를 녹여서 투입하는 기술이 부족해 수도관이 막히는 '사고'가 발생했고, 정수장 직원들도 반대해 포기했다.
환경부는 수돗물 부식성 관리를 위해 2012년 7월부터 부식성 지수를 먹는물 감시항목으로 지정해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관리항목으로 전환하지 않았고, 서울시 등 일선 정수장에서도 부식성을 조절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12일 오전 인천시 서구 한 중학교 급식실 수도꼭지에 씌워둔 하얀색 마스크가 까맣게 변해 있다. 수돗물에서 물때가 나온 탓이다.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가 발생한 이후 일선 학교에서는 마스크나 거즈 등을 사용해 자체 수질 검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부식성 지수는 계절과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정수장마다 조절 방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부식성 지수의 관리범위를 정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존 수돗물 공급 시스템에 적용했을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정수장에서 약품을 추가로 넣는 데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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