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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니 묻는다 “동네 분?” 사랑방으로 진화하는 작은 책방들

지역 문화공간으로 진화한 동네 서점

독서모임, 음악 공연, 영화 상영에

연말엔 바자회, 음악 앨범도 발매

혼자 일하고 싶은 세대 욕구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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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 오셨나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2층 단독주택의 초인종을 누르자 인터폰 너머로 들려온 말이다. 이 2층집의 서재가 바로 음악 관련 서적과 재즈 음반 등을 판매하는 음악전문 독립서점 ‘라이너 노트’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거실 마루를 지나야 들어갈 수 있는 서점은 딱 가정집 서재의 모습 그대로다. 벽 가득히 책과 음반이 꽂혀 있고, 한쪽엔 오디오 시스템이 있어 손님이 들어오면 직원이 은은한 재즈 음악을 틀어준다. 책은 고풍스러운 소파와 피아노가 있는 거실, 위층 온실 공간에서도 읽을 수 있다. 거실에선 매주 작은 라이브 재즈 공연 또는 기타 교습, 작사 클래스 등 다양한 음악 관련 행사가 열린다. “이 집을 임대하기 위해 집주인 할머니의 면접을 5번이나 봤다”는 홍원근 대표는 지난해 가을 공연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찾다가 1968년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한 이 집을 알게 됐고, 집이 가진 고풍스러운 매력에 빠져 서재형 서점으로 라이너 노트의 형태를 바꿨다.


#평일 오후 작은 서점 '번역가의 서재'(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동네 분이세요?”라는 박선형 대표의 질문을 꼭 받게 된다. 이곳은 일본어 번역가인 박 대표가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디자인·인문학 관련 번역서만을 소개하는 서점이다. 주택가 골목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 평일엔 인근 동네 주민들이 주로 찾아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공간이 됐다. 매주 2번씩 열리는 독서 모임과 박 대표가 직접 진행하는 일본어 강좌의 구성원 역시 동네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모임 멤버를 포함해 단골들은 시시때때로 책방을 찾아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간다. 지난해 12월 말엔 함께 모여 바자회를 열고 떡국도 끓여 먹었다. 지난 12월 31일 오후 서점에서 만난 강연정씨는 빔프로젝터를 들고 있었는데 “집에선 안 써서 모임에 활용하려 가져왔다”며 아들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뛰어와 자랑한 곳도 이곳”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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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작은 서점들이 한층 더 새로운 컨셉트로 진화하고 있다. 독립출판물만을 소개하는 독립 서점이나 서점 운영자의 취향에 맞는 책을 큐레이션 하는 형태에서, 지금은 독서 모임을 기본으로 한 커뮤니티 활동은 물론이고 라이브 공연, 영화 상영, 바자회가 열리는 지역 문화 이벤트의 장이 됐다. 제주도 함덕에서 ‘만춘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영주 대표는 “작은 서점은 각각이 주는 온기가 다르고 주인장의 시선으로 골라 놓은 차별화된 책과 굿즈를 볼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 요즘엔 여기에 더해 소규모 북 토크과 독서 모임 등 차별화된 프로그램으로 지역 커뮤니티 시장의 중심에 동네 책방이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공간 역시 책이 가득 쌓인 일반적인 서점 형태에서 벗어나 서재나 갤러리·스튜디오 등으로 변화를 시도한다. 서점을 찾는 사람들도 이제 책을 사고 읽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거나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이들과 교류하기 위해 서점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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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동네 서점 여행 코스를 소개한 책『여행자의 동네서점』의 작가 겸 ‘책방 연희’의 운영자인 구선아 대표는 “혼자 일하기를 추구하는 시대”라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세대의 욕구와 합쳐지면서 취향을 나눌 수 있는 작은 서점이 각광 받으며 그 수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작은 서점은 새로운 공간을 찾는 소비자와 ‘혼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창업자를 모두 충족시키며 빠른 속도로 느는 추세다. 서울도서관의 조사에 따르면 대형서점과 그 체인점을 제외한 현재 서울의 서점 수는 533개에 달한다. 서울에서 서점이 가장 많은 지역은 종로구(54곳)와 마포구(56곳)다. 특히 마포구는 작은 서점의 집결지로, 2016년 헌책방을 포함해 34개였던 작은 서점 수가 2년 만에 22개나 늘었다.


요즘 작은 서점은 운영자의 취향이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개발에 한창이다. 그림책 서점을 운영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직접 그림 수업을 하거나 아트북 서점이 책을 만드는 북 바인딩 수업을 개설하는 식이다. 서울시와 서울도서관도 지역 서점의 이런 프로그램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6월 서울 시내 작은 서점 50곳을 '서울형 책방'으로 선정하고 문화 행사 지원비 지원과 SNS 등을 통한 서점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서점은 1층에 있어야 한다’는 기존의 틀도 깨졌다. 책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스튜디오와 갤러리를 함께 운영하는 아트북 서점 ‘비플랫폼’은 건물 3층에 위치했지만 찾는 이가 많다. 전시된 책은 100종 정도로 적은 편이지만 수작업으로 만든 아트북 전시 관람과 북 바인딩·프린팅 워크숍에 참가하려는 20~30대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의 김명수 큐레이터는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100%”라며 “2016년 처음 서점을 열 땐 1층 상점의 높은 권리금 때문에 3층을 택했지만 지금은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서촌의 ‘더 북 소사이어티’, 도봉구 창동의 ‘도도봉봉’ 역시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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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만춘서점'과 '소리소문 책방'. [사진 각 인스타그램]

작은 서점에 대한 인기는 비단 서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파주 출판단지를 포함한 경기도와 지방 주요 도시, 제주도까지 퍼져있다. 특히 제주도는 최근 작은 책방들이 빠른 속도로 생기고 있는 지역이다. 그림책·인문 등 한 가지 장르만을 취급하는 곳과 독립출판물만을 다루는 서점 등 특화된 컨셉트를 가진 곳이 대부분이고, 숙박과 함께하는 ‘북스테이’ 서점도 3곳이나 생겼다. 최근 1년간 이런 작은 서점들을 찾아 ‘책방 투어’를 하는 제주도 여행객도 많아졌다.


작은 서점들의 홍보 플랫폼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남창우 대표는 “지난해까지 제주도에만 34개의 작은 서점이 생겼다”며 “주로 운영자의 취향이 듬뿍 담겨 있는 게 특징인데, 최근 몇 해간 제주도로 이주한 아티스트와 출판·도서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이들은 책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림 클래스, 공연 등의 이벤트도 개최한다. 제주도 만춘서점은 지난해 말 수상한 커튼·강아솔·이아립 등 싱어송라이터 3팀이 각각 좋아하는 책을 읽고 만든 곡을 모아 ‘우리의 만춘’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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