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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멍·학대로 채워진 준희양의 '슬픈 인생' 5년

중앙일보

[사진 전주지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잔혹한 폭력과 학대를 받아왔다”


“따뜻한 사랑이나 보호를 받기는커녕 인생을 제대로 꽃피워 보지도 못한 채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2017년 말 친아버지와 동거녀의 학대로 5살 고준희양이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적인 분노를 불렀다. 이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어른들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꾸짖는데만 4000자 가까이를 할애했다.


친부 고모(38)씨와 동거녀 이모(37)씨는 잘못을 빌면서도 뒤로는 항소과 상고를 반복했다. 늘어난 재판 횟수만큼 준희양의 비극은 법정에서 계속 재현되어야 했고, 2년이 지난 뒤에야 끝을 맺었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이들에게 각각 징역 20년과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9일 밝혔다.


1심부터 3심까지 총 95장의 판결문에는 준희양이 겪었던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담겼다. 주로 ‘방치’ ‘폭력’ ‘멍’ 같은 단어들로 채워졌던, 그 짧았던 생의 기록을 따라가봤다.











준희양은 2012년 7월 몸무게 680g의 미숙아로 태어났다. 날 때부터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 그 결과 온몸에 수포가 번지는 등 점차 약해져갔다. 재판부는 ”피해 아동이 조금만 더 지속적인 치료를 받았더라면 성인이 되어서도 정상적인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버지 고씨의 폭력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고씨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딸을 때렸다고 한다. 쇠자로 피가 날 때까지 때리고, 발로 걷어차고, 심지어 준희양의 목을 조른 적도 있었다. 사망 당시 준희양은 갈비뼈가 부러졌고 발목엔 피고름이 차 바닥을 기어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7년 4월 26일 오전 준희양이 의식을 잃었다. 이틀 전 고씨가 심한 폭력을 행사한 뒤였다. 두유에 꽃은 빨대를 빨지 못하는 등 호흡 곤란을 보였지만 고씨와 이씨는 구급차도 부르지 않았다. 준희양은 제대로 된 응급 처치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떠났다.



학대가 들통날 게 두려웠던 두 사람은 이씨의 어머니인 김모(63)씨가 준희양을 키우고 있던 것처럼 꾸미기로 했다. 김씨 집에 준희양의 머리카락을 뿌리고 장난감을 가져다 놓는 치밀함을 보였고, 이웃에게 준희양의 생일이라며 미역국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태연히 가족여행을 가거나 프라모델을 인터넷에 자랑하는 이들의 냉혹함에 재판부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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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범행이 탄로난 건 고씨와 크게 다툰 이씨가 집을 나가면서다. 고씨는 혼자 책임을 뒤집어쓸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다. 결국 이들은 12월 8일 경찰에 준희양이 사라졌다고 가짜 실종 신고를 했다. 20여일 동안 3300여명의 경찰과 소방관 등이 투입됐지만 인력 낭비에 불과했다. 준희양의 시신은 친부의 손에 의해 이미 야산의 차가운 땅 속에 묻혀 있었다.


경찰의 의심은 자연스레 두 사람에게 향했고, 궁지에 몰린 고씨가 ‘사실 내가 준희를 묻었다’고 자백하면서 8개월 간의 자작극은 막을 내렸다. 수사단계와 법정에서도 이들은 학대의 책임을 서로에게 미뤘다. 고씨는 이씨가 자작극을 먼저 제안했다고 했고, 이씨는 고씨의 폭행을 낱낱이 읊으며 자신은 아이를 챙겨주었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책임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는지 의심스럽다”며 불쾌감을 표했다.











검찰은 1ㆍ2심에서 고씨와 이씨에게 모두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어린아이가 생명을 잃고 암매장까지 당한 잔혹성을 고려해서다. 재판부는 왜 그에 미치지 못하는 형을 선고했을까.

당시 아동학대치사죄의 최대 권고형이 징역 13년 6월이었기 때문이다. 고씨는 여기에 가짜 실종 신고로 공무집행을 방해하고 매월 꼬박 양육수당을 타낸 혐의 등의 형량(약 6년)이 얹어져 징역 20년이 선고됐다. 이씨의 경우 학대에 가담했지만 직접 준희양을 때린 적이 없어 징역 10년에 처해졌다. 이씨의 모친 김씨는 사체유기를 도운 혐의로 징역 4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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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희양 사건은 아동학대치사죄 형량을 높이자는 논의의 불씨가 됐다. 이후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 등이 터지며 청와대 청원 등이 활발하게 올라왔다. 지난해 7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학대치사죄에 대해 최대 징역 15년까지 처벌하도록 의결했다. 다만 고씨 등은 그 전에 재판에 넘겨져 새 기준이 적용되진 않았다.











재판부는 준희양의 친모인 송모씨 또한 학대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지적했다. 송씨는 "고씨가 다혈질이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아이들을 때렸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고씨의 폭력성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준희를 아버지와 살게 내버려 둔 것이다.

사회가 준희양을 알아챌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친모 송씨와 지낼 무렵인 2016년 5월 이웃이 ‘아이들이 구타당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집 밖으로 내쫓기고 있다’며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감시에 들어갔지만 '학대 고위험 징후’가 없다고 판단했다. 기관에서 준희양이 ‘안전하다’고 최종 확인했던 2017년 3월은 학대로 사망하기 한 달 전이었다.


어린이집 교사는 “준희가 머리를 감지 않고 얼굴이 더러운 날이 많았다”고 진술했지만 학대를 의심해 신고하진 않았다. 고씨의 지인은 "식사 자리에서 준희양이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머리를 맞았다","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고 밝혔지만 그때 뿐이었다. 2017년 3월 30일 이후 준희양은 어린이집과 동네에서 아예 행적을 감췄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준희양은 사실 구해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며 26일을 견뎠을 것이다.


“고준희양이 뭘 잘못했습니까.” 1심 마지막 공판에서 수사를 담당한 김명수 전주지검 3부장검사는 울분을 토했다. ‘죄 없는 아동이 이렇게 될 때까지 무엇을 했냐’는 우리 사회를 향한 묵직한 물음이기도 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 지난 2016년 기준 정부 공식 통계(36명)보다 최대 4배(148명)많은 아이들이 학대로 숨졌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준희'를 놓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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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되고 학대 당하는 고준희양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준희양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사진 전주지검]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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