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주만 10년, '서울의 밤'으로 빛본 은평구 양조장 대표
10년 간 '매실주' 하나에만 집중해
한국식 진 '서울의 밤' 출시 1년 만에 인기
더한주류 한정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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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외국인에게 서울의 밤은 어떤 이미지일까. 오래된 도시답게 묵직하고 포근하면서도, 젊음이 반짝이는 강렬한 도시가 아닐까. 2018년 말 출시된 더한주류의 매실증류주 ‘서울의 밤’의 맛이 딱 그렇다. ‘서울의 밤’은 전통주 전문 소개 플랫폼 ‘대동여주도(酒)’가 전국 전통주 전문점 협의회 소속 40여 개 전통주점의 판매 순위를 취합해 ‘2019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전통주’를 발표했을 때 증류주 부문 1위를 차지한 술이다.
요즘 전통주의 주요 소비자는 젊은 층이다. 이들은 ‘서울의 밤’의 어떤 매력에 빠졌을까. 지난 25일 더한주류 한정희(46) 대표를 직접 만나봤다.
“2010년 더한주류를 설립하고 매실주 전문 양조업체를 시작했죠. ‘매실주’ 하나에만 10년 동안 매달려 실패를 거듭하다 비로소 성공을 거둔 게 ‘서울의 밤’입니다.”
더한주류의 술은 딱 두 가지다. 잘 익은 황매(잘 익은 노란 빛깔 매실)만 골라 담금술에 100일 동안 침출시킨 뒤 1년~5년간 숙성시킨 ‘매실원주’, 그리고 이 매실원주를 1차 증류한 후 서양 술 ‘진(Gin)’에 들어가는 노간주열매(주니퍼베리)를 첨가해 2차 증류를 한 ‘서울의 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너 아직도 매실주 만드냐’ 놀리죠.(웃음) 하지만 전 여전히 매실주를 포기할 수 없네요.”
집안에 매실 과수원이 있어서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가 만들어준 매실청, 매실간장, 매실주를 맛보며 자랐다고 한다. 말하자면 매실은 한 대표의 유년시절 추억의 맛이다. 그런데 성인이 돼서 주점에서 맛본 매실주는 전혀 다른 술이었다. 너무 커버려 입맛이 달라진 건가 생각했는데, 일본을 여행하다 우연히 맛본 매실주는 추억 속의 그 맛과 똑같았다.
“무슨 차이일까. 호기심도 생기고 예부터 사랑받던 우리 전통 매실주를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오기가 생겨서 매실주 회사를 차렸죠.”
한 대표가 만든 매실주는 국내 일반 매실주와는 만드는 방법부터 다르다. 매실원액 이외에 기타 과실주를 40% 더하면 주세가 적어서 싼 가격에 팔 수 있지만 한 대표는 높은 주세를 감당하면서도 매실주 원액 100%를 고집했다.
“단단하고 단 맛이 덜해 가격은 세 배가 싼 청매를 쓸 수도 있었지만 ‘좋은 재료가 좋은 술과 음식을 만든다’는 아버지 말씀, ‘술 담기에는 말랑말랑하게 잘 익은 황매가 좋다’는 할머니와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어요.”
수확 후 바로 술을 담지 않으면 망가지는 황매의 특성 때문에 독일·캐나다의 아이스와인처럼 급속동결 기술을 개발해 특허도 땄다. 한 번 얼었다 침출하면 더 농축돼 단 맛이 많이 우러나오는 게 아이스와인 기법이다. 하지만 매실원주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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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한국 사람에겐 소주구나. 술의 힘을 빌려 잠시 쉬어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디저트처럼 달콤한 술보다는 센 술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생각한 게 알코올 도수 25도짜리 ‘서울 소주’였다. 하지만 과실주를 증류한 매실주에는 ‘증류주’라는 용어만 허용된다. ‘서울 증류주’ 이상했다. 그때 도움을 준 게 광고기획자인 친구였다.
“술은 밤에 마시는 거고 그렇다면 감성적인 서울의 밤 이미지를 붙여보자고 아이디어를 줬죠. 밤(night)에 마시는 강렬한 밤(bomb·폭탄)처럼 센 술을 기획했죠.”
비주얼 시대답게 병 패키지도 세련되게 만들었다. 목이 짧은 투명한 병에 흰색 레이블을 붙이고, 손 글씨로 ‘서울의 밤’을 적어 넣었다. 군더더기 없이 블랙 앤 화이트로만 이루어진 모던한 패키지는 소비자와 술 전문가들이 꼽는 ‘서울의 밤’ 인기 요인 중 하나다.
“흰 색의 동그란 레이블은 주재료인 매실에서 영감을 얻은 건데,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 밤에 뜬 둥근 달을 연상하더라고요. 저야 고맙죠.”(웃음)
한국의 매실주를 위한 한 대표의 도전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바로 글로벌화에 대한 포부다. 서양 술 진에 사용하는 노간주열매(주니퍼베리)를 첨가한 이유다.
“낯선 것을 처음 받아들일 때는 친숙한 것과 비교하게 되거든요. 서양 사람들에게 ‘한국술’이라고 소개하는 것보다 ‘한국의 진’이라고 소개하는 게 더 좋다는 걸 알았죠.”
실제로 서울의 밤은 글로벌에서도 인기가 좋다. 작년 12월 뉴욕으로 수출한 후, 3개월 만에 재 주문을 받아 두 번째 분량을 미국으로 실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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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라는 카테고리를 이용하면서 먹는 방법도 훨씬 다양해졌다. ‘원샷’ 스트레이트도 좋지만, 얼음을 넣은 언더록도 좋고, 다양한 음료와 섞어 칵테일을 만들어도 맛있다.
“여러 가지 활용도를 생각하다 피자 먹을 때 사용하는 타바스코 소스를 섞어봤는데 그것도 괜찮더라고요.”(웃음)
한 대표는 더한주류를 설립하기 전, 10년 간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학부와 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천재’는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음악의 길을 접었다고 한다.
“바이올린 연주와 좋은 술 만들기는 결국 같다는 걸 매일 깨달아요. 바이올린 공부할 때도 매일 8시간 연주 연습을 했어요. 술 담그는 일도 꾸준히 열심히 해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죠. 바이올린도 섬세한 움직임 하나로 음정이 달라지는 것처럼, 술도 아주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차이가 납니다. 이런 하모니의 힘을 알기 때문에 술을 만들 때도 좋은 음악을 연주할 때처럼 정성을 다하고 있죠.”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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