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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꺼짐 공포' 부산 명지신도시 가보니…“집값 떨어질라 쉬쉬”

21일부터 S 아파트 공사장 앞 도로 1.6m 꺼져

터파기 중 지하 20m서 지하수 유입되면서 침하

전문가 “공사장은 모래층으로 구성된 연약지반”

관할 구청, “지반 공사한 LH와 근본 대책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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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도 집값이 떨어질까 봐 주민들이 하소연을 못 하고 끙끙 앓고 있죠.”

26일 오후 대규모 땅 꺼짐 현상이 며칠 새 일어난 부산 강서구 명지국제신도시의 S 아파트 신축공사장 앞 도로. 인근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임모(57)씨는 주민들의 속사정을 이렇게 전했다. 임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땅 꺼짐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도로 곳곳에 균열이 가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명지국제신도시 곳곳에 땅 꺼짐 현상이 일어나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귀띔했다. 경찰은 26일 현재 땅 꺼짐 현상이 발생한 도로를 전면 통제하고 있다.


땅 꺼짐 현상으로 임씨가 운영하는 부동산 사무실은 전기 공급이 끊겼다. 도로 교차로에 설치된 교통신호등이 15도가량 기울어지면서 관할 강서경찰서가 전원을 차단했다. 임씨는 “이번 주말 명지국제신도시 내 상가 건물을 보러 오려는 고객에게 5월에 오라고 했다”며 “땅 꺼짐 현상을 알면 상가 건물을 안 살 게 뻔하다. 빨리 복구작업이 마무리됐으면 한다”고 했다.


S 아파트 공사장 앞 도로는 15m 반경으로 1.6m가량 지반이 꺼진 상태다. 대규모 땅 꺼짐 현상은 21일 오후 6시부터 시작됐다. S 아파트 시공사 관계자는 “당시 땅이 2~3㎝ 정도 꺼지더니 다음날 자정부터 지반에 물이 차오르면서 빠르게 내려앉았다”며 “22일에는 시간당 6~7㎝가 침하하더니 5일 만에 1.6m가량 땅이 꺼졌다”고 말했다.


내년 완공 예정인 S 아파트는 지하 5층 지점인 20m까지 터파기를 하다가 공사장 부지 안으로 지하수가 유입됐다. 아파트 시공사 관계자는 “지하 44m까지 차수벽을 설치했으며,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경자청)에서 지하수 유입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지국제신도시 내 건축 공사 허가권을 가진 경자청은 공사 중단 조처를 내리고 땅 꺼짐 원인을 찾고 있다. 경자청 부산본부 건축환경팀 이상훈 주무관은 “전문가마다 땅 꺼짐 원인 분석이 달라 건축학회에 용역을 의뢰할 예정”이라며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도로 복구 작업은 무기한 연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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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명지 신도시 침하 원인으로 연약한 지반과 지하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시공사의 무리한 터파기 공사 등을 꼽는다. 한 토목 전문가는 “명지국제신도시는 모래층과 점토층 하부모래층으로 구성된 연약지반”이라며 “지하 안전영향평가를 하지 않고 신도시 곳곳에서 신축건물 공사가 진행돼 도로 침하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하 10m 이상을 굴착하는 신축건물 공사의 경우 지하수 변화, 지반·지질 현황 등을 평가하는 지하 안전영향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이 규제는 지난해 1월 도입됐지만, 명지국제신도시 대부분 건물은 그 전에 착공돼 영향평가를 받지 않았다.


2017년 10월 완공한 부산지검 서부지청 신청사도 지난해 두 차례 침하가 발생했다. 청사 인근 아파트 건설업체 등이 안전진단을 하고 보수 공사도 했지만, 또다시 추가 침하가 일어나고 있다.


명지국제신도시의 도로 유지와 안전관리를 맡은 강서구청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설 방침이다. 강서구청 건설과 김교중 주무관은 “땅 꺼짐 현상으로 불안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며 “명지국제신도시 지반 조성공사를 한 LH와 안전관리 차원에서 명지 신도시 전반에 대해 진단을 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명지국제신도시는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핵심 배후 주거지로 국제 비즈니스 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명지 일원 640만㎡에 조성되며 해운대 신도시의 2배에 이른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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