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을 망작이라 하기엔…1인 4역 이 남자가 눈에 밟힌다
민경원의 심스틸러
[민경원의 심스틸러]
대한제국 무뚝뚝 근위대장 조영 역 우도환
대한민국선 스윗 가이 조은섭, 상반된 매력
“기회 반드시 온다” 갈고 닦은 기본기 발휘
남녀주인공보다 돋보이는 서브 남주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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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금토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는 정말 이대로 끝난 걸까. 김은숙 작가의 신작이라는 기대 속에 첫 회 11.4%로 시작한 시청률은 9회 6.3%로 반 토막 났고, 역사 왜곡부터 과도한 PPL까지 각종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섣불리 ‘망작’으로 치부하기엔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과 또 다른 세계인 대한제국을 오가는 평행세계를 다루는 작품 특성상 두 세계를 탄탄하게 다져놓지 않으면 후반부 이야기를 펼쳐나가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한 사람이 두 세계를 오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각기 다른 목적으로 양쪽을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한 갈래를 놓치면 다른 갈래까지 쫓아갈 수 없게 된다. 애초에 김은숙 표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하는 쪽도, 백마 탄 왕자라면 신물이 나는 쪽도 만족하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이 복잡한 구성은 의외의 연기 대결을 낳았다.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1인 2역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캐릭터 간 진폭을 보여주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 느껴진달까. 만파식적을 손에 넣기 위해 역모를 꾀한 대한제국의 이림(이정진)은 대한민국으로 건너와 가장 먼저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자를 찾아내 목숨을 빼앗았다. 타고난 운명의 힘은 제법 강해서 박 팀장(박원상)이나 심 형사(허동원)처럼 두 세계 모두 경찰로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쪽에선 열혈경찰인 정태을(김고은)이 저쪽에선 교도소를 밥 먹듯 드나드는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자연히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각종 장치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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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양측의 대비가 제일 도드라지는 배우는 우도환(28)이다. 그가 맡은 황실 근위대 대장 조영과 사회복무요원 조은섭은 가장 간극이 큰 인물이기 때문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황제 이곤(이민호)의 곁을 지키는 조영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무뚝뚝한 상남자라면, 제대 후 민간인이 되는 것이 소원인 조은섭은 경찰서 식구들의 심부름과 쌍둥이 동생 은비 까비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는 스윗 가이다. 단정한 포마드 헤어에 제복을 갖춰 입은 조영과 곱슬 거리는 파마머리에 귀여운 캐주얼 차림을 한 조은섭을 두고, 팬들 사이에서는 앞머리를 올린 ‘깐도환’을 지지하는 파와 앞머리로 이마를 덮은 ‘덮도환’을 옹호하는 파로 나뉜다.
생김새만큼이나 다른 말투도 캐릭터가 지닌 매력을 더한다. 조영은 목소리도 듣기 어려울 정도로 과묵하지만, 사근사근한 조은섭은 사투리를 찰지게 구사한다. 7회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보면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깜짝 놀란 조은섭이 “내랑 똑같잖아, 그냥 내잖아, 몰랐는데 내 좀 생겼네”라고 읊조리자, 조은섭이 “진짜 몰랐어? 어떻게 모르지. 주변에서 끊임없이 알려줬을 텐데”라고 되치는 식이다. 이림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조영이 대한민국에 남고, 조은섭이 대한제국으로 향해 상대방인 양 속이는 연기도 인상적이다. 칼각이 제대로 잡힌 조영이 사투리로 “쑥스럽구로”라며 웃는 장면이나, 흐트러져 있던 조은섭이 목소리를 깔고 지시를 내리는 모습을 보면, 1인 2역을 넘어 1인 4역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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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남녀주인공보다 눈에 띄는 서브 남주로 거듭났다. 본디 김은숙 작가가 서브 커플에 공을 들이는 것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이민호와 김고은이 전작 ‘상속자들’(2013)의 김탄과 ‘도깨비’(2016~2017)의 지은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홀로 치고 나오는 모양새가 됐으니 말이다. 이미 주인공 반열에 올랐지만 김 작가에 대한 믿음으로 기꺼이 서브 남주를 택했던 ‘도깨비’의 이동욱이나 ‘미스터 션샤인’(2018)의 유연석, 변요한처럼 우도환 역시 선배들의 뒤를 밟아 커나갈 것으로 보인다. “1인 2역이 욕심나면서도 많은 부담이 됐다. 제일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투리”라면서도 덜컥 대본을 받아든 것은 “믿고 따라오라”는 김 작가의 말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 칼을 갈아온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마스터’에서 스냅백 역을 맡은 우도환. [사진 CJ엔터테인먼트] |
2011년 MBN ‘왔어 왔어 제대로 왔어’에서 스쳐 지나가는 단역으로 데뷔한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5년 동안 80여번의 오디션을 봤다”고 밝혔다. “10년 기다려야 하는데 나머지 1년을 못 참아서 포기하지는 말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가슴에 새기며 버텼다고. 그렇게 오디션을 통과해 2016년 영화 ‘마스터’에서 진경 곁을 지키는 스냅백 역할로 눈도장을 찍은 이후 이듬해 드라마 ‘구해줘’ ‘매드독’ 등에서 잇따라 주연 자리를 꿰찼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을 뿐”이라고 믿으며 5년간 365일 준비된 자세로 오디션에 임했던 성실함이 통한 셈이다. 언제 어떻게 올지 몰라 맘 편히 여행 한번 가지 못하고 매일 같은 시간 일어나며 마음을 다잡았다니 조영의 고지식함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매드독’에서는 독일 입양아 출신 김민준 역으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KBS] |
“돌이켜 보면 20대 초반에는 스스로를 너무 억압하며 살았다”고 했지만, 인고의 시간은 적금처럼 돌아왔다. ‘인천상륙작전’(2016)의 리경식 부하 2 같은 단역을 위해 머리를 빡빡 밀고, 대사도 몇 마디 없는 ‘마스터’의 스냅백 역할을 빛내고자 몸을 키우고 액션 스쿨을 다니는 등의 시간이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된 셈이다. 경기 안양에서 나고 자란 그는 ‘구해줘’에서 대구 사투리를 쓰는 석동철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사투리 선생님 1명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지인을 총동원해 5명의 각기 다른 억양을 연구하고 대구 시내 곳곳을 혼자 돌아다녔다”고 했다. 현장에서 부딪치며 필요한 기본기를 충실하게 채워 넣은 덕분에 ‘매드독’에서 독일 입양아 출신이라는 숙제가 주어져도, ‘나의 나라’(2019)에서 사극 액션을 요해도 당황하지 않고 소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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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배우를 꿈꾸게 됐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7년 연애 끝에 결혼한 아버지는 “내가 배고픈 건 괜찮은데 사랑하는 사람이 배고픈 걸 볼 수 없어” 연기를 그만뒀지만, 아들은 포기하지 않고 버틴 덕에 “대신 꿈을 이뤄줘서 고맙다”고 하신단다. 이제 차세대 남자배우 중에서도 선두 대열로 치고 올라왔으니 앞으로는 더 고마울 일만 남은 듯하다. ‘나는 언제 될까’란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해온 그의 진가가 빛을 발할 테니 말이다. 쉽지 않은 장르물에 첫발을 내디딜 때마다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줬으니 부디 빨리 피고 급히 지기보다는 찬찬히 무르익기를 바란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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