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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친구의 아내를 사랑했네, 오페라 '가면무도회'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26)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26)

1859년 베르디가 발표한 ‘가면무도회’는 1792년에 발생한 스웨덴의 계몽군주였던 구스타프 3세의 암살 사건을 소재로 작곡한 작품입니다.


베르디가 이 오페라를 작곡하던 시기에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국왕을 암살하는 내용의 오페라를 관람한 로마 시민들은 ‘비바 베르디(Viva VERDI)’를 열광적으로 외쳤는데, 음악가 베르디에 대한 찬양이기도 했지만, 숨겨진 뜻이 있었답니다. 바로 베르디의 이름(VERDI)에 ‘Vittorio Emanuele Re D’Italia’의 첫 글자를 붙인 것이거든요. 즉 당시 사르데냐 왕이었던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를 중심으로 이탈리아를 통일하자는, 독립의 상징이었지요. 그는 단순히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가 아니라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핵심이었습니다.


결국 주세페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초연 이듬해에 동명의 주세페 가리발디 장군이 ‘붉은셔츠단’을 조직해 나폴리와 시칠리아 지방을 무혈 평정한 뒤 점령지역 모두를 온전히 사르데냐 왕국에 헌납함으로써 그 다음해(1861)에 통일 이탈리아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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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 [사진 위키백과]

오페라에서 독립운동을 찬미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고뇌하며 스스로의 명예뿐 아니라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의 명예까지 지켜낸 왕이 아닌 한 인간의 아픔이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펼쳐지지요.


스웨덴의 왕 구스타프는 아멜리아를 사랑합니다. 문제는 그녀가 레나토의 아내라는 점이지요. 레나토는 국왕의 친구이자 충성스런 신하입니다. 막이 오르면 왕을 칭송하는 합창 속에 구스타프는 아멜리아를 그리워하고, 국왕의 개혁조치로 권한이 축소된 귀족들은 반역을 꾀하는 음모를 노래합니다. 왕의 측근 레나토는 왕에 대한 자신의 충정을 다짐하지요.


스톡홀름 교외 점쟁이의 동굴에 왕이 변장을 하고 신하들과 함께 찾아옵니다. 아멜리아의 하인이 먼저와 사랑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며 처방을 문의하는데, 왕이 숨어 보고 있습니다. 점쟁이는 창백한 달이 비추는 사형장 들판에 반드시 본인이 가서 약초를 뜯어 먹으라고 합니다. 왕은 그녀도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힘들어하고 있음을 알고 기뻐합니다.


그녀가 떠나자 왕이 자신을 어부라고 속이고 아리아 ‘순조로운 파도가’를 부르며 사랑점을 의뢰합니다.



왕의 손금을 본 점쟁이가 깜짝 놀라며, 이후에 처음 손을 잡는 자에게 죽게 될 것이라고 털어놓게 됩니다. 신분을 드러낸 왕은 어처구니 없는 예언이니 누구든 자신과 악수를 하며 웃어 버리자고 하지만, 아무도 왕의 손을 잡는 자는 없지요.


이때 레나토가 뒤늦게 들어오는데, 상황을 모르는 그는 반갑게 내미는 왕의 손을 덥석 잡고 악수합니다. 그가 왕의 친구이자 충신임을 아는 모든 사람은 예언이 틀렸다고 웃어넘깁니다.


점쟁이의 말대로, 도시 외곽의 사형장 교수대에 달빛이 비추고 아멜리아가 서있습니다. 남편의 친구를 사모하게 된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흐느낍니다. 그녀를 걱정하는 구스타프가 나타납니다. 그는 그녀에 대한 속마음을 절절하게 털어놓지만, 아멜리아는 “저는 당신을 위해 목숨도 바칠 친구, 그 사람의 아내에요”라는 말을 반복하며 억지로 본심을 감추지요. 그런 그녀에게 구스타프는 단 하나의 청을 합니다. “나를 사랑한다고, 한 마디만 해주시오”라는 그의 간청에 결국 그녀는 그 한마디만을 허락합니다. “그래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녀의 사랑을 확인한 구스타프는 가슴 터지는 기쁨에 젖어 그녀를 포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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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왕의 안위를 걱정하는 레나토가 왕을 찾아옵니다. 놀란 아멜리아는 얼굴을 베일로 가리고, 왕은 그녀를 시내로 데려다 주되 얼굴을 보지도 말을 걸지도 말라고 지시합니다. 레나토가 시내로 돌아가다가 반역을 꾀하는 귀족들과 마주칩니다. 호시탐탐 왕을 시해하려는 그들은 왕의 여자의 정체를 확인하려 하고, 왕의 지시를 이행하려는 레나토는 그들과 결투도 불사합니다.


결국 아멜리아의 베일이 벗겨지자, 모두가 경악하지요. 역도들은 그런 레나토를 조롱합니다. ‘하, 하, 하’를 반복하는 베이스의 저음 사이로, 배신감에 치를 떠는 레나토의 분노와 산산조각 난 아멜리아의 흐느낌이 밤하늘에 울려 퍼집니다.



아멜리아의 부정을 참을 수 없는 레나토는 그의 집으로 모반 귀족들을 불러모아 놓고, 그녀에게 왕을 죽일 선봉을 제비 뽑기하라고 시킵니다. 선택된 사람은 레나토! 결국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사람으로 남편을 뽑게 된 것이지요. 아, 이런 잔인한 운명이 어디 있답니까!


한편, 왕은 아멜리아의 사랑을 확인한 것에 만족하며 레나토를 외국대사로 임명하여 부부가 같이 떠나도록 임명장을 작성합니다. 그녀를 이제 볼 수 없지만 “당신의 추억은 내 가슴 깊은 곳에 있을 것”이라며, 왕은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그녀와의 사랑을 간직합니다.


여느 때와 같이 화려한 가면무도회가 열리고, 아멜리아를 만난 왕은 그녀를 위해 두 사람을 멀리 떠나 보낼 것이라고 이야기 하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그때, 뒤에서 다가온 레나토가 왕의 가슴을 찌릅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왕은 체포된 레나토에게 그녀의 결백을 증언해줍니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자네와 그녀 가슴에 상처를 줄 수는 없었다”며 가슴에서 외국대사 임명장을 꺼내 건네며 왕의 마지막 권한으로 그를 사면하고, 모든 이들의 장엄한 애도 속에 숨을 거두며 막이 내려집니다.


사랑은 무엇인가요? 누구는 사랑 때문에 끼니를 거르고, 누구는 사랑의 상실감으로 머리를 자르지요. 구스타프는 그들 모두를 사랑했으며, 죽으면서까지 그들을 지켜줍니다. 그는 순수하고 숭고한 사랑에 왕위를 포함한 생을 걸었답니다. 깐느가 인정한 영화 ‘기생충’ 속 대사처럼, ‘왕이 착하기까지 한’ 걸까요? 아니면 ‘왕이니까 착한 것’일까요?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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