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나의 코로나 투병기…10분 머문 카페서 감염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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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79)
사건이 시작된 것은 거리두기 1단계이던 8월 어느 날 아침이다. 안전안내 문자에 코로나 확진자의 동선이 떴는데, 며칠 전에 아내와 잠깐 들렀던 커피전문점이 들어 있었다.
모든 게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이 모여 시끌벅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지역 슈퍼 전파자인 방문판매업자가 주도한 자리였다. 그 장소에서 세 명이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한 명은 그 모임 참석자였고, 아무 관련 없는 나와 아내가 공기 중 전파를 통해 감염되었다. 우리가 머문 시간은 불과 10분, 그것도 꽤 떨어진 자리에 있었다. 그날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정리해본다.
보건소에 연락했더니 이미 CCTV 화면을 확보하고 있었다. 우리는 능동감시대상이 아니라고 해 별걱정 없이 검사받았지만 다음 날 아내는 양성, 나는 음성을 통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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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아내는 간단히 짐 챙겨 119구급차를 타고 입원했다. 힘내라는 말만 하곤 손도 잡아보지 못한 채 떠나보냈다. 나만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자가격리에 들어갔으니 기분이 가라앉아 며칠 동안 입맛도 없고 활력도 없이 지냈다.
생각할수록 황당하고 기막혔다. 그동안 마스크 쓰기는 물론이고, 가급적 사람 많은 곳 피하고, 모임도 안 나가고, 동네 방역 활동을 강화해달라는 민원까지 낼 정도로 호들갑스럽게 코로나를 경계하던 우리 부부였다. 그런데 왜 우리가? 아무 신경 안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다 멀쩡한 것 같은데 말이다.
며칠 후 아내의 상태가 나빠졌다. 폐 속의 조그맣던 염증이 커져 숨쉬기 힘들다며 두려움에 휩싸여 우는데, 가볼 수도 없으니 미칠 것 같았다. 담당 의사에게 물어보고 의사인 친척 형님한테 물어봐도 다들 ‘잘 모르겠다, 아직 젊으니 이겨낼 수 있을 거다, 기다려보자’는 말뿐, 시원한 대답은 없었다.
내 몸도 힘든 상태여서 마음이 더 혼란스러웠다. 마침 그즈음부터 살짝 열이 오르는 초기 감기 증상이 나타났는데, 이미 음성이 나왔기에 별 의심 없이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 때문인가 생각했다.
그렇게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지내던 어느 날, 라면 맛이 써서 뱉을 뻔했다. 미각 상실! 나도 걸렸음을 직감했다. 마침 그날은 내 생일 서울에서 아이들이 보내준 치즈 케이크를 떼어먹으며 평생 가장 조용하고 고독하고 우울하게 보낸 생일이었다.
걱정이 밀려들었다. 아내가 입원한 상황에서 나까지 입원하면 만일의 사태에 전혀 대비할 수 없고, 기한 내에 해야 할 일도 많고, 집에는 시간 맞춰 약 먹여야 하는 병든 강아지까지 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일단 큰아이가 와서 집과 강아지를 돌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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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증상은 전형적인 코로나였다. 열 오르고 머리 무겁고 맛을 못 느끼고 조금만 움직여도 지치고 숨이 가빴다. 알고 보니 근육통과 설사도 그 증상이었다. 보건소에 연락해 다시 검사받고 확진되었다.
집을 비우기 전에 할 일이 많았다. 아이가 감염되지 않도록 집안 곳곳을 세정제로 닦고 설거지하고 이불을 급히 빨아 널었다. 소독제로 강아지의 털을 닦고, 보건소에 방역 소독을 부탁했다.
안 그래도 힘든데 심하게 움직였더니 구급차에 오를 때는 가방 들 힘도 없을 만큼 탈진했다. 생전 처음 타 본 구급차였다. 비닐로 사방을 막아놨고 창문도 못 열고 에어컨도 없는 답답함…. 심각성이 실감 났다.
병원에 도착해 방호복 입은 간호사를 따라 철문을 몇 개나 통과해 입원실에 들어갔다. 그동안 이쪽 지역은 확진자가 적어 입원 시설에 여유가 있었다. 밝고 조용한 입원실과 친절한 의료진 덕분에 마음속 불안감이 조금 걷혔다.
아내와는 서로 걱정되어 전화로 늘 안부를 챙겼다. 의사는 가족 환자끼리는 심리적 안정을 위해 한 병실을 쓸 수도 있지만 우리는 병의 단계가 다르다며 이해를 구했는데, 한 건물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아내는 3인실에서 24시간 마스크 쓰고 지내느라 고생했는데 다행히 스테로이드 처방을 통해 상태가 많이 호전되고 마음도 안정되어갔다. 그나마 우리는 다른 곳에 바이러스를 퍼트리지 않아 편한 마음으로 치료받을 수 있었다.
입원 후 며칠 동안 열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응급상황이 아닌 한 입원실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간호사실에서는 사전 동의한 CCTV를 통해 나를 보며 필요할 때마다 유선전화로 어떻게 하라고 하고, 몸 상태가 어떤지, 필요한 건 없는지 늘 묻는다. 한번은 핸드폰 놔두고 화장실에 좀 오래 있었더니 핸드폰으로 유선전화로 나를 찾느라 야단이었다. 화면에 안 보여 낙상했을까 봐 그랬다는데, 탈출한 줄 알았나 보다.
담당 의사는 매일 전화로 상태를 설명해준다. 병에 관한 내용보다 대부분 자상하고 다정한 위로다. 하루 세 번 간호사가 식사 도시락을 전해주고, 일하는 분이 기본적인 청소와 소독을 하고 금방 나간다. 전부 방호복 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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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 번씩 나 스스로 혈압, 맥박, 체온, 산소포화도를 측정해 전화로 불러주면 그걸 토대로 상태를 살피고 해열제, 진해거담제, 항생제 등을 식사와 함께 넣어주는 게 치료과정이다.
그렇게 경과를 지켜보다가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거나 열이 높이 오르면 음압치료실 등으로 옮겨 산소호흡기 달고 치료받는다고 하니, TV에서 본 그 무서운 장면이 떠올라 수시로 산소포화도와 체온을 쟀다. 정상 산소포화도는 95~100인데 아내는 86까지 떨어져 산소호흡기를 달았던 터라 그렇게 불안했다.
나는 ‘50세 이상’에 ‘고혈압 기저질환’이라는 고위험군이라 걱정되었다. 하루는 열이 높이 오르니 눈앞이 뿌옇고 잘 안 보였다. 몹시 두렵고 막막했지만, 역설적으로 열뿐 아니라 다른 컨디션도 전부 최악이라 오히려 포기하는 심정으로 담담해져 시키는 대로 해열제 먹고 초저녁부터 잤다. 괴롭고 슬펐다. 내 몸의 코로나 균은 어떻게 될까? (다음 편에 계속)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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