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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중앙일보

당나귀랑 까미노 814km…한국판 돈키호테 “일단 저질러봐요"

중앙일보

아부지 이름은 임택. 아들 이름은 호택이.

황당한 아재가 있다. 환갑이 넘었다. 이름은 임택. 오십이 넘으면 여행하며 살겠다고 젊어서부터 노래를 했다. 말이 쉽지 그게 어디 생각대로 될 일인가. 꿈을 이루려 부지런히 일했고 때가 되자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그런데 반대할 줄 알았던 아내가 선선히 동의하더란다.


아재는 엉뚱하게도 매물로 나온 중고 마을버스를 산다. 서울대병원과 종로 일대를 오가는 12번 마을버스였다. 46만km가 찍힌 계기판이 고장 나 정확한 주행거리를 알 수 없는 폐차 직전의 고물차였다. 버스회사가 은수교통이라 차 이름을 ‘은수’라고 지었다. 아재는 은수를 몰고 여행을 떠났다. 강원도 양구나 전라남도 진도가 아니라 무려 세계 일주다. 2014년에 출발해 677일 만인 2016년 8월 서울에 돌아왔다. 5개 대륙 48개국 147개 도시를 거쳤다. 남미 중미 북미 유럽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러시아 일본까지 모두 7만㎞를 달렸다. 지구의 둘레가 4만km 정도다. 꽃길은 별로 없었다. 길 아닌 길도 달리고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다.


돌아와 여행계의 전설이 됐다. 그러다가 또 병이 도졌다. 이번에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카미노 데 산티아고)이다. 같이 걷는 동무들이 또 황당하다. 열아홉 살 이동훈과 현지에서 구한 당나귀 ‘동키호택’(돈키호테+임택)이다.


귀국해 경북 안동에서 의무격리 중인 그를 전화와 문자로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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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한 피레네산맥 능선.

-여정이 어떻게 됐나요.


“9월 16일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12월 18일에 돌아왔어요. 솅겐 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 사람들이 유럽을 여행할 수 있는 한도 90일을 꽉 채웠지요. 프랑스 국경 생장피드포드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서쪽 끝 콤포스텔라 까지 걸었어요. 호택이랑은 71일간 814km를 걸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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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는 프랑스 앞은 스페인.

-왜 까미노인가요. 한국에도 완주자 많아 식상한 느낌도 드는데.


”처음엔 제주도 올레를 걸으려 했어요. 그런데 당나귀가 끼어들면서 계획이 달라졌어요. 올레는 당나귀가 다니지 못하는 곳이 많아요. 그러다가 스페인 까미노 얘기를 들었지요. 당나귀나 말들이 잘 다닐 수 있도록 다듬어진 길이거든요. 한국에도 많은 분이 완주를 했지만 다른 방법으로 경험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걷다 보니 스페인 사람들의 당나귀 사랑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곧 쓸 예정인 책에서 당나귀는 아이들과 작가의 징검다리 역할이에요. 그런데 먼저 현지인과 저를 잇는 징검다리가 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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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그림찾기:호택이랑 동훈이

-여행을 어떻게 구상했나요.


“3년을 준비했어요. 한장의 사진에 꽂혀서 저질렀어요. 까미노 페르돈 언덕 위에 있는 조형물 사진이에요. 우리나라 조선 중기 정도 때의 순례단 모습을 철로 만들어 놓았어요. 말 두 마리와 그 위에 탄 두 명의 귀족(성직자일지도) 그리고 개 한 마리와 두 마리의 당나귀 나머지는 시종을 포함한 순례자들이에요. 뭐가 통했는지 그 당나귀에 딱 꽂혔어요. 말과 당나귀. 신분의 차가 바로 드러난 거죠. 말은 주인을 태우니 저녁이면 시종들이 빗질을 해주고 먹이도 주고 귀하게 대접했겠지요. 그런데 당나귀는 무거운 짐을 다 지고 다니는데 저녁이면 혼자 풀을 뜯고 눈비를 다 맞으며 자겠지요. 갑자기 역사의 변방에 있던 우리 민중을 생각해 봤어요. 어쩌면 그들과 당나귀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요. 순례길에서 당나귀가 없으면 어땠을까요? 말이 없으면 걸어가면 되지만 짐은 누가 지고 가나요. 평범한 사람들이 사실은 역사의 가장 중요한 기둥이었던 거죠.


사실 3년 전부터 이천에 있는 당나귀 농장에서 많은 공부를 했어요. 당나귀랑 강천 길을 며칠간 여행도 했고요. 그런데 당나귀를 한국에서 가져가는 일은 불가능해요. 그래서 2년 전에 프랑스 농장에서 한 마리 샀어요. 700유로이니 우리 돈으로 90만원 정도였어요. 그런데 당나귀라고 다 되는 게 아니더군요. 짐을 싣고 걷도록 훈련된 당나귀여야만 해요. 저 푸른 초원에서 눈누랄라 살던 애는 절대 안 돼요. 그래서 포기했죠.


그러다가 떠나기 3개월 전이었어요. 피레네 산맥 나바로 지방에 있는 당나귀 도보여행 업체가 협찬을 하겠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까미노 출발지에서 아주 가까워요. 그 업체 사장이 아리츠와 엘레나라는 젊은 부부인데요. 이분들이 제 소식을 듣고 흔쾌히 승낙한 거죠. 부부도 업체 홍보를 위해 나쁘지 않다고 본 거지요. 지금 그 집은 문전성시랍니다. 당나귀도 여러 마리 더 샀대요. 호택이랑 걷는 동안 인터넷은 물론이고 지방 신문 7개, TV 특집이 2번이나 나갔거든요. 이 농장에서 일주일간 교육과 훈련을 받고 떠났지요. 당나귀의 습성, 다루는 법, 먹이, 짐 싸는 법, 발바닥 청소와 같은 관리하는 법 등을 배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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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스 가는 길.

-걷는 내내 호택이가 인기 만점이었다면서요.


“말도 못해요. 호택이가 뜨면 누구나 휴대폰을 꺼내 들어요. 어떤 아이 아버지가 와서 그래요. 학교 간 아이가 당나귀를 꼭 다시 보고 싶어 한대요. 제발 하루 더 묵어가라고. 그래서 아이들 때문에 하루를 더 잔적도 있어요. 그분이 음식을 가져다주고 우리가 제일 힘들어하던 배터리 충전도 다 해줬어요. 그 뒤 방송과 신문 인터뷰 제안이 밀려오고, 사진작가들이 찾아와서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산티아고에 도착하니까 현지 주민들이 막 손을 흔들고 손뼉을 치고 그래요. 우리 얘기가 나온 신문을 주기도 하고요. 유럽은 지역신문이나 방송의 힘이 세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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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당나귀다 당나귀. 어디 가나 인기만점.

-당나귀와 교감이 가능한가요.


“저도 경험이 없어서 굉장히 의문이었어요. 그런데 단연코 가능해요. 아리츠가 당나귀는 사랑이 아닌 로직(원리)으로만 다루라고 했어요. 일할 때 즉 짐을 싣고 걸을 때 길가에서 무얼 먹으려고 하면 단호하게 목줄을 당겨라, 그 로직이 무너지면 당나귀는 말을 절대 안 듣는다고요. 처음에는 아주 단호하게 했죠. 길에서 안 가려고 버티면 위협하거나 채찍으로 엉덩이를 때리고요. 효과가 있더군요. 그런데 점점 정이 들며 이상해졌어요. 길에서 맛있는 풀을 보면 당나귀가 아니라 제가 못 가요. 그 풀을 좋아하는 호택이를 생각하면 꼭 먹이고 싶은 거예요. 제가 문제를 만든 거지요. 그랬더니 점점 호택이가 저를 만만히 봤어요. 맛있는 풀을 보면 안 가고 목줄을 확 당겨서 먹으러 가요. 로직이 무너진 거죠. 그런데 제가 기분 나쁘지 않고 맘이 너무 즐겁고 행복한 거예요. 350km쯤 걸었을 때 길에서 호택이랑 풀을 같이 먹었어요. 저렇게 좋아하는 풀 맛이 궁금해진 거죠. 맛이 세 가지더군요. 단맛, 알싸한 풀 맛, 그리고 아무 맛도 없는 풀이요. 향이 나는 풀은 절대 안 먹어요. 그러며 호택이 식사를 찾을 때면 제가 먼저 맛을 보게 됐어요. 서로 닮아간 거지요.


여행의 후반부에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제가 길을 가다 서면 저도 딱 제 옆에 서요. 제가 휴대폰을 보면 호택이도 서서 휴대폰을 들여다봐요. 제가 가면 가고 몇 발짝 가다가 서면 같이 서요. 그때부터는 목줄을 잡지 않고 함께 다녔어요. 풀을 뜯다가도 제가 ‘호택아 가자’ 그러면 먹던 풀을 두고 따라와요. 말로 다 되는 거예요. 자동차 길에서는 위험하니까 목줄을 잡긴 했지만, 우리끼리 가면 목줄 없이 다녔어요. 사람들 많은 대도시에서도 목줄 없이 다녔어요. 제가 장난으로 지그재그로 다니면 자기도 똑같이 지그재그로 따라와요.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신기해서 난리였어요.


산티아고 입성 10일을 남겨놓고 매일 비가 왔어요. 저는 텐트를 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호택이랑 떨어져서 잠을 자야 했어요. 그런데 호택이가 떨어지기 싫은 거예요. 숲에서 혼자 자는 게 무서웠던 거죠. 제가 멀어지면 막 울어요. 당나귀 우는 소리는 심장을 후벼 팝니다. 울다가도 제가 돌아서면 안 울어요. 돌아서면 또 울고. 아침에 만나면 제 품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있어요. 그거 보면 그냥 마음이 찢어져요. 산티아고 성당에 들어가서 비가 오는데 한 3분간을 안고 있었어요. 그 사진이 유럽커뮤니티에서 상당한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누군가 사진을 찍어서 줬는데 호택이가 눈을 감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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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택아 먼저 간다. 알아서 와.

-코로나 때문에 세계가 난리인데 걷는 동안 별일 없었나요.


“유럽에서는 코로나를 전파력이 강한 감기 정도로 생각하더군요. 우리처럼 줄 서서 검사하는 선별진료소도 없고요. 병원에 가도 코로나 환자와 일반인이 그냥 섞여 앉아 있어요. 게다가 아주 힘들지 않으면 집에서 그냥 쉬고요. 약이 없는 병이라서 10일 지나면 대부분은 낳는다고 해요. 숙소에서도 백신 증명서를 보여 달라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여행이 끝날 즈음 한 곳에서 증명서를 보여 달라더군요. 많은 알베르게(여행자숙소)가 문을 닫았는데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겨울이라 사람이 적어서 닫는 거래요. 제가 떠날 즈음 갈리시아에서만 감염자가 1000명이 넘었다는 뉴스가 떴는데 조금 긴장하는 것 같더군요. 귀국 전에 PCR 테스트를 받고 음성이 나와야 비행기를 태워줘요. 그런데 유럽은 이 비용이 매우 비싸요. 9만원에서 30만원까지 해요. 그래서 출발 3일 전부터 진단키트로 매일 체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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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

-이 시국에 여행이라니 팔자 늘어졌다는 눈총도 있었을 텐데.


“일단 제가 팔자는 아주 좋은 사람인 거 인정해요. 그렇다고 모두가 외부 활동을 멈추는 상황은 동의하지 않아요. 코로나가 건강한 사람에게는 큰 영향이 없다는 게 의료계 의견이잖아요. 단지 제가 문제가 돼 다른 분들에게 영향을 주면 안 되겠지만요. 이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이 위안과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해요. 저의 여행은 엉뚱하고 도전적이에요. 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재미와 웃음과 감동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덕분에 즐거웠다는 분들 많았어요. 그게 위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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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잔도 나눠먹고.

-길에서 도움을 받으면 그만큼 기부하겠다고 했는데요.


“이번 여행에서 여러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당나귀 덕분에 저도 덩달아서 혜택을 받기도 하고요. 당나귀를 길에다가 묶어놓으면 주민들 마음이 짠한가 봐요. 마른 빵을 가져다주고, 오뜨라는 곡식을 가져다 먹이고 그래요. 당나귀를 자기 집 정원이나 목장으로 데려가 재워주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행을 하다 보니 기부캠페인을 이어갈 수가 없었어요. 여유가 너무 없는 거예요. 걷기만 해도 정신이 없는 여정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계획을 수정했어요. 제가 책을 내고 그 인세를 몽땅 기증할 거예요. 기부단체에서 저를 공짜모델로 써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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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건초더미.

Tip!

이 쯤에서, 여행지가 더 궁금해졌다면?!

호텔 예약은 호텔스컴바인에서! 

-걸으며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줄줄이 만났다면서요.


“아, 정말 이것은 말하면 좀 신앙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네요. 신흥 사이비 종교가 탄생할지도 몰라요 하하하. 신발 끈이 끊어졌는데 30분 만에 길가에서 멀쩡한 신발이 얻었어요. 까미노 길에서 순례자들은 자신이 사용하지 않는 물품을 이렇게 길이나 알베르게에 놓아둬요.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쓰라는 거죠. 반바지를 입고 다녔는데 날씨가 추워졌어요. 바지를 사려고 했지요. 그날 저녁에 어떤 분이 말을 걸어요. 자기 거 하나 있는데 안 입을 거 같다고 필요하냐고요. 수영복이 있으면 냇가에서 목욕하기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침에 떠나는 데 누가 수영복을 두고 갔더군요. 주인이 가져가래요. 그날 저녁에 길가 바에서 만난 사람이 자기가 운영하는 알베르게에서 자고 가래요. 가격도 6유로로 아주 싸더라고요. 사실 그날이 제 생일이었어요. 그래서 생파도 할 겸 그 집으로 갔는데 거기에 수영장이 있는 겁니다. 동훈이하고 딱 우리 둘만 있었어요. 완전 무슨 호텔 같더라고요. 수영복을 달랬더니 수영장도 보내셨다고 낄낄 웃었어요.


그런 일이 너무 많은데 하나만 더 할게요. 제가 발 염증으로 걷지를 못하게 되었어요. 까리옹에서 꿰사로 가던 중이었거든요. 며칠 전에 호택이게게 발목을 걷어차여 다친 게 악화한 거죠. 그 전날 호택이에게 풀을 먹이고 있는데 들판을 가로질러 흰색 밴 차량이 달려왔어요. 혹시 밭 주인 아닌가 조금 겁이 났어요. 그런데 운전자가 다가와서는 말없이 호택이를 껴안고 쓰다듬고 그래요. 그러더니 한참 만에 자기는 독일에서 순례자그룹을 인솔하고 온 오스카라고 하더군요. 자기도 당나귀를 데리고 산티아고길을 걷다가 실패했대요. 그러며 다리가 몹시 아픈가 본데 저기 보이는 저 성당 오른쪽으로 가면 거리가 반으로 단축된다는 거예요. 까리옹에 오면 자기가 치료도 해주고 저녁도 산다고 했어요. 그날은 동훈이와 헤어진 날인데요. 그동안 제가 휴대폰 유심 카드가 없었거든요. 원래 것은 당나귀 주인이 보관하고 있어서 통신이 절실했죠. 게다가 당나귀 긴 줄을 잃어버려서 풀을 먹일 때 굉장히 불편했어요. 동훈이가 없으니까 제가 해야 할 게 많아진 거죠. 큰 걱정이 앞섰던 날이에요.


그길로 가니까 정말 거리가 절반이더군요. 겨우 까리옹에 들어섰는데 웬 청년이 저를 보고 유난히 친절하게 대해요. 그 친구에게 제가 필요한 걸 이야기하니 다 해결해 줬어요. 왜 이리 친절하냐고 물으니 자기는 독일에서 그룹을 인솔하고 왔는데 회사 사장이 당나귀로 산티아고를 간 적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스카? 하고 물었더니 이 친구가 놀라면서 멀리 있는 사장을 부르더군요.


부상이 커져 하루 뒤에는 도저히 못 걸을 정도가 됐어요. 그렇지만 다음에는 마을 간의 거리가 가까워 천천히 걸어갔죠. 그런데 웬걸 18km 중 8km 걷고 주저앉았어요. 062를 누르면 까미노 구조대가 떠요. 그런데 호택이를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었어요.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데 오스카한테서 문자가 왔어요. 어려우면 도와주겠다는 거예요. 오스카는 당나귀를 몰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그가 10분도 안 돼서 차를 가지고 직원과 왔어요. 저는 차를 타고 가고 그는 10km를 당나귀와 함께 동네로 들어왔어요. 진짜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게다가 이미 마을 사람들이 당나귀를 보호할 준비를 다 해놨어요. 말 목장으로 데리고 가서 제가 3일간 치료를 하는 동안 호택이는 아주 행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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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신난다. 신발을 주웠어요. 제발에 딱 맞아요.

-동훈이는 중간에 어디로 갔나요.


“동훈이와의 여행은 정말 좋았어요. 동훈이는 여행 작가를 꿈꾸는 청년이에요. 그래서 관광전문고등학교를 나왔고요. 동훈이 영어실력이 원어민 뺨쳐요. 같이 걷는 동안은 덕분에 인터뷰 걱정을 안 했어요. 절반을 함께 걷고 동훈이는 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고 모로코로 떠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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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 보낼 기사 작성 중.

-세계 속에서 한국의 달라진 위상이 느껴지나요. 국내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지지고 볶고 시끄러운데요.


“정치인들 갈등은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닌가 봐요. 6년 전에 마을버스로 세계 일주를 할 때도 한국의 인기가 굉장했어요. 그때는 주로 경제력이 약한 나라들에서 인기가 좋았는데 지금은 스페인에서도 대단합니다. 예전에는 현지인들이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냐고 물었는데 지금은 그냥 코리아냐고 물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기업체나 인기 가수 몇 명쯤은 기본적으로 알더군요. 대한민국의 인상이 무척 긍정적으로 알려져 있어요. 큰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나라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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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지나면 밝은 세상.

-색다른 경험이 있었다면.


“산안톤을 지나갈 때요. 로마 시대에 아주 큰 수도원이었는데 지금은 다 무너지고 담벼락을 수리해 무료 알베르게로 사용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대도시 부르고스가 아주 가까워요. 부르고스대성당은 산티아고성당, 레온 성당과 더불어 스페인 3대 성당이래요. 마침 부르고스대학의 교직원들이 주말 파티를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교수님들이고 신부님도 계셨는데요. 이들이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파티에 초대했습니다. 한창 파티가 무르익었을 때 갑자기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거예요. 대학도서관장님이 애국가를 트시고 경례를 하더라고요.


또 한 번은 작은 동네 알베르게에 가니 현관에 큰 세계지도가 걸려있어요. 그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로 되어있더라고요. 그래서 주인에게 설명하고 여기는 동해 즉 ‘Este de Mare’라고 써야 한다고 설명했는데요. 흔쾌히 고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볼펜으로 써넣는데 주인이 큰 매직펜을 가져와서 굵게 쓰라는 했어요. 그리고 제가 고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줬어요.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져 가능했다고 봐요. 이제 코리아 모르는 사람은 세계에 아무도 없어요. 웬만한 가게나 식당에 가면 한국말 한두 마디 하는 사람들 아주 많아요. 아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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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울려퍼진 동해물과 백두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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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해가 아니고 동해입니다.

-걷는 내내 현지 언론의 조명이 쏟아졌어요.


“정말 놀랐어요. 신문 하나 정도가 우연히 보도했겠지 이렇게 생각했어요. 갈수록 관심이 커지더니 까미노 중간쯤 지날 때는 소문이 쫘악 퍼졌더라고요. 어떤 TV는 저녁 황금시간대에 저를 17분이나 방영을 했어요. 다른 주제는 한 3~4분 정도인데 저는 맨 나중 꼭지였어요. 원래 중요한 것은 나중에 나오잖아요. 뉴스 초기에 간단히 소개하고요. 신문은 제가 확인한 것만 일곱 군데입니다. 산티아고 데 까미노라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어요. 회원이 5만 명 정도 되는데 거기에 제가 한 번도 아니도 여러 번 올랐어요.


호택이는 다른 동물과 달리 순례자들에게 발행하는 〈순례자여권〉 즉 ‘크레덴셜’을 가지고 있어요. 정식 순례자인 거죠. 이 여권을 받는데 담당자가 근무한 지 3년 만에 동물에게 발급하는 건 처음이라더군요. 이 수도원의 담당 수녀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고 어딜 가셨는데 호택이 얘기를 듣고 하던 일을 중지하고 달려왔어요. 호택이랑 사진 찍고 싶다고요. 당나귀와 동양인의 오묘한 조합이 이들에게는 신기했나 봐요. 제가 산티아고에 입성하는 날이 일요일이었어요. 여기 메이저 신문이 〈갈리시아신문〉인데 일요판은 없어요. 토요일자에 우리가 토픽으로 나갔는데도 사람들이 다 알아봤어요. 신문을 들고 와서 선물로 준 사람도 있어요. 언론 덕분인지 어떤 알베르게 주인은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우리를 ‘체포’해 가기도 했어요. 재워주고 먹여주고 당나귀 영양제 사다가 먹이고 이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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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더 못겠다고 버티는 호택이 .

-나라별로 여행 패턴의 차이가 있나요.


“유럽 사람들은 천천히 걷어요.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빨리 걸어요. 유럽인은 보통 하루 20킬로 정도 걸어요. 한국인은 평균 28킬로 정도로 걸어서 34일 만에 완주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마을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요. 먼 나라에서 온 분들은 대부분 그래요. 콜롬비아 브라질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오신 분들은 시간이 많지 않고 다시 오기가 힘들잖아요. 완주를 목표로 하다 보니 바쁘게 걷는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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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뚝절뚝. 가장 힘들었던 구간.

-한국이 세계인들에게 매력적인 관광 국가가 되려면 뭘 세일즈해야 할까요.


“이건 굉장히 전문적인 분야인데요. 타인에게 눈길을 끌려면 스스로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가장 한국적인 것을 잘 가꾸고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행객들은 누구나 자기네 나라에서 볼 수 없는 것에 환호하거든요. 유럽처럼 쉽게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저렴한 숙소가 부족해요. 펜션은 홀로 여행자에게 크고 비싸잖아요. 이런 점들이 개선되면 외국 여행자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여행을 즐길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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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택아 더 갈까. 그만 갈까.

-까미노를 완주한 기분은.


“여행에는 두 가지의 스타일이 있다고 봐요. 점과 선의 여행인데요. 점의 여행은 명소 중심으로 찍어가는 여행입니다. 선의 여행은 과정을 중요시하는데 저는 이걸 좋아해요. 그래서 완주라는 데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사람들과 접촉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까미노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짜 감동이었거든요. 까미노는 누구나에게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완주라는 개념은 사실 없어요. 출발지가 다 다르니까요. 그런데 종착지는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이죠. 여기를 가려고 만든 길이니까요. 까미노의 시작은 바로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입니다. 유럽인들 중에서는 집에서부터 걸어오는 사람들도 아주 많아요. 완주라는 개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쓰는 개념이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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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추우면 말없이 꼭 끌어안고 체온 나누기.

-여행 뒤 호택이는 어떻게 됐나요.


“당나귀 순례증명서(크레덴셜)을 주인에게 선물로 주고 싶었는데 그걸 못했어요. 당일 가장 중요한 산티아고 성당에서의 스탬프를 찍지 못했거든요. 우편으로 보낼 생각입니다. 지금 호택이는 고향 마을에서 영웅이 됐대요. 814km 까미노 완주를 한 자가 그 마을에서 동물과 사람 통틀어서 하나랍니다. 동상을 세우자고 하는 분도 있다고 해요. 동상을 세우면 제 이름도 들어가겠죠? 하하하. 그러니 까미노는 스페인의 정신이라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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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우리가 해낸 거 맞지요? 그래 그래 호택아 우리가 해냈어.

-도전할 게 남았나요.


“내년에 〈아시안하이웨이 1번 도로〉를 따라 유라시아를 횡단할 거예요. 코로나 상황이 변수이지만 6개월 정도 걸릴 겁니다. 우리나라는 분단 때문에 섬나라와 다를 바 없어요. 그래서 ‘아시안 하이웨이1번도로’가 아주 중요해요. 부산에서 출발해서 중국과 동남아 그리고 인도와 이란을 거쳐 터키의 이스탄불에 도착하는 길이에요. 총 13개국입니다. 여기에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세계 경제의 절반이 걸려있어요. 앞으로 더 성장하겠지요. 도로는 이스탄불이 끝이 아니고 포르투갈의 호카곶까지 연결돼요. 저는 이 길을 〈미래의 실크로드〉라고 불러요. 길을 따라가다가 북쪽으로 올라간 뒤 노르웨이를 거쳐 러시아 동유럽 그리고 중앙아시아를 통해 시베리아 쪽으로 귀국할 거예요. 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왜 남북 간의 길이 열려야 하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한국은 섬나라가 아닌 기상 넘치는 대륙 국가임을 알리고 싶어요. 자동차 2대로 팀을 만들 거예요.


-왜 세상을 주유하나요.


”제 전화번호 뒷자리가 5060이에요. 30대 초반에 미래의 꿈을 꾸면서 50대와 60대는 내가 하고 싶은 꿈에 도전하겠다고 했죠. 그 도전이 바로 여행작가였어요. 예전에는 인생이 60살이면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은퇴하고도 그만큼의 시간이 있어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인생 후반전이 남아있는 거지요. 축구경기를 보면 결정골이나 역전 골이 후반전에 주로 나와요. 그런데 후반전에 이런 일을 하려면 전반전의 경험이 무척 중요해요. 그 경험이 실패든 성공이든 간에요. 그러니까 인생 전반에 실패했다고 낙담할 수는 없지요. 굉장히 중요한 경험은 실패에서 오거든요.


후반전에는 반드시 기억할 게 있어요. 돈벌이도 좋지만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무엇을 간절히 원하는지를 스스로 물어봐야지요. 이런 걸 꿈이라고 하잖아요. 이걸 끄집어내야지요. 남들이 좋을 것 같다는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거죠. 저는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걸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제 경험을 나눌 때 너무 즐거워요. 그런데 이렇게 살면 돈이 따라오더군요. 하고 싶은 꿈을 이루면서 돈까지 생기니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요. 책상 앞에서 생각만 하면 시간 낭비예요. 하고 싶고 관심 있는 일은 그냥 시작하면 돼요. 하다 보면 도중에 다 터득됩니다. 지금 문을 열고 나가세요. 빨리요.“

중앙일보

천사는 호택이 눈 안에 있었다.

안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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