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빚 시달렸지만 금실 좋았다" 막내만 남겨진 일가족 참변
지난 20일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가족은 평소 화목했다는 주변인들의 증언이 나왔다. 경찰은 일단 외부 침입 흔적이 발견되진 않았지만, 타살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21일 경기 의정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전 11시30분쯤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 8층 집의 딸 아이 방에서 A씨(50)와 아내 B씨(46), 고등학교 2학년 딸 C양 등 일가족 3명이 숨져 있는 현장을 중학생 아들 D군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3명 모두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었고, B씨와 C양은 침대 위에, A씨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방 안에는 혈흔과 흉기가 있었고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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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발견한 아들은 자신의 방에서 늦은 새벽까지 학교 과제를 하다 잠들었고, 일어나 보니 가족들이 숨져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싸운 흔적이나 외부침입 흔적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정밀 감식을 통해 사건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웃 “부부가 다투는 모습 본 적 없어”
경찰과 가족 및 주변인 진술에 따르면 A씨 가정은 평소 화목했다고 한다. 이웃집에서도 이들이 다투는 모습을 보거나 싸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금실이 좋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A씨 가족은 최근 사업 실패로 억대의 부채를 지는 바람에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A씨는 7년 전부터 인근 포천시에 목공예점을 차려 혼자 운영했으나 운영난으로 최근엔 점포 운영을 접은 상태다. A씨는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지만, 나이가 많다는 등의 이유로 구직에 실패한 상태였다. 그러자 아내가 일자리를 구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A씨 부부의 모습은 아파트 폐쇄회로TV(CCTV)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A씨는 아침 출근 시간과 저녁 퇴근 시간마다 부인을 차량으로 데려다 주는 모습이 녹화돼 있다. 비가 내린 사건 전날에도 차량을 이용해 아내의 출퇴근을 도와주는 모습이 기록돼 있다.
이 가족에게 억대의 빚은 절망적인 고통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지인들에 따르면 최근엔 가족이 모여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빚을 갚는 방법도 논의했다. 최근 가족들 간에 이런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평소 다정했던 아버지와 딸이 서로 껴안고 눈물을 훔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D군의 경찰 진술에 따르면 사건 전날 밤에도 숨진 채 발견된 가족 3명은 빚 문제를 얘기하다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경찰이 A씨 가족을 조사한 결과, A씨는 부모가 죽으면 자식에게 빚이 승계되는 점을 가족과의 대화 과정에서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아들을 남겨두고 일가족이 목숨을 끊은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보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유족들은 집안의 장남인 A씨가 집안의 대가 끊기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아들은 남겼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경찰, 남은 아들 정신적 치료 돕기로
한편 경찰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아들에 대한 정신적 치료와 경제적 지원 방안 등을 강구키로 했다. 경찰은 부검 결과와 아파트 CCTV 분석 등을 통해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다. 부채 규모 등도 살펴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부부가 흉기를 들고 싸웠다거나, 아들이 의심스럽다거나 하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퍼지고 있어 남겨진 중학생 아들이 큰 정신적 충격에 휩싸일지 염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정부=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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