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정은 중대결정 때 친형 김정철과 협의
정보 관계자 “김여정 포함 3남매
남북·북미 협상 등 수시로 논의
권력 소외설 김정철 포용 노력”
믿을 건 핏줄뿐이라는 의식 작용
김정은, 김정철, 김여정(왼쪽부터). |
2011년 12월 김정일의 사망으로 동생인 김정은이 후계 지도자로 공식 취임한 이후 김정철의 현황에 대해선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국가정보원은 박근혜 정부 때였던 2016년 10월 국회 정보위에서 “김정철이 동생인 김 위원장에게 ‘제 구실도 못하는 나를 한 품에 안아 보살펴주는 크나큰 사랑에 보답하겠다’는 충성 서약을 보냈다”며 “김정철은 권력에서 철저히 소외된 채 감시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보 관계자들의 전언으로 볼 때 북한이 비핵화 협상으로 나오면서 남북 간에 유달리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한 배경에는 3남매의 공감대가 있었을 공산이 크다. 북·미 협상의 중대 고비마다 모든 결정은 김정은 위원장의 몫이 틀림없지만, 이 같은 결단의 과정에서 김 위원장이 믿고 대화할 수 있는 건 형제이자 백두혈통인 김여정과 김정철뿐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올해 들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여동생 김여정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은 여러 차례 드러났지만, 김 위원장의 친형 김정철도 남북, 북·미 문제에서 김 위원장의 대화 상대가 돼 비록 핵심적이지는 않지만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언급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이에 따라 여동생 김여정이 김 위원장의 의전을 챙기며 주요 사안을 파악해 보고하는 ‘비서실장’ 역할을 하고 있다면 세 살 위의 친형 김정철은 김 위원장이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의견을 구하는 숨은 자문 역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정철, 김정은과 편하게 대화 나누며 숨은 자문 역할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이 김정철과 김여정을 만나는 자리에는 그간 김 위원장의 대미 전령사로 나섰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도 배석할 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단, 이들은 “김여정과 달리 김정철은 지도자인 김 위원장을 철저히 의식해 극도로 조심하며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지난 5월 펴낸 책 『태영호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에 따르면 2015년 김정철이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의 런던 공연을 보러 갈 때 김 위원장은 ‘수령의 신변 안전과 관련되는 특별사항’이라는 암호전문을 통해 공연장에서 가장 좋은 좌석을 예매하고 김정철을 전담 안내할 요원을 정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1호 통역(김정은 통역)’을 담당하는 김주성 노동당 국제부 8과 부원의 추천을 통해 태 공사가 그 역할을 맡았다. 김 위원장이 친형의 영국 방문을 극진히 챙겼음을 보여준다. 김정철은 2011년에는 싱가포르에서 김여정과 함께 에릭 클랩턴의 공연장을 함께 찾은 모습이 한국 언론에 포착된 바 있다. 김 위원장과 김정철은 스위스 베른에서 학교를 다닐 당시에도 서로 팀을 나눠 수시로 농구 시합을 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이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김 위원장이 집권한 뒤 항간에선 김정철이 사실상의 구금 상태란 이야기도 돌았다. “개인 악단 활동만 하며 생존을 보장받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2016년 이병호 당시 국정원장은 “김정철이 권력에서 소외된 채 감시 속에 생활하고 있으며, 술에 취해 술병을 깨고 행패를 부리는 등 정신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철을 놓고 2006년 일본의 한 매체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부부장으로 일했던 적이 있다고 보도했지만 태 전 공사에 따르면 김정철은 아무런 호칭이 없었다. 정치적 역할은 없었다는 언급이다. 고위 당국자는 “현재 지근거리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김여정과, 전면에 나섰다가는 견제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김정철 간에는 (김 위원장에 대한) 영향력 면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을 함께 한 3남매의 결속력이 현재 북한의 대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측면을 가볍게 볼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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