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죽었다, 헌데 경찰이 수사하지 않는다
-영화 내용을 밀드레드의 입장에서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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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낡아서 곧 쓰러질 것 같은 광고판 3개를 비추며 시작합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누가 볼 것 같지도 않은 이 광고판을 1년 치 계약하는 한 여자가 있죠. 바로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먼드 분) 입니다. 3개의 광고판엔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내 딸이 죽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된 건가? 월러비 서장”
예측할 수 없는 전개
이 밖에도 영화는 우리가 익히 아는 영화의 흐름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피해자가 당한 사건보다 피해자의 가족(밀드레드)이 현재 겪는 이야기가 중심에 있으며 이야기의 흐름도 사건을 파헤치기보다는 밀드레드의 분노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따라 전개됩니다.
분노는 더 큰 분노를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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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런 스토리의 영화를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합니다. 예를 들자면 ① 딸이 누군가에 의해 유린당하고 ②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아주 간소하게 법의 심판을 받게 되면서 ③ 이에 분노한 부모가 직접 가해자들을 처벌한다는. 이전에 개봉했던 '돈 크라이 마미(2012)'나 '공정사회(2013)', '방황하는 칼날(2014)' 등이 바로 그런 영화들입니다.
이런 영화들과 '쓰리 빌보드'가 다른 점이라면 바로 ③ 부모가 가해자들을 직접 처벌한다는 부분인데요. 물론 밀드레드도 가해자가 누군지 알았다면 직접 응징했음은 불 보듯 뻔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가해자를 끝까지 모르게 하기 때문에 그녀가 가진 분노의 칼끝은 가해자를 찾아내지 못한 경찰과 주변 인물들에게 닿아 있죠.
이를 통해 '분노는 더 큰 분노를 야기한다'는 점을 영화 전체를 통해 보여줍니다.
감정의 양극단을 보여준 프란시스 맥도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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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내 분노를 내뿜는 밀드레드가 유일하게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 두 장면이 있었는데요. 월러비가 밀드레드를 신문하는 도중 피를 토하는 장면과 광고판 근처에서 사슴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시종일관 불량한 태도를 보이던 밀드레드가 월러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는 장면과 죽은 딸과 동일시되는 사슴을 보며 처연하게 독백하는 장면을 보면 밀드레드가 처음부터 마음속에 분노가 차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죠. 사람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도요.
이렇게 감정의 양극단을 넘나들며 치열한 연기를 보여준 밀드레드 역의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지난 3월에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더 포스트'의 메릴 스트립, '셰이프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샐리 호킨스 등을 제치고 여우 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수상 소감도 매우 인상적이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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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후보에 오른 모든 여성분이 저와 함께 일어나준다면 영광일 거예요. (중략)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남길 두 단어가 있어요. Inclusion Rider(포함 조항)"
'포함 조항'은 주연급 배우가 출연 계약 시 제작진이나 상대 배우에 유색 인종, 여성, 성 소수자, 장애인 등 다양한 인물을 포함할 것을 요구할 권리를 의미합니다. 하비 웨인스타인을 비롯한 성폭력과 성차별로 얼룩진 할리우드에 많은 영화인이 모인 자리에서 용기 있는 두 단어를 내뱉은 그녀가 어쩐지 영화 속 밀드레드와 닮았다고 생각한 건 저뿐만이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요. 실제로 그녀의 수상 소감 이후 브리 라슨, 맷 데이먼 등 많은 영화인이 동참했다고 하니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죠.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습니다. 결말도 많은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확실히 끝나지 않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데요. 기존에 같은 스토리로 제작된 영화들과 비교하면 시나리오가 참신하고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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