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지 않은 아이인데 괜찮아요? 위로의 말들이 더 아프다
더,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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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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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준비를 했다. 보온병, 젖병, 분유, 손수건, 물티슈, 기저귀, 장난감 하나, 책 한 권…. 분홍색 옷을 꺼내 입히고 모자도 씌웠다. 거리의 꽃처럼 환하고 사랑스러웠다. 가끔은 외출 준비를 하다가 지쳐버리기도 한다. 그런 날은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간절히 자유를 그리워한다.
돌아보니 같은 패턴이었다. 아기는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내게 자유가 없어진 게 못내 갑갑하고 힘들었다. 두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하는 군인처럼 아기와 함께 외출하는 게 버겁기만 했다. 20대에 첫째를, 30대에 둘째를 키우면서 난 늘 갈구했다. 자유를….
40대에 다시 아기를 키우며 자유와 함께 가장 절실한 것이 체력이다. 그래서 외출할 땐 되도록 가족들과 함께 나가려고 한다. 큰애가 은지를 번쩍 안아주면, 작은애가 옆에 따라가며 닦아주고, 챙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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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 엄마’에 쏟아지는 야릇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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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목이 신경 쓰였다. 180㎝가 넘는 아들, 한창 꾸미기 좋아하는 딸이 은지를 데리고 외출하면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고 수군거린다. 사고 쳐서 일찍 아기를 낳은 학생들인 줄 안다.
“엄마, 사람들이 우릴 자꾸 이상하게 쳐다봐요.”
아들은 실소를 지으면서도 영 불편해했다. 어떤 사람은 대놓고 무슨 사이냐고 묻기도 하고, 은지랑 두 아이를 번갈아 보며 수군거리기도 한다고. 기분 좋게 나가서 찜찜한 얼굴로 돌아온 날은 연신 헛웃음만 지었다.
그러게 왜 그런다니, 사람들은 남 말하길 좋아하지. 그냥 넘겨, 그러려니 하고…. 정작 아이들을 달래면서도 내가 매번 아프게 듣는 말이 있다. 혹자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묻는다. 네가 낳지 않았는데 괜찮냐고. 어떻게 남의 아기를 키우냐고…. 자주 듣는 말이지만 매번 아프다. 그래, 내가 낳지 않았지. 그제야 나의 신분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난 엄마라는 이름 앞에 ‘위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위탁 엄마’가 정확한 명칭이다.
위탁 엄마는 법적인 보호자 역할도 할 수가 없다. 심지어 아이 통장도 개설해 주지 못한다. 주민등록등본에도 은지는 ‘동거인’으로 기록돼 있다. 난 분명 엄만데, 은지는 분명 내 아인데…. 병원에서나 은행에서나, 앞으로 우리 은지가 크면서 보호자가 필요할 때 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아니겠지, 그럼 왜 사람들이 계모나 보모쯤으로 보는 걸까? 설마…. 그럼 그 이상야릇한 눈빛은 뭐지? 내 행동에 문제가 있나? 두 아이를 키울 때보다 은지를 더 예뻐하는데….
첫째는 학원도 보내지 않고 키웠다. 중학교 땐 집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홈스쿨링을 했다. 만약 우리 은지를 그렇게 키운다면 또 어떤 이목들이 따라올까. 어느새 덧입혀진 편견들이 몸 구석구석 딱지처럼 달라붙어 가려웠다.
자주 모임에서 만나는 위탁 엄마들도 하나같이 같은 말을 한다. 위탁가족이지만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진짜 가족’이 되었다고. 서로 헤어진다는 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라고. 처음엔 한 가정을 도와줄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내 자식이 되었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가식이 아닐까 하겠지만 내가 살아보니 정말 그렇다. 마치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서로의 삶을 위탁하는 것과 많이 닮았다. 이 또한 은지 엄마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이것이 하늘의 법칙이라는 걸. 결혼한 사람은 알 거다.
결혼은 타인을 사랑하고, 서로의 삶을 위탁하고, 책임지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일상이야 거기서 거기처럼 보이겠지만 그 일상이 햇수를 더해 갈수록 서로 다듬어지고, 공유하는 부분이 많아지고, 어느새 닮아간다는 걸.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힘들지만, 더 없는 축복이다. 사랑할 대상이 있다는 건 살아갈 이유가 되는 거니까. 나는 은지 덕분에 진짜 엄마가 되어가는 것 같다. 더 많은 사람이 이런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 사랑하고, 위탁하고, 서로 닮아 가는….
■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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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서로 위탁하는 건 하늘의 법칙
시인의 말처럼 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이 그냥 한 사람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눈으로 본다면 나는 어마어마한 우주를 만났다. 우린 하늘의 법칙에 따라 서로의 삶을 위탁했으니까.
꽃길을 한참 걸었다. 은지는 까무룩 잠이 들었고, 햇살은 여전히 쏟아졌다. 머지않아 자유가 오겠지. 그럼 난 또 지금을 그리워하겠지. 그래 이 시간을 충분히 누리자. 집으로 돌아오며 유모차를 더 힘껏 밀었다. 자유로운 바람을 맞으며.
배은희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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