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산이라 얕보지 마라, 낭만 따라 걷는 600년 수도 성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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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순성길① 남산·낙산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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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길, 한양도성길…. 이름도 다채롭다. 정확한 이름은 ‘한양도성 순성길’이다. 조선 시대 수도 ‘한성’을 지키기 위해 쌓은 성곽을 따라 걷는 18.6㎞ 길이의 길이다. 예부터 ‘순성(巡城) 놀이’란 게 있었다. 말 그대로 성곽을 따라 걷는 놀이다. 순성 놀이는 지금 즐겨도 좋다. 도심과 산을 넘나들며 ‘메가시티’ 서울의 매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다. 이미 서울의 대표 명소가 됐지만, 가을 산책 코스로 이만한 길도 없다. 초보자라면 먼저 남산 구간과 낙산 구간을 걷자. 6개 구간 중 난도가 낮은 두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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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표 야경 명소 - 낙산
난이도 하(下), 2.1㎞,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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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126m)은 산이라 부르기 민망하다. 그러나 낮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우거진 숲은 없어도 호젓한 분위기를 느끼며 산책하기 좋다. 성곽 주변 마을을 구경할 수 있고, 일출·일몰도 근사하다. 서울관광재단이 서울을 대표하는 야경 명소로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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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선 동대문역을 나오니 흥인지문(동대문)을 구경하고 북쪽 낙산공원 방향으로 걸었다. 길 초입, 한자가 새겨진 성돌이 눈에 띄었다. 돌을 쌓은 사람의 이름이었다. 한양도성에는 이처럼 사람 이름과 출신 지역을 새긴 ‘각자성석(刻字城石)’이 280개에 달한다. 1396년부터 팔도에서 백성 12만 명을 동원해 성을 쌓았다. 성이 훼손되면 돌에 새겨진 담당자를 불러 보수하도록 했단다. ‘공사 실명제’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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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은 성 안팎을 넘나드는 재미가 있다. 성안은 대학로로 이어지는 충신동과 이화동이고, 성 바깥은 창신동이다. 창신동은 사연 많은 동네다. 한국전쟁 피난민이 성곽 주변에서 판자촌을 이루고 살았다. 1975년 무허가 판잣집을 철거하면서 성곽 복원 작업이 시작됐다. 창신동에는 여전히 피난민이 많이 산다. 60세 이상 노인이 많이 사는 ‘장수마을’의 허름한 가옥이 그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이화마을에는 재미난 벽화와 아기자기한 카페가 많아 골목 여행을 즐기는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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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은 어스름한 시간이 되면 매력을 발산한다. 낙산공원에서 보는 일몰도 근사하고, 오후 6시 성벽을 비추는 조명이 들어오고 가가호호 불이 켜지면 낭만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인근에 한성대, 가톨릭대와 젊음의 거리인 대학로가 있어서일까. 대낮에는 트레이닝복 입고 빠르게 걷는 주민이 대부분이었는데 해가 지니 팔짱 낀 연인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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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깊은 숲 - 남산
난이도 중(中), 4.2㎞,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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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270m)은 서울의 랜드마크다. 파리지엥이 에펠탑에 별 관심이 없듯이 서울 시민 대부분이 남산을 안 찾는다. 그래서 잘 모른다. 남산에 성곽이 있다는 걸, 성곽을 따라 걸으면 비밀스러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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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구간은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시작하는 걸 추천한다. 숭례문 쪽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는 것보다 경사가 완만하다. 장충체육관, 신라면세점 뒤로 길이 나 있다. 높이 5m가 족히 넘는 성곽 바로 옆에 데크 로드가 깔려 있어 걷기 편하다. 2012년부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면서 대대적으로 길을 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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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호텔과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을 지나 국립극장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찻길 옆 인도를 걷다 산속으로 들어섰다. 나무 계단 650개로 이뤄진 제법 가파른 길이 이어졌다. 조선 태조 때 축조했다는 낡은 성벽과 붉은 단풍이 어우러졌다. 남산에 이렇게 깊은 숲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김도경(61) 서울문화관광해설사는 “성곽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길을 꼭 걸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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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 만에 N서울타워가 있는 정상부에 닿았다. 외국인 관광객이 사라진 전망대에는 젊은 연인과 정장 차림 직장인이 많았다. 코로나가 바꾼 풍경이다. 팔각정을 지나 숭례문 방향으로 내려갔다. 갑자기 성곽이 끊기고 발굴 작업이 한창인 넓은 공터가 나왔다. 일제의 조선 신궁 터다. 일제 강점기 신궁 면적은 무려 43만㎡에 달했다고 한다. 일제는 패전 이튿날인 1945년 8월 16일 신궁을 철거한 뒤 전소했다. 백범광장을 지나 밀레니엄 힐튼 호텔 앞까지 새로 세운 깨끗한 성벽이 서 있었고, 길섶엔 수크령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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