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작은 건물을 고친다, 도시가 살만해졌다
일본 건축가 아오야마 슈헤이의 도전
베이징 뒷골목에서 14년째 작업
“잠자고 먹는 곳만 집이 아니다”
카페·서점·식당도 21세기의 집
옛 공간 지키며 현대적 요소 입혀
작은 언덕 많은 서울 풍경 매력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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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도시 젊은이들에게 잠자고 먹고 사는 공간은 있지만 ‘집’은 없는 것 같아요. 가족과 함께 생활하거나 이웃과 친하게 지내는 경우도 줄었고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이런 도시에 ‘집’과 같은 공간을 차곡차곡 늘려가는 겁니다.”
슈헤이의 말이다. 그는 “지금 사회 전체가 바뀌고 있는데, 이 상황을 예전으로 돌릴 순 없다”며 “주목할 것은 도시가 과거의 것을 대체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고민하는 개념이 바로 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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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헤이는 지난 9월 서울디자인재단(대표 최경란)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연 서울디자인클라우드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베이징에서 크고 화려한 건축물을 설계해서가 아니다. 그 반대다. 그의 작업은 오래된 건물, 그리고 작은 건축에 집중한다. 서울디자인클라우드에서 한 강연의 주제도 ‘작은 공간, 큰 도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다’였다. 일본 건축가인 그는 왜 베이징에서 작업하며, 굳이 밀도 높은 지역의 허름한 옛집을 개조하는 작업에 집중하는 것일까. 강연 이후 짧은 만남을 가졌던 그에게 이메일 인터뷰를 요청해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Q : 도시 사람들에게 ‘집’이 없다고 했다.
A : “원룸이든, 다른 곳이든 누구에게든 거주하는 공간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집’은 그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어릴 때 집에 대한 내 기억을 되짚어 보면 그것은 우리 집 대문 안 공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연환경에서부터 이웃집, 그리고 정서적인 요소까지 포함한다. 그런 ‘집’은 내가 먹고 자는 공간만으론 해결이 안 된다.”
Q : 그렇다면 ‘집’은 어떻게 가능할까.
A : “상업시설이어도 두 번째 집이 될 수 있다. 동네 공원이 내 마당이 되고, 나무 아래가 내 거실이 되게 하면 된다. 서점은 내 서재가 될 수 있고, 가까운 식당이 내 주방이 될 수 있다. 도시에 있는 다양한 공적 공간이 과거 ‘집’이 했던 역할을 대체하는 것이다. 나는 설계를 하며 요즘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은 하우스(house)가 아니라 홈(home), 집이라는 점을 특히 염두에 둔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시는 개인의 방을 최소 크기로 하되, 외부에 다채로운 공유 공간을 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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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리모델링 작업에 애정을 갖는 이유는.
A : “옛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에서 일하는 게 즐겁고 가치도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후통엔 흥미로운 점이 많다. 자연과 건축, 사람들의 생활과 건축이 일체가 된 요소도 많다. 개인 공간과 공적 공간이 자연스럽게 겹치는 것도 매력적이다. 마을 사람들이 밖에 모여 장기를 두고, 심지어 밥도 바깥에서 먹는다(웃음). 이런 요소가 대도시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이 되지 않을까.”
Q : 리노베이션의 어려움은.
A : “후통은 밀집도가 굉장히 높다. 그리고 여기선 최소한 네 가지 문제를 풀어야 한다. 첫째는 면적이 극도로 작다는 것이고, 둘째는 화장실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과거엔 마을 공용 화장실을 썼다). 셋째, 채광과 통풍도 살려야 하고, 마지막으로 난방 시설도 넣어야 한다. 옛 건축을 그대로 보존하면 생활이 불편해 ‘죽은 건물’이 된다.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따라서 적절하게 개조하는 게 건축과 도시를 살리는 일이다.”
Q : 일본 건축가로서 느끼는 부담은.
A : “다른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게 나의 강점이다. 건축주들도 그 새로운 시각을 기대한다.”
Q : 베이징에서 계속 일하는 이유는.
A : "도쿄대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2005년 베이징에 왔다.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설레던 분위기, 중국 현대 건축의 새로운 움직임에 이끌렸다. 처음엔 일본인 건축가가 운영하던 소규모 스튜디오에서 인턴으로 시작해 7년간 그곳에서 일한 뒤 독립했다.” 그는 "지금 베이징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 전체가 굉장히 젊다는 것”이라며 "30~40대 건축주가 많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매우 강하다”고 말했다.
Q :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A : "도시에 새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시행하는, 과거의 수직적인 도시계획 방식에는 관심 없다. 우리 사회에 잠재된 새로운 가능성과 더불어 작은 건축이 큰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동안 서울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는 그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서울 곳곳에 작은 언덕이 많은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언덕의 골목과 집들도 새로운 시각으로 보면 도시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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