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짜파구리·종북개그…칸영화제서 빵빵 터진 비결
칸 영문자막 만든 미국인 달시 파켓
90년대부터 한국영화 남다른 사랑
봉준호 감독과 데뷔작 때부터 인연
지금껏 한국영화 150편 번역·감수
독립영화에 주는 들꽃영화상도 운영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전화 너머로 들려온 그의 한국말은 조금 느리지만 유창했다. 1997년 처음 한국에 와서 99년 한국영화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영문 웹사이트(Koreanfilm.org)를 만든 그의 이름은 이미 충무로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영화잡지 ‘스크린인터내셔널’ 한국 특파원을 거쳐 지금은 평론가이자, 번역가이자,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으로 활약 중이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Q : 지난 2월부터 ‘기생충’ 자막작업을 했다고.
A :
“영화를 보자마자 굉장히 유니크했다. 굉장한 상상력과 에너지를 가졌는데 감독님이 미학적으로 잘 컨트롤했더라. 지난 3개월간 누구와도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 외로웠다. 자막은 제가 초고를 만들고 봉 감독님과 대사 한 줄, 한 줄 매만지며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 나갔다.”Q : ‘서울대 문서위조학과’ 운운하는 농담조 대사는 서울대 대신 옥스퍼드로 번역했다. 이렇게 외국 관객의 이해를 도운 표현이 눈에 띄더라.
A :
“‘짜파구리’(짜파게티와 너구리 라면을 섞어 끓인 것)는 라면과 우동을 합친 ‘람동(ramdon)’이라 번역했다. 연출 리듬도 신경 썼다. 한국어와 영어는 문장구조가 다르지만, 영문 자막도 한국어 대사와 같은 포인트에서 웃을 수 있도록 최대한 타이밍을 맞췄다.”Q : 봉준호 감독이 한국적 정서의 반지하를 뜻하는 영어 단어를 찾지 못해 힘들었다고 하던데.
A :
“자막엔 ‘세미베이스먼트(semi basement)’라 나갔다. 잘 쓰는 영어는 아니다. 외국에도 반지하 형태는 있지만 한국만큼 사람들이 많이 살진 않기 때문이다. 튀는 단어인데, 그래서 오히려 이게 뭐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Q : 등장인물들이 존댓말을 하다 갑자기 반말로 툭툭 놓는 장면이 미묘한 긴장감을 준다. 이런 한국말 느낌은 어떻게 전달했나.
A :
“한국말의 그런 부분은 항상 어렵다. 백 퍼센트 전달할 순 없지만, 호칭으로 어느 정도 표현했다. 상대방을 ‘마담’으로 불렀다가 갑자기 성 떼고 이름으로만 부른다든가.”Q : 봉 감독이 가장 신경 썼던 번역은.
A :
“아무래도 북한 말투로 조크하는 장면이다. 직접적으로 번역하면 외국 관객이 이해하지 못할 듯해 걱정했다. 한국말론 ‘종북 개그의 달인’이란 대사를 ‘Nobody can imitate North Korea news anchors like you’라고 조금 설명적으로 바꿨는데 감독님이 칭찬하셔서 보람 있었다.”이는 등장인물이 북한 아나운서 말투로 극 중 상황을 풍자한 장면. 이런 자막의 부연 설명에도 불구하고 칸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선 현재 남북정세의 반영이냐는 미국 기자의 질문이 나왔다. 이에 봉준호 감독은 “심각한 정치적 메시지라기보단 영화적 농담이다. 한국에선 익숙한 유머”라고 설명했다. 달시 파켓은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에 대한 비하‧비판을 떠나 북한 뉴스 앵커 말투로 노는 장면이다. 재밌지만 매우 미묘했다”며 외국 관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번역을 하며 이번 영화를 7번 봤다는 그는 “아버지(송강호)와 아들(최우식) 관계의 디테일이 볼 때마다 새롭게 보이더라”면서 “확실히 봉 감독님 영화는 볼수록 재밌다”고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Q : 역시 칸영화제에 초청됐던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나홍진 감독의 ‘곡성’ 등 150여 편 한국영화의 자막번역‧감수를 맡아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A :
“가장 어려웠던 영화가 ‘곡성’이다. 원래 대사가 너무 멋진데 엄청 노력했지만 그만큼 영어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배우 천우희씨 캐릭터(의문의 여성 ‘무명’) 대사가 특이했는데 영어 자막도 약간 이상하면서 특별한 느낌을 주려했다. 성공했는지 모르겠다(웃음).”Q : 20년 전 한국영화를 처음 알게 됐을 때와 지금의 한국영화를 비교하면.
A :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한국영화는 어떤 강렬한 에너지가 해외 관객을 더 궁금하게 만드는 것 같다. 미국 영화와는 확실히 다르다. 한국영화도 20년간 많이 바뀌어서 매 영화가 주는 놀라움은 예전에 비해 줄었지만 한국영화 자체가 이젠 메인스트림으로 간 것 같아 기분이 좋다.”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