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식 순두부찌개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군인시절 숙소 당번병이 되어 요리하는 법을 배웠다 그 시절 위문 온 미스코리아 한 명과 악수하는 행운을 누렸다. [사진 민국홍] |
순두부찌개는 내가 그 매력에 처음으로 푹 빠진 음식으로, 삼식이 세프가 되는 첫 단초를 제공했다. 군 복무 시절 졸지에 모시던 상관인 장군의 숙소당번병이 돼 처음 배운 음식이기도 하다.
때는 37년 전 군에서 아직 병장을 달지 못하고 상병이던 1981년 12월 초로 돌아간다. 전군에 육군참모총장 지침이 하달됐다. 군 지휘관의 숙소당번병을 1년 이상 한 사병은 기강이 해이해질 우려가 있으므로 부대로 복귀시켜 훈련을 받게 하라는 지침이었다.
숙소당번병이란 장군의 숙소에 거주하면서 밥, 청소, 빨래 등을 담당하는 가사병이다. 그 불똥이 엉뚱하게 나에게 튀었다. 당시 나는 3군 사령부 정보참모의 전화당번병이었다. 전화당번명은 그야말로 장군과 부하 장교와의 결재 과정에서 연락을 맡거나 외부와 전화를 연결하고 차 심부름 등 비서 일을 하는 사병이다.
군 지휘관 숙소당번병 발령받아 배우게 된 순두부찌개 끊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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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의 지시로 나는 새로운 임무로 맡은 숙소당번병이 돼 음식 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1주일의 업무 인수인계 기간 중 밥 짓는 것을 시작으로 된장, 김치, 순두부찌개를 끓이는 법을 배웠다. 시금칫국과 콩나물국 만드는 법을 전수받았고 몇 가지 반찬 요리법도 배웠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한 밥돌이 일과지만 순두부 요리법을 배울 때는 강력한 인상을 받았다. 조리법대로 만들어 시식한 순두부 맛이 상상 이상이었다.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뺨칠 정도로 제법이었다. 혀를 휘감는 육수의 맛과 순두부의 고소함, 그리고 바지락의 쫍조롬한 바다 맛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내지 않는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속으로 “어쭈, 이것 봐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맛이 그대로 뇌리에 깊이 박혔다.
그때 배운 레시피에 따르면 우선 냉동실에 얼려놓은 쇠고기를 칼로 대패질해 슬라이스 된 쇠고기 한 움큼을 뚝배기에 넣고 마늘과 고추를 섞은 다음 반 큰 술 분량의 참기름을 입혀 볶는다. 그리고 그 위에 바지락을 얹고 순두부를 넣은 다음 끓이기만 하면 됐다. 달걀은 취향에 따라 안 넣어도 상관없다. 군대 밖에서 먹던 순두부찌개하고는 맛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물을 추가로 넣지 않으니까 약간 투박하지만 감칠맛이 월등했다.
내가 인수인계를 끝내고 처음으로 아침을 준비한 그 날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순두부찌개를 맛있게 끓여 뿌듯해서가 아니었다. 추운 겨울 새벽에 일어나 밥하기 위해 쌀을 씻었는데, 그만 손등이 다 터진 것이다. 따듯한 물이 나오는 전날 저녁에 쌀을 씻어놓지 않아 차가운 물만 나오는 것을 모른 채 새벽에 쌀을 씻다가 터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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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제대 후 사회생활을 할 때도 순두부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였다. 서울 종로 피맛골에 있던 감촌 순두부는 80년대부터 자주 가던 단골집이다. 굴 순두부, 해물 순두부 등 매콤하게 불 맛이 입혀 나오는 순두부는 참으로 맛이 좋다.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를 비롯해 역대 미국 대사들이 이 집의 단골이 된 것도 순두부 맛이 서양인에게도 먹혀 그런 것이리라. 이곳의 순두부는 약간 물을 가미한다.
그 뒤로 맛집으로 소문난 강릉의 순두부집, 남양주의 기와집의 순두부집도 여러 번 들러 재래식 생두부에 가까운 순두부를 즐기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운명처럼 다른 순두부집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한강 변을 따라 무작정 도보 산책을 나갔다 만난 미사리의 강변 손두부다. 일반 두부 같지 않고 순두부도 아닌 것이 먹으면 거친 식감이지만 기막힌 맛이 우러나왔다.
군대에서 처음으로 접한 순두부 맛과 비슷한데 한 수 위였다. 집에서도 가깝고 가성비도 좋아 자주 외식 차 들렀을 뿐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도 적극 소개해 주었다. 늘 머릿속 한 편에는 이 음식을 어떻게 재현해낼까 하는 생각이 떠난 적이 없었다.
일반 찌개용 두부 으깨 섞는 흰 순두부 조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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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부터 민 씨 네 주방장이 되어 밥을 짓는데 전광석화처럼 아이디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일반 찌개용 두부를 도마에 놓고 칼로 문질러 으깨고 여기에 순두부를 섞어 예전에 배운 레시피대로 끓이면 강변 손두부 찌개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다. 유레카!
당장 실천에 옮겼다. 30여 년 전 레시피보다는 내용이 좀 발전한 편이다. 4인용 흰 순두부를 끓일 때는 찌개용 두부(300g)는 도마 위에 놓고 칼로 으깨 순두부(300g)와 반반씩 섞어 준비한다. 마늘 한 큰술과 다진 대파(4cm, 흰 부분)에 식용유 1큰술과 참기름 반 큰 술을 섞어 파마늘 기름을 낸다. 여기에 다진 쇠고기(50g) 정도를 볶아준다.
다음 순두부와 찌개용 두부를 합친 것을 그 위에 끓여 주기만 하면 된다. 다 끓으면 청양고추 2개를 가늘게 썰어 뿌려주고 음식을 식탁에 내면 된다. 파마늘 기름에 쇠고기 맛과 고소한 순두부의 조합이 상상 이상의 맛을 낸다. 두부를 넣기 전 살짝 프라이팬에 구운 차돌박이를 넣으면 차돌박이 순두부찌개가 나온다.
빨간 순두부를 먹으려면 파마늘 기름을 낸 다음 불을 끄고 고춧가루를 섞은 다음 약 불에 쇠고기와 함께 볶는다. 바지락, 굴, 해물(대하와 모시조개 등) 등을 넣고 두부를 위에 올려 끓이면 그야말로 바지락 순두부, 굴 순두부, 해물 순두부가 나온다. 고추기름의 불 맛에 고소한 두부 맛과 해물의 시원한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감촌 순두부의 맛과 비슷한데 육수가 없고 미끈하게 넘어가는 대신 다소 거친 식감이 입맛을 자극한다.
내가 이런 순두부를 해주면 가족들이 너무 맛있게 먹었다. 가끔 외손녀 날다람쥐를 보러 근처 딸네 집에 들르면 아예 음식 재료를 준비해놓고 순두부를 해달라고 조른다. 기꺼이 응한다. 너무 즐겁고 뿌듯해진다. 딸네한테 음식을 해준다는 것이 대화하는 것 이상의 교감을 가져다주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감을 선사한다.
민국홍 KPGA 코리안투어 경기위원·중앙일보 객원기자 minklpg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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