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즐기는 화진포·송지호 자전거 나들이
강원도 고성 자전거 여행
11월까지 무료 대여, 딱 한 달 남아
쉬엄쉬엄 1시간 호수 둘레길 완주
왕곡마을·이승만 별장 관광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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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기에 좋은 계절이다. 자연을 벗 삼아 질주하고 싶다면 강원도 고성으로 가자. 탁 트인 바다와 호젓한 호수, 눈부신 갈대와 화려한 단풍도 있다. 자전거는 안 챙겨도 된다. 고성군이 국내 최북단 호수 화진포와 철새 도래지 송지호에서 무료로 빌려준다.
지난 17~18일 화진포·송지호 자전거 둘레길을 돌고 왔다. 두 곳 모두 해수욕하러 자주 들렀던 곳인데 이번엔 두 번이나 놀랐다. 가을 풍경이 너무 근사해서, 자전거 타기에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어서. 앞으로는 계절마다 고성에서 ‘공짜 따릉이’ 여행을 즐길 것 같다.
청량한 소나무숲을 달리다
고성군은 2014년 자전거를 공짜로 빌려주기 시작했다. 걷기 여행과 자전거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송지호·화진포 둘레길을 완공하면서다. 첫해인 2014년엔 2398명이 두 호수에서 자전거를 빌려 탔다. 이후 이용객이 꾸준히 늘었다. 2018년엔 5890명이 이용했는데, 올해는 지난 9월 이미 6600명을 넘어섰다. 자전거는 어린이용과 2인용을 포함해 송지호에 24대, 화진포에 32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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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발 2시간 30분 만에 송지호 관망타워에 도착했다. 타워 바로 옆에 자전거 대여소가 보였다. 백발 어르신들이 난롯불을 쬐고 있었다. 자전거 대여 업무는 ‘고성 시니어 클럽’이 맡고 있다. 김정신(80)씨가 MTB 자전거를 내줬다.
“왕곡마을까지 가실 거죠? 꼭 1시간 안에 오셔야 합니다. 흙길에서 고꾸라지는 사람도 더러 있으니까 조심하십시오.”
헬멧을 단단히 썼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둘레길 초입은 잘생긴 소나무가 도열한 흙길이었다. 폐 깊숙이 청량한 공기가 스며들었다. 솔숲 중간에 포크레인이 바닥 공사를 하고 있었다. 고성군 김명옥 관광통역안내사는 “자전거 타기 불편하다는 민원 때문에 대리석을 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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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m쯤 달린 뒤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포장도로에 들어섰다. 기어를 올리고 힘껏 페달을 밟았다. 벼 벤 논, 갈대숲, 밀밭이 차례로 펼쳐졌다. 금세 왕곡마을에 닿았다. 기와집 20여 채, 초가집 30여 채에서 여전히 사람이 사는 전통 마을이다. 영화 ‘동주(2016)’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자전거에서 내려 개울 흐르는 소리 들으며 돌담길을 산책했다. 집집이 탐스러운 대봉감이 열려 있었고, 코스모스와 구절초도 만개해 있었다. 조효선 문화관광해설사는 “왕곡마을의 북방식 가옥은 대문이 없고 앞마당이 활짝 열려 있다”며 “갈수록 관광객이 늘고 있는데 주민의 일상을 배려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시 호수를 왼쪽에 두고 페달을 밟았다. 잎사귀가 노랗게 물든 은사시나무 군락, 반짝이는 갈대숲을 지났다. 아직 겨울 철새는 보이지 않았다. 오리 떼와 백로만 이따금 눈에 띄었다. 대여소에 도착하니 정확히 1시간이 흘렀다. 왕곡마을을 찬찬히 둘러보고 쉬엄쉬엄 자전거를 타기엔 다소 빠듯한 시간이었다. 둘레길이 5.3㎞인데, 왕곡마을을 다녀왔으니 대략 6㎞를 달린 셈이다.
눈부신 갈대숲을 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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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호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24㎞를 가면 화진포가 나온다. 국내 최북단 호수이자 최대 석호다. 면적이 2.39㎢로, 송지호(0.5㎢)의 다섯 배 가까이 된다. 자전거 둘레길 코스는 두 개가 있다. 북호(외호)만 돌면 5.2㎞, 남호(내호)까지 도는 완주 코스는 10㎞다. 화진포 둘레길은 올해 한국관광공사가 꼽은 ‘한국의 아름다운 자전거 길 30’에도 이름을 올렸다.
오후 3시 해양박물관 옆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온 김윤태(57)·김은랑(56) 부부가 막 라이딩을 마쳤다.
“캠핑할 겸 바람도 쐴 겸 화진포에 자주 오는데 매번 자전거를 빌려 타요. 자전거 타고 둘레길을 한 바퀴 돌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어요. 아직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지 자전거가 늘 많이 남아 있더라고요.”
이번엔 지역 자전거 동호회 ‘화진포MTB사이클’ 회원 5명과 함께 했다. 선장, 부동산 중개인 등 직업이 다양했는데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고성 토박이고, ‘꿀벅지’와 ‘강철 체력’을 갖췄다는 것. 문어잡이 배 선장 김재진(66)씨는 “평생 뱃일하느라 몸이 망가져 잘 걷지도 못하다가 4년 전부터 자전거를 탔다”며 “덕분에 지금은 마라톤은 물론이고 철인 3종 경기도 나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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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반대방향으로 출발했다. 대진중·고교를 지나 둘레길 입구를 알리는 아치를 통과하니 데크 로드가 이어졌다. 데크로드가 끝날 때쯤 갈대 나부끼는 ‘초도습지’가 보였다. 김명옥 관광통역안내사는 “화진포 수질 오염을 막고자 2018년 4개 배후습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승만 별장 쪽으로 가지 않고 남호로 이어지는 큰 둘레길로 방향을 잡았다. 송지호와 비교하면 화진포 둘레길은 호수에 바투 붙어 있었다. 4개 습지 중 가장 큰 죽정습지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습지는 공원처럼 예뻤다. 억새 군락이 눈부셨다.
다시 페달을 밟았다. 감이 주렁주렁 열린 마을과 우람한 소나무가 늘어선 호숫길을 차례로 지났다. 어딜 가나 너른 호수가 보였고 멀리 금강산 자락이 겹겹이 펼쳐졌다.
대여소에 도착했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느라 1시간이 조금 넘었다. 이승만·김일성 별장을 둘러보기엔 시간이 부족해 자전거를 반납한 뒤 찾아갔다.
화진포MTB사이클 회원들은 커피 한 잔 마시고 거진항 방향으로 다시 자전거를 몰았다. 동호회 추원형 사무국장이 “다음엔 7번 국도 따라서 통일전망대까지 가자”고 했다. 허벅지가 버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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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정보
자전거 대여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10월 기준) 운영한다. 늦어도 오후 4시까지 가야 빌려준다. 1시간 이내 반납을 원칙으로 한다. 올해는 11월까지 운영한다. 10월 30, 31일은 대여소가 쉰다. 고성군에 운영 여부를 확인하고 가자.
고성=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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