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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래퍼’ 역사 쓴 이영지 “첫 여성 우승 타이틀 연연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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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힙합신에서 여성 래퍼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근 종영한 Mnet ‘고등래퍼3’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신서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영지(17)양이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역사를 쓴 것이다. 2012년 ‘쇼미더머니’ 시작 이래 남녀 모두 참가 가능한 힙합 경연 프로그램에서 여성 래퍼의 우승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영지의 우승은 여러모로 이변에 가까웠다. 지난해 지원 당시만 해도 랩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초보 래퍼요,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이었기 때문.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나온 그는 자퇴한 친구들로부터 “넥타이를 풀어헤쳐야 힙합” “뼈해장국이 진짜 힙합”“넌 힙합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기죽기는커녕 “너희는 힙합을 어디서 배운 거냐. 난 다시 배워야겠다”고 되받아치던 그가 고등래퍼에서 진짜 힙합을 배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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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별 대결에서 1위를 한 그는 멘토로 더콰이엇과 코드쿤스트를 만나 무서운 기세로 치고 나갔다. 그가 섹시함 혹은 귀여움 같은 여성성을 내세우는 대신 수트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묵직한 저음으로 래핑을 휘두를 때마다 경쟁자들이 차례로 나가떨어졌다. 우원재와 창모가 피처링에 참여한 파이널 곡 ‘고 하이(GO HIGH)’는 500점 만점의 1차 투표에서 465점을 받으며 역대급 무대를 선보였다.









19일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이영지는 “‘최초 여성 우승자’ 같은 타이틀에 딱히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저 이영지라는 사람이 우승했다는 데 만족할 뿐이라는 것. 여성이라 몰표를 받았다는 악플에도 의연했다. “그동안 여성 래퍼들이 조명을 많이 받지 못한 건 사실이잖아요. 실력이 있으면 언젠가 조명을 받기 마련인데, 조명을 받으면 악플도 따라오죠. 제 특징 중 하나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인데, 그걸 공격하는 걸 어쩌겠어요.”

무언가를 탓하기보다는 깔끔하게 인정하는 성격이다. 타고난 저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는 데 집중했다. “목소리가 낮은 것보다 크다는 생각은 많이 했어요. 학교에서 다 같이 떠들어도 저 혼자 주의를 받았으니까요. 그만큼 전달력이 좋다는 뜻이기도 하고. 하하.” 방송에서 화제를 모은 아버지를 향한 가사 얘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연락은 없지만 제가 느낀 솔직한 감정이니 후회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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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럼없는 성격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행사 MC를 맡고, 전교 회장을 맡는 등 각종 무대를 섭렵했다. “워낙 무대에 서는 걸 좋아했어요.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그게 재밌으니까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아요. 힙합도 자유롭고 재밌는 문화잖아요. 그렇게 춤도 추고, 커버 랩도 하면서 내가 한번 써볼까 했던 거죠.” 마치 마블 최초로 여성 히어로를 그린 영화 ‘캡틴 마블’ 속 명대사처럼 “나는 네게 증명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고등래퍼3’도 참가에 의의가 있었다고 했지만, 잃을 게 없으니 두려움도 없는 것이 가장 큰 무기였다. 송민재와 김민규 등 함께 출연한 친구들은 물론 피처링을 맡은 김효은ㆍ쿠기 등 선배들과 무대에 올라도 긴장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모든 무대가 너무 재밌었어요. 준비할 때는 부담감이 컸지만 올라가선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죠. 다만 그분들과 눈이 마주치면 가사를 까먹을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눈을 안 쳐다본다거나 초점을 놓는 방법을 쓰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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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으로 우승을 바라본 건 언제부터일까. 그는 “‘세미 파이널’에 올라가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멘토에게 보답하는 길은 우승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메모장에 가사를 쓰느라 낡은 폰 뒷면에 파편이 튀는 것도 몰랐다는 ‘오렌지 나무’ 가사를 두고 멘토 코드쿤스트는 “영지의 성실함이 이 자리로 이끈 것”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제가 원래 성실한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멘토님들에게 정말 많이 배웠기 때문에 피해를 입히고 싶지 않다,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커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그는 가장 좋아하는 래퍼, 협업하고 싶은 래퍼 모두 박재범을 꼽았다. “목소리가 감미로울뿐더러 어떤 노래든 다 자기 스타일로 완벽하게 소화해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는 이유다. 그의 이름은 앞으로의 계획에도 등장했다. “장학금 1000만원으로는 일단 학교 친구들에게 피자를 쐈고, 스피커ㆍ마이크 등 음악 장비를 새로 사는 데 쓰려고요. 저는 아직도 아직도 많이 미숙하지만 다양한 작업을 통해서 음악적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싶거든요. 그러다 보면 같이 할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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