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쌤 맞아? 미쓰 베트남·사격선수…신현빈의 팔색조 과거
'슬기로운 의사생활' 배우 신현빈
데뷔 10년차…영화 속 숨은 매력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무뚝뚝한 성격의 외과 레지던트 장겨울 선생 역할로 주목받고 있는 배우 신현빈이다. [사진 방송 캡처] |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 방영 이후 포털 영화인 검색 순위 1, 2위를 다툰 사람, 주인공 5인방 아닌 장겨울 선생 역의 배우 신현빈(34)이다.
외과 유일무이한 레지던트 3년 차,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환자 상처에 생긴 구더기쯤 맨손으로 척척 떼어낼 만큼 투철한 직업정신의 소유자다. 장겨울 선생은 숨은 배우 발굴로 이름 높은 신원호‧이우정 사단이 이번 드라마에서 제대로 히트시킨 캐릭터다. 성씨를 길 장(長)자로 해석한 ‘롱윈터쌤’이 기본, ‘장개월’ ‘장베베’ 등 극 중 개성과 인기의 척도라 할 만한 애칭도 다양하다.
배우 신현빈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신선한 얼굴인데 연기에 빈틈이 없어서다. 알고 보면 올해로 데뷔 10년 차. ‘무사 백동수’ ‘아르곤’ ‘추리의 여왕’ ‘미스트리스’ ‘자백’ 등 드라마 조연도 꾸준히 해왔지만 그를 알아본 건 영화가 먼저였다. 장겨울 선생이 보여준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신현빈의 출구 없는 매력에 빠지게 할 ‘입덕’ 영화들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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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데뷔, 아들 딸린 욕쟁이 ‘미쓰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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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덕을 위한 첫 관문은 바로 신현빈의 10년 전 데뷔작 ‘방가? 방가!’다. 육상효 감독의 순제작비 단돈 6억원의 이 독립영화는 97만 관객이란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신인 신현빈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올려놨다. 그가 맡은 역할도 파격적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애환을 다룬 이 휴먼 코미디에서 그는 어린 아들까지 둔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장미’를 연기했다.
장미는 공장에서 ‘미쓰 베트남’으로 통하는 미모에 반전 매력의 소유자다. 첫 대사가 “쩡신 차려, 이 개섀캬~”일 만큼 베트남 억양 섞인 한국어 욕설이 차지다. 낡은 니트에 두툼한 패딩 조끼, 목장갑이 ‘출근 유니폼’. 웬만한 남자보다 힘도 세다. 장겨울 선생의 그 무심한 듯 일 잘하는 ‘일잘러’의 자질이 이때부터 다분했다.
‘뽕삘’ 충만한 ‘찬찬찬’ 트로트 시연 장면부터 애틋한 키스신까지, 신현빈은 캐릭터의 매력과 사연을 담뿍 녹여낸 담백한 연기로 이듬해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상을 차지했다. 신현빈 자신은 발음 연습을 도와준 베트남 유학생이 “정말 베트남 사람 같다”고 말해준 게 “가장 큰 찬사”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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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 아닌 미술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뒤늦게 배우의 꿈을 펼치려 연기를 독학하며 오디션에 나섰다. 놀랍게도 ‘방가? 방가!’가 생애 첫 도전작. 당시 그를 발탁한 육상효 감독은 “진짜 베트남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지만 마땅한 배우가 없던 차에 신현빈을 알게 됐다”면서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전형적인 미인과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를 지녀서 베트남 사람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여전히 신현빈과 자주 연락한다는 육 감독은 “한번 이미지가 베트남으로 박혀서인지 그 다음 영화 ‘공조’에선 북한여자로 나와서 ‘내가 잘못해서 너를 계속 외국으로 떠돌게 하는 것 같다’고 현빈이한테 말하곤 했다”면서 “이번 드라마(‘슬의생’)엔 번듯한 의사 선생으로 나와서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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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대적할 만…요절 전문 배우
영화 '공조'에서 북한 특수 정예부대 출신 림철령(현빈)의 부하이자 아내 화령 역을 맡은 신현빈. 작전 중 사망하는 탓에 출연 분량은 매우 짧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
신현빈은 영화에서 유독 요절한 캐릭터가 많았다. 연기 경력 대비 캐릭터 사망 횟수론 배우 김갑수와 겨룰 만하다.
그 처지도 기구하다. 영화 ‘공조’(2017)에선 남파된 북한 정예부대 출신 형사(현빈)의 죽은 부하이자 아내, 동명 소설 원작의 ‘7년의 밤’에선 주인공 오영제(장동건)에게 학대당하다 자살한 아내였다. 하정우 주연 영화 ‘PMC: 더 벙커’(2018) ‘클로젯’에선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그의 아내 역할로 나왔다. 지난해 추석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에서 대형 재난 속에 숨진, 철수(차승원)의 아내 역도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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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단역에서 출연 분량상 신현빈의 기량을 충분히 보지 못해 아쉬웠다면 첫 단독 주연 영화 ‘어떤 살인’(2015)을 봐야 한다. 개봉 당시 관객 수가 1만 7000명에 그치며 흥행엔 실패했지만, 오히려 VOD로 뒤늦게 보고 “잘 모르는 배우긴 했지만, 여주 연기 좀 잘하다”는 연기 호평이 잇따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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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액션‧언어장애…영화 ‘어떤 살인’
‘어떤 살인’에서 그가 연기한 20대 지은은 고등학교 시절 자동차 사고로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아 언어장애를 겪는 인물이다. 어느 밤, 으슥한 골목에서 낯선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지은. 신고하러 찾아간 남자 형사는 그에게 “치마도 아니고 꽉 낀 청바지를 벗기기 쉽지 않다” “아가씨, 말은 잘 못해도 소리는 지를 수 있잖냐”며 핀잔만 준다. 그런 와중에 2차 피해가 벌어지고, 분노한 지은은 복수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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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안용훈 감독이 2008년 피해자가 청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성폭행죄 성립이 불가하다는 법원의 선고로 논란이 됐던 일명 ‘청바지 성폭행 사건’에서 착안해 만든 영화다. 힘든 역할임에도 신현빈이 출연 결심한 것도 그런 분노에 공감해서였단다.
지나치게 극적인 설정이 많은 영화를 우직하게 이끄는 건 그의 연기다. 감정 기복을 처연한 눈빛에 묵직하게 실어낸다.
사격 실력이 뜻밖의 볼거리다. 지은은 고등학교 시절 사격 선수로 활약했다는 설정. 왼손은 주머니에 가볍게 걸치고 오른손을 쭉 뻗어 탕, 악인들을 명중시키는 신현빈의 서늘한 총격이 잠시나마 속을 뚫는다. 태릉선수촌 사격장에서 2달여 최소 2~3일에 한 번은 연습했단다. 감정까지 실어낸 언어장애 연기까지 배우로서 다방면 가능성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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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쌤’의 짝사랑과 다른, 파괴적 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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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의 계통을 잇되 시시각각 연기 변신까지 해낸 영화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이다. 올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흥행은 실패했지만, 신현빈의 팔색조 얼굴은 남았다. 사기당해 빚을 지고 술집에서 일하는 미란은 남편의 지옥 같은 구타에 시달린다.
불안하고 수동적이던 그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 진태(정가람)를 만나며 180도 바뀐다. ‘슬의생’에서 표현이 서툴러 옆 사람이 더 발 동동 구르게 하는 장겨울식 짝사랑과 결이 전혀 다르다. 미란의 연애는 생존이다.
이 여자, 해선 안 될 짓만 골라서 하는데도 가련하다. 영화 중반 등장하는 술집 사장 연희(전도연)에게 바통을 넘기기 전까지 극의 긴장을 쥐락펴락하는 호흡도 빼어나다. 신현빈 주연 격정 멜로를 기다리게 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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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슬의생’ 팬이라면 반가운 얼굴이 또 있다. 바로 안치홍 선생 역 김준한이다. 심지어 미란의 사이코패스 같은 폭력 남편 역이다. ‘겨울 쌤’과 ‘안치홍 쌤’, 아니 신현빈과 김준한의 악연은 다음에 소개할 ‘변산’(2018)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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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쌤’과 ‘안치홍 쌤’의 숨은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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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변산’은 흥행엔 실패했지만 전라도 부안군 변산의 여러 청춘 캐릭터가 빛났던 영화다. 신현빈이 맡은 미경도 그중 하나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드물게 털털하고 밝은 캐릭터다. 일명 온 동네 남자애들이 다 좋아하는 ‘변산의 여신’. 래퍼를 꿈꾸는 고교 동창 학수(박정민)의 첫사랑도, 깡패가 된 동네 친구 용대(고준)가 꼼짝 못하는 상대도 그다. 미경을 호시탐탐 넘보는 비겁한 지역 신문기자 원준 역을 ‘안치홍 쌤’ 김준한이 연기했다.
미경은 미모의 긴 생머리 피아노 학원 선생님. 여느 청춘영화라면 백치미 캐릭터로 소비되고 말았을 이 역할에 신현빈은 입체적인 숨결을 불어넣는다. 친구들을 힘으로 위협하는 깡패 용대에겐 “쌩양아치 날라리구만”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눈을 부라린다. 좋아하는 친구에겐 한결같이 다정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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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없는 건지 남의 속을 몰라줄 땐 살짝 얄밉기도 하지만, 그 한결같은 해맑음에 피식 웃게 만드는 친구랄까. 신현빈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캐릭터에 생명을 더한다. 장겨울 선생의 밝고 엉뚱한 기운을 좋아한다면 더욱 반갑게 즐길 만한 영화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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