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체인저] "K-뷰티, 더 뾰족해져야 산다" …1년에 한국 화장품 1000억원 해외에 파는 유통 전문가의 전언
"K-뷰티, 더 뾰족해져야 산다" …
남다름으로 판 바꾼 '게임 체인저'
⑤ 이소형·박현석 비투링크 창업자
지난해 매출 500억원, 거래액만으로는 1000억원 넘게 한국 화장품을 해외에 팔고 있는 두 남자가 있다. IT 기반의 뷰티 B2B 유통 스타트업 '비투링크'의 공동창업자 이소형 대표(36)와 박현석 부대표(32)다. 이들이 다루는 품목은 K-뷰티, 그 중에서도 작은 인디 브랜드들이다. 활동 시장은 중국·미국을 중심으로 베트남·인도네시아·싱가포르·러시아·멕시코 등 12개국. 거래처로는 중국 티몰·징둥닷컴·카올라, 미국 아마존·코스트코·어반아웃핏터스, 멕시코 코스트코·왓슨스, 동남에선 가디언·왓슨스·사사 등이다. 상당한 인지도와 실적을 가지지 않고서는 입점 조차 힘든 해외 유통업체들에 한국 화장품을 팔고 있는 이들의 전략은 무엇일까. 서울 강남역 인근에 있는 비투링크 사무실에서 이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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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비투링크의 이 대표가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설명한 한 마디다. 비투링크는 B2B기업 특성상 대중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미국 시장 진출을 꿈꾸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 사이에선 이미 잘 알려진 회사다. 이들은 한국 화장품을 해외 시장에 소개하고 판다. 언뜻 생각하면 한국 화장품으로만 구성한 온라인 쇼핑몰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건 아니다. 이미 해외 시장에서 큰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티몰·아마존·코스트코 같은 대형 유통 플랫폼에 한국 화장품을 올리고 판매, 배송까지 한다. 한국 화장품 중 잠재력이 있는 제품을 대량으로 사들인 뒤 판매하거나, 해외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브랜드의 제품을 수수료 지급 조건으로 마케팅부터 배송까지 위탁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 대표의 말은 이 모든 일을 진행하는 기본이 바로 데이터라는 의미였다.
비투링크는 제휴 브랜드나 채널을 결정할 때, 마케팅·유통 전략을 짤 때 그 근거를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둔다. 자체 개발한 데이터 수집 시스템이 매일 25만개씩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해 데이터베이스화 한다. 주로 해외에서 벌어지는 한국 화장품의 판매 정보다. 어떤 한국 제품이 어디서 어떻게 팔리고 있는지, 실제로 이를 산 사람들의 후기는 무엇인지를 비투링크 직원과 제휴사 직원들이 비투링크 플랫폼에서 다 볼 수 있다. 브랜드 입장에선 해외 진출을 위해 현지 전문가나 에이전시의 말만 믿고 덜컥 투자하는 '도박'을 감행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비투링크가 직접 벌이는 사업 역시 이 데이터 분석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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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로 만난 경영전략 전문가와 병원 마케터
두 사람은 흥미롭게도 2014년 비투링크를 설립하기 전까지는 화장품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해왔다. 이 대표는 창업 전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에서 연료전지 등 지속가능한 에너지 관련 프로젝트를 주로 진행했다. 공동창업자인 박 부대표는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하고 2007년 일찍이 타투 잡지를 만든 발행인 출신이다. 이후 청담동 성형외과에서 마케팅을 해온 평범치 않은 경력의 소유자다.
이들이 만난 건 "한국 화장품을 해외 시장에 팔자"라는 공통된 목표 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맥킨지 근무 시절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이 계기가 됐다. 그는 "함께 일하던 아프리카인 동료가 나에게 휴대폰으로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며 ‘정말 한국 남자들은 이렇게 다 잘 꾸미냐. 진짜 한국은 남자들도 성형 수술을 많이 하냐. 왜 이렇게 어려 보이냐. 화장품을 대체 뭘 쓰냐’고 물었다. 그 대화에서 K-뷰티의 가능성을 봤고 창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박 부대표의 경우는 5년 동안 성형외과 마케팅을 하면서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성형 시술과 함께 한국 화장품을 자신이 쓰기 위해 또 중국에서 팔기 위해 사 가지고 가는 걸 지켜봤다. 그는 “품질 좋고 믿을만한 한국 화장품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끊임없이 받았다”며 “중국 시장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고 했다.
2014년 두 사람의 생각을 알고 있던 지인의 소개로 만나게 된 이들은 공동 창업을 결정하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먼저 한국 이커머스에서 인기를 끌던 '스킨천사 좀비팩'을 중국 이커머스 시장에 내놨다. 제품을 선정할 때 역시 소셜 커머스의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
(이 대표) “2014년 당시 ‘중국의 이커머스도 한국 이커머스를 따라갈 것’이라는 가설을 갖고 있었다. 당시 한국 소셜커머스에선 아모레퍼시픽·엘지생활건강 등 거대 화장품회사의 제품보다 이름이 덜 알려진 작은 브랜드가 굉장히 잘 팔렸다. 우리는 중국 이커머스에서도 뭔가 특이한 것, 셀링 포인트가 자극적인 것, 그게 아니면 저렴한 제품이 잘 팔릴 거라고 예상했다. 당시 한국 이커머스 위메프에서 화장품 중 가장 잘 팔렸던 게 바로 좀비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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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념 유통 서비스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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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을 결정한 뒤 3개월을 졸라 겨우 물건 5000개를 받았다. 당시 한국 화장품업계에선 대금을 못 받거나 중국 진출을 미끼로 사기 사건이 일어나는 등 중국 판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게다가 화장품 사업 경력이 전무한 젊은이들이 중국에 물건을 판다고 하니 믿기 힘든 건 당연했다.
이렇게 받은 좀비팩을 2015년 중국 화장품 전문 온라인쇼핑몰 '쥐메이'에서 진행한 역직구 첫 번째 딜 제품으로 내놨다. 역직구란 국내 판매자가 한국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외국인에게 물건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면세 혜택을 볼 수 있는 데다, 중국에 있는 물류창고에 제품을 미리 입고시켜두고 고객이 주문할 때마다 바로 배송해줘 소비자 입장에서도 배송기간과 배송비가 줄어 이득이었다. 좀비팩은 판매를 시작한 지 2분만에 5000개가 다 팔렸다. 박 대표는 "쥐메이 임원이 바로 전화해서 '너희 덕분에 새로운 서비스가 성공했다'며 그 10배인 5만 개를 바로 주문했다"고 밝혔다.
이후 좀비팩은 중국에서만 60만 개 이상이 팔려 나갔다. 2017년엔 아예 스킨천사 브랜드를 사들였고, 지난 7월 진행한 미국 쇼핑몰 아마존의 '프라임 데이' 프로모션에 내놔 마스크팩 부문 판매 1위, 전체 뷰티 부문 6위에 올랐다. 미국 코스트코에서는 스킨·에센스·수분크림·클렌저 등 한국 제품 10개를 구성해 'K-뷰티 스킨케어법'을 제안한 패키지 상품을 내놔 100억원 어치를 팔았다.
지난 19일 설립 5주년을 맞은 비투링크가 제휴하고 있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 수는 85개, 제품을 판매하는 해외 리테일러는 60개였다. 해외에서의 안전하고 정확한 판매·유통을 위해 중국·미국·일본·베트남에 각각 지사를 설립했고 미국·중국·일본엔 각각 별도의 물류창고를 가지고 있다. 직원 수는 한국만 90여 명, 해외 지사까지 포함하면 13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의 잠재력에 대표적인 한국 화장품 제조사인 ‘한국콜마’와 한국 화장품에 관심 많은 중국 투자사 ‘중국DT캐피탈’, 남미 최대 벤처투자사인 ‘엔젤벤처스’가 총 273억원을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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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고 특이한 화장품 특수는 끝났다”
성공가도를 걷고 있는 이 두 사람이 최근 1~2년 사이 주목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바로 중국 내에서 한국 화장품의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 “2016년말에서 2017년 초반 중국 데이터를 지켜본 결과, 최근 동향이 K-뷰티 매출 총액은 늘고 있지만 평균 판매가가 떨어지고 있다. 이에 반해 J-뷰티(일본 화장품)는 총매출액은 K-뷰티보다 작지만 평균 판매가가 올라가고 있는 게 명확하게 보였다. 중국 소비자들이 한국 화장품보다 일본 화장품을 점점 좋아하고 사고 있다는 의미였다."
(박 부대표) "그래서 중국 이커머스에서 돌아다니는 J-뷰티에 대한 리뷰를 다 모아 분석해 봤다. 단어를 정리해서 정렬해봤더니,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정품’ 그 다음이 ‘장인’이더라. '장인정신이 느껴진다’든지 ‘장인이 만들어서 너무 좋다’라는 식이다. 한국 화장품 역시 여기에 미래를 둬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한국 화장품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이들은 "조금 더 뾰족해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대표) "많은 한국 인디 브랜드가 중국 시장에 진출할 때 '중국 사람들은 뭐를 좋아할까'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어찌 보면 똑똑한 거지만, 전제가 잘못됐다. 판매 우선주의보다는 브랜드를 견고하게 키우는 게 먼저다. 제품 역시 컨셉트를 더 정교하고 특별하게 만들어야 한다. 중국엔 지금 과거 한국 제품이 보여온 신기하고 재밌는 컨셉트의 자국 제품이 많아졌다. 리테일러들도 그런 한국 제품은 '생명력이 짧다'고 외면하기 시작했다. 기발한 컨셉트보다 믿을 수 있는 제품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박 부대표) "컨셉트가 잘 잡힌 브랜드를 만들어 한국에서 입지를 다진 뒤, 제품 하나만 해외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 론칭하는 게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한국 브랜드는 한탕주의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 사람이 좋아하는 성향의 제품 하나만 만들어서 대박 내보자'는 식이다. 그랬다가 중국 상인이 물건 못 판다고 하면 다 팔 곳이 없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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