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럭시Z 플립' 몸값 두 배 뛰게 만든 럭셔리 줄무늬의 정체
지난 2월 10일 오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한창 방영되던 중 예상 못 했던 깜짝 광고가 등장했다. 새로운 스마트폰 갤럭시 Z플립의 티저 광고다. 새로운 스마트폰의 출시는 늘 대중의 큰 관심을 받지만 이번엔 예상치 못한 색다른 모습에 관심이 더 쏠렸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 톰 브라운과 협업한 한정판 상품 '갤럭시 Z 플립 톰 브라운 에디션' 출시를 깜짝 발표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새로 공개한 '갤럭시 Z 플립 톰 브라운 에디션'. [사진 삼성전자] |
일반 휴대폰의 케이스는 검정 등 단색으로 구성된 데 반해, 톰 브라운 에디션은 그가 즐겨 쓰는 회색 원단에 맞춰 어두운 톤의 실버 컬러를 바탕으로 중앙에 빨강·하양·파랑 줄무늬를 넣었다. 톰 브라운 에디션의 가격은 약 300만원 대로 알려졌다. 같은 구성의 일반 모델은 200만원대인데 이보다 100만원 더 비싼 가격으로 책정된 것. 화면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도 톰 브라운의 로고나 이미지 등이 플레이 되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줄무늬 하나를 더 그려 넣은 것만으로 가격이 훌쩍 뛴 셈이다.
삼성전자가 새로 공개한 '갤럭시 Z 플립 톰 브라운 에디션'. [사진 삼성전자] |
물론 이 줄무늬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스마트폰에 그려진 줄무늬는 'RWB 그로그랭'이라 불리는 톰 브라운의 시그니처 패턴이다. 로고나 라벨처럼 브랜드 명을 직접 쓰지 않더라도 이 줄무늬만 있으면 톰 브라운 제품임을 알 수 있다.
럭셔리 패션 시장에선 로고 대신 고유의 선(줄무늬)으로 브랜드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각자의 고유한 줄무늬를 개발해 옷과 액세서리 등에 다양하게 활용한다. 초록·빨강 선이 들어 있으면 별다른 로고가 없어도 ‘구찌’임을, 빨강·하양 선이 있으면 '발리'라는 걸 금새 알 수 있다. '오프 화이트'는 흰색 사선 줄무늬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사로 잡았다. 이탈리아 브랜드 '펜디'는 최근 2020 봄 컬렉션을 발표하면서 로고 없이 줄무늬만 보고도 자신들의 브랜드임을 알 수 있도록 갈색 줄무늬를 개발해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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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고유의 줄무늬는 실제로 로고를 새기는 것보다 더 직접적으로 브랜드를 드러내는 방법이다. 기존에 사용해온 줄무늬가 없더라도 이를 추가로 넣어 '특별판'을 만들기도 한다. 몇 해 전 '발렉스트라''고야드' 역시 스테디셀러 가방에 줄무늬를 삽입한 새로운 가방 디자인을 선보였다. 물론 가격은 일반 제품에 비해 비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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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는 럭셔리 브랜드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남녀노소가 즐겨 신는 아디다스의 삼선 슬리퍼와 옆에 하얀 줄이 들어간 트레이닝복을 떠올려 보자. 아디다스의 '삼선'은 역사가 길다. 1949년 가죽 신발이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발끈을 3번 둘러 묶은 모습에서 착안, 상표로 등록했고 이후 아디다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디자인이 아닌, 기능적인 필요에서 탄생했지만 지금은 브랜드를 대표하는 훌륭한 디자인 요소로 자리잡았다.
트렌드 분석가 이향은 성신여대 교수(서비스디자인공학과)는 이에 대해 "현대인들은 '상품'이 아니라 '기호'를 소비하는데, 그 기호의 종류가 브랜드 로고에서 상징적인 디자인 요소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라며 "그 중 가장 근사하고 멋있어 보이는 것이 바로 라인(선)"이라고 말했다. 대놓고 브랜드 명과 로고를 노출하는 것이 '하수'의 느낌이라면, 은근히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주는 데 줄무늬만큼 좋은 디자인 요소가 없다는 의미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교수는 "특히 밀레니얼 세대는 '아는 사람은 아는' 상징 체계로서 브랜드 고유의 줄무늬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며 “중요한 것은 그냥 쭉 그어 놓은 선이 아니라 배색과 배열, 톤과 리듬감이 정교하게 조합된 독특한 줄무늬여야 브랜드의 상징으로서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끔 저는 아주 평범한 것에 한 가지 요소만을 더해 독특함을 만들어 냅니다. 그저 한 가지 요소만 가미했을 뿐인데 화학 작용처럼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죠.”
구찌의 부흥을 이끌고 있는 아티스틱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말이다. 한 가지 요소만을 더해 독특함을 만들어 내는데, 이 줄무늬만한 것이 없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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