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실세를 사칭한 사기범들에게 왜 속을까. 사회적 명망가인 피해자까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점점 대담해지는 보이스피싱 수법 때문이다. 여권 핵심 인사와의 친분을 허위로 꾸며내며 힘을 과시하던 통상적인 방식을 넘어 직접 성대모사를 하며 피해자를 현혹하는 수법이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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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현 전 광주시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 사칭범에게 속아 4억5000만원을 송금했다. 윤 전 시장은 경찰 조사에서 “목소리가 비슷해 진짜 권 여사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윤 전 시장은 이중으로 사기를 당했는데, 사칭범인 김모(49)씨의 자녀들이 노 전 대통령의 혼외자라는 거짓말에도 속았다. 취업 청탁 등을 들어준 것으로 드러나 피해자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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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시장은 지난 6월까지 광주광역시장으로 재임했고, 조선대 의학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엘리트다. 윤 전 시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혼외 자식 이야기가 튀어나와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바보 같은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전 시장은 “공천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고 세간의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6ㆍ13 지방선거 공천을 앞두고 거액 송금과 취업 청탁이 이뤄진 점 때문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도 검토 중이다.
3년 전에는 당시 차기 대선주자로 분류되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사칭한 범인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김 대표는 2015년 3월 당 최고ㆍ중진연석회의에서 “저로 인해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며 “저와 목소리 거의 비슷한 사람이 주로 여성에게 전화해 여러 가지 그럴듯한 내용으로 돈을 요구해서 속아 넘어가 송금한 분들이 여러 명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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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5명이 김 대표에게 직접 피해 사실을 전해왔고 피해액은 1000만원가량이었다. 김 대표는 최초 피해 신고자에게 직접 사칭범의 전화번호를 건네받아 경찰에 넘겼다. 부산진경찰서는 그해 10월 50대 남성 김모씨를 검거했다. 전과 21범의 무직자였던 김씨는 2014년 12월 출소한 후 9개월 동안 김 대표 행세를 했다. 김 대표 특유의 중저음과 부산 사투리를 쓰면서 기부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7명에게 2700만원을 뜯어냈다. 기업가, 시의원, 도의원도 김 대표의 목소리로 착각해 속아 넘어갔다고 한다. 김씨는 “나야, 나 모르겠어?”라며 상대방을 채근하는 수법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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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장관’으로 알려진 이주영 국회 부의장(자유한국당)의 목소리를 흉내 낸 사기미수범도 있었다. 2015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비례대표로 활동하던 손인춘 의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이주영 의원의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봉사활동에 쓸 테니 5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손 의원은 깜빡 속아 넘어갈 뻔 했지만, 손 의원의 비서관이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사기임을 눈치채 미수에 그쳤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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