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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걸리던 안경 20분만에…독일에서 대박났죠"

2016년 독일에서 가족 성(姓)을 내건 안경 브랜드가 주목을 받았다. 이 브랜드는 1949년 창간한 독일 대표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지면 한 면을 장식했다. FAZ는 독일에서 영향력있는 권위지 중 하나로 쥐트도이체 차이퉁(SZ), 디 벨트(Die Welt)와 함께 독일 3대 신문으로 꼽힌다. 자체적으로 확보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 동안 독일에서 볼 수 없었던 합리적인 가격과 20분 안에 안경을 제작해 수령까지 하는 서비스로 눈길을 끌었다.


윤(YUN)이라는 성(姓)을 내건 이 브랜드는 2015년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문을 연 우리나라 안경 브랜드다. 2020년 서울 성수동 뚝섬역 근처에 국내 매장을 연 윤철주(62) 대표와 윤지윤(33) 본부장을 만나봤다.

안경 브랜드 윤의 윤철주(왼쪽) 대표와 윤지윤 본부장. /윤 제공

- 자기소개 해주세요


(철) “윤 윤철주 대표입니다. 안경 렌즈를 만드는 회사도 따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 “윤지윤 본부장입니다. 윤에서 상품 기획·마케팅·시각디자인·유통사 관리 등 여러가지 일을 맡고 있습니다.”


윤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 윤철주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윤철주 대표가 처음부터 안경 렌즈 사업을 했던 건 아니다. 우리나라 컴퓨터 엔지니어 1세대로 1983년부터 데이터 통신 하드웨어 부품 R&D 분야에서 5년 동안 종사했다. 엔지니어는 끊임없이 더 나은 성능을 내는 부품을 개발하기 위해 경쟁해야 했다. 밤낮으로 일만 생각했다. 꿈 속에서도 일을 할 정도였다.


- 안경업계에 발을 들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철) “엔지니어 일을 하다가 어느 날 저희 딸 아이가 울고 있는 꿈을 꿨어요. 제가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머리에 달린 스위치를 끄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깼어요. 충격을 크게 받고 이런 생활을 계속하면 인간답게 살 수 없겠구나 싶었어요. 마침 저희 누님 시댁 쪽에서 안경 테 사업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꿈에서 받은 충격이 커서 다니던 회사를 바로 그만 두고 1988년부터 안경 일을 시작했습니다.”


안경업계로 뛰어든 윤 대표는 컴퓨터 공학 업계와 환경이 달라 어려움을 겪었다. 정확한 자료와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공학과 달리 안경 테 분야는 서적이나 문서 같은 전문적인 자료 없이 구전으로 지식과 노하우가 전해지고 있었다. 테를 만드는 기술은 일본에서 배워온 사람들이 현장에서 가르쳤다.


13년 동안 한 회사에 있으면서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고 체계적인 질서를 갖추려 노력했다. 해외 유통·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방식)·ODM(제조업자 개발 생산방식) 등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안경 렌즈 산업을 접하고, 2000년에 독립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철) “테와 렌즈가 같은 안경 부품 산업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달랐어요. 쉽게 말해서 안경 테는 예술이고, 안경 렌즈는 과학이었죠. 안경 테와 달리 렌즈 분야는 체계적으로 정리한 자료가 있었어요. 엔지니어로 일했던 경험 덕분에 내용을 빨리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2005년에는 독일에서 누진다초점 렌즈를 만드는 기술을 들여왔다. 렌즈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뿐만 아니라 공장·생산 라인 등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국내에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걱정을 했다. 하지만 윤 대표는 자체적으로 렌즈 생산 설비를 갖추고, 공정을 계획한 끝에 국내 최초로 개인별 맞춤 안경 렌즈를 만들었다.


- 자체 제작한 렌즈는 어떤 렌즈인가요


(철) “누진다초점 렌즈는 복잡한 계산과 연마 과정을 거쳐서 만드는 렌즈예요. 독일에서 기술을 들여오기 전에는 렌즈를 사용자 시력에 맞춰 만들었어요. 사람마다 눈의 생김새가 다르고 주변 환경이 차이가 있는 걸 반영하지 못했죠. 독일 기술을 활용하면서 시력뿐 아니라 양눈 간 거리·시습관·직업 등을 고려한 섬세한 렌즈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 브랜드를 만든 이유가 있나요


(철)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과 노하우로 렌즈를 좋은 품질로 만들 수 있었지만 국내 시장은 신생 업체가 살아남기 쉽지 않은 구조였어요. 특히 브랜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내 시장에서는 대기업이 자본과 조직력을 앞세워 대량생산하는 제품을 상대하기 어려워요. 안경원이나 소비자는 유명 브랜드에서 만든 제품만 찾았죠. 그래서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서 해외 시장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20년 문을 연 윤 서울 성수점 실내 모습. /jobsN

브랜드를 기획하면서 여러 업체에 외주를 맡겼지만 제안해오는 내용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어요. 그러다 윤 본부장이 가족 성(姓)으로 브랜드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어요. 이름을 걸고 한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느꼈습니다.”


윤지윤 본부장은 윤 대표의 딸이다. 윤 본부장은 어려서부터 옷을 좋아하고 무언가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윤 본부장은 의류업체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했다.


(지) “저는 디자인보다 실용적인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패션업계는 그 반대여서 일을 계속 하기 어려웠어요. 마침 아버지가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느끼실 쯤인 2014년부터 아버지와 협업을 시작했어요. 1년 반 정도 준비해서 2015년 독일 베를린에서 윤 첫번째 매장을 열었습니다.”

2015년 10월 윤 베를린점 개장 행사 모습. 가운데 마이크를 들고 있는 사람이 윤철주 대표. /윤 제공

베를린은 독일 사람조차 독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색적인 도시다. 2020년 기준 베를린 인구 377만명 중 약 21%인 79만명이 190개국에서 온 타지 사람이다. 윤 본부장은 베를린이 타지인이 새로운 사업을 해도 이상하게 보지 않고 응원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실제로 독일 스타트업 중 40%가 베를린에 있을 정도로 도전하는 사람이 많고 연령대가 낮다. 또 독일에 살고 있는 가족이 있어 시장 조사를 하거나 현지 반응을 살피는 데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 베를린에서 어떤 반응이었나요


(지) “윤이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렌즈 유통망이 잘 짜여있지 않아서 안경을 맞추려면 2주일 정도 시간이 걸렸어요.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40만~60만원 정도로 비쌌어요. 하지만 저희는 자체적으로 제작한 렌즈와 테를 취급하면서 비용과 시간을 모두 줄일 수 있었어요.”

2016년 12월 FAZ 경제면에 Neue Brille in 20 Minuten(20분 안에 새 안경)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 FAZ는 1949년 창간한 독일 대표 일간지다. /네이버 블로그 독일벨의 편지

(철) “문을 연지 얼마 안 지나고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과 여러 언론사에서 취재를 나왔어요. 어떻게 안경을 20분만에 받으면서 현지 가격보다 싸게 살 수 있냐고요. 벤처캐피탈에서 투자를 하겠다는 연락도 많이 받았어요. 다들 투자를 하면 빠르게 수익을 회수하려는 로켓 비즈니스를 원해서 저희가 생각하는 방향과 맞지 않았어요. 저희는 착실하게 성장해서 소비자에게 알려지고 싶었어요.”


- 독일에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지) “현지 경험이 없어서 기초적인 부분부터 어려움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베를린 매장을 열 때 필요한 홍보물을 출력하는 일조차도 한국에서 직접 해서 날랐어요. 그래서 사업 초반에는 한국과 독일을 자주 오갔어요. 한국에 한 달 있으면 독일에 서너 달 있는 식으로요. 익숙해지고나서는 반년에 한번씩 왔다 갔다 했어요.


베를린 문화를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어요. 흔히 독일은 보수적이고 유행에 덜 민감한 나라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파리나 밀라노처럼 패션의 메카도 아니고. 그런데 베를린이란 도시는 외국인이 많고 젊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생각했던 분위기와 달랐어요. 유행에 민감하고 새로운 걸 소화하는 데에 거부감이 없었어요.”


(철) “우리나라와 다르게 모든 과정이 느린 점도 힘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매장 실내 공사를 할 때 우리나라처럼 턴키(계약을 맺은 시공사에게 모든 공사 과정을 전적으로 맡겨 공정을 단축할 수 있는 방식)로 하는 시공사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공정마다 다른 업체와 일일이 계약하면서 진행했고 시간도 오래 걸렸어요."

베를린점 실내 공사 모습. 공정마다 다른 업체가 공사를 진행해 속도가 더뎠다. /윤 제공

- 서로 전공 분야나 하던 일이 달라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철) “같이 사업을 하는 건 항상 어렵죠. 큰 틀은 같은데,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달라서 실천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많이 났어요. 분야도 다르고 세대 차이도 나니까요. 처음에는 각자 원하는 방향을 주장하다가 지금은 역할을 나눠서 하고 있습니다. 제조나 수출에 관한 일은 제가 하고, 본부장은 소매사업 쪽을 주로 해요.”

윤 본부장이 만든 사진 촬영 스토리보드 일부(왼쪽)와 사진 촬영 현장. 패션업계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일관성이 있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장소 섭외·조명·카메라 샷 종류 등 세세한 계획을 세웠다. /윤 제공

(지) “서로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달라서 의견 충돌이 있었어요. 저는 브랜드가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여질 지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제품 사진을 촬영할 때 제품을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사진 작가와 장소를 일일이 섭외해서 화보를 찍듯이 공을 들였어요. 의류업계에서 일하던 경험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죠. 그런데 B2B(Business to Business) 사업을 주로 하던 대표를 설득하는게 어려웠어요.


하지만 반대로 제가 브랜드에 치중하면서 실질적으로 회사 운영이나 매출에 대한 고민은 못했어요. 단순히 브랜드만 잘 표현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업이 잘 풀릴 줄 알았죠. 다행히 대표가 이런 부분을 잘 알고 있어서 많이 배웠어요. 과정은 힘들었지만 서로 몰랐던 부분을 잘 알게 됐어요.”


윤은 베를린에서 하나의 브랜드로서 자리를 잡고 우리나라 시장으로 들어왔다. 베를린처럼 다양한 문화가 있는 도시, 옛 것과 새 것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를 찾았다. 1년 정도 준비 과정을 거쳐 2020년에 서울 성수동 매장을 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새로운 걸 소화하는 속도가 빨라 베를린에서 준비할 때보다 더 완벽하게 준비했다. 베를린 매장을 준비하면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했다.

윤 성수점 앞으로 왕복 6차선 도로와 2호선 고가철도 2개가 지나고, 길 건너에는 성수동 수제화 전문점과 홍보관이 있다. 쇼 윈도로 보이는 콘베이어 벨트가 바깥 풍경과 대조를 이룬다. /jobsN

- 서울에 문을 열 때 어떤 점을 신경썼나요


(지) “서울 매장에는 베를린 매장에 없는 요소들이 있어요. 일단 직원 구성이 달라요. 베를린에는 매장에 안경사만 상주해요. 그랬더니 고객에게 어울리는 안경을 제안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우리나라 안경원도 안경사만 상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서울 매장에는 안경사와 스타일리스트를 뒀어요. 안경사는 전문적인 검안·상담을 하고 스타일리스트는 손님에게 맞는 안경을 제안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매장 앞에서 본 윤 성수점. 안경을 진열한 매대·카운터·검안실을 중심으로 왼쪽에 카페, 오른쪽에 렌즈와 테를 조합해 안경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jobsN

그리고 안경을 생필품처럼 매일 사는 물건은 아니잖아요. 안경이 일상적인 요소와 결합해서 문화로 자리잡았으면 했어요. 매장 한 켠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두고, 고객과 더 자주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치로 만들었어요.”


- 앞으로 목표와 하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지) “사람들은 보통 동네안경원에서 안경을 사잖아요. 그리고 각기 다른 브랜드에서 나온 테와 렌즈를 골라서 구입하죠. 저희는 손님이 안경을 하나의 문화로서 한 공간에서 온전히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코로나19가 생기기 전 베를린 매장에선 꾸준히 패션 디자이너·예술가·믹솔로지스트 같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협업해 손님과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었어요. 성수 매장에서도 다양한 문화 행사를 할 수 있게 고려해서 공간을 만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일상에서 접하기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점에서는 여러 분야와의 협업을 진행해 손님에게 다양한 매장 경험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믹솔로지스트 Maria와 함께한 칵테일 워크숍(왼쪽), 스타트업 사진플랫폼 Eyeem 잡지 발간 행사(가운데), 패션 디자이너 Hien Le와 협업. /윤 제공

(철)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안경업계에서 소비자가 신뢰할 만한 브랜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객에게 꾸준히 신뢰 받는 브랜드로 남고 싶습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예전과 다르게 먹거리, 때거리가 부족한 상황이 아니니까 젊었을 때 두려움을 갖지 말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우리 직원 중에도 안경사를 하다가 코딩을 해보고 싶다고 나간 친구가 있어요. 적극적으로 응원을 해줬습니다.”


글 CCBB 박규빈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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